‘라면 걱정말라’는 식약처, 먹거리안전 총괄 자격 있나

농업계가 추구해온 먹거리안전 개념과 가치 상충
“라면 매일 먹어도 괜찮다” 어린이 대상 홍보도
“위생관리만 할 것” 발 뺐지만 신뢰하기 어려워

  • 입력 2018.02.09 13:49
  • 수정 2018.02.09 13:53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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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생산단계를 포함해 먹거리안전을 총괄하겠다는 식품의약품안전처(처장 류영진, 식약처)의 계획이 드러난 이래 농업계에선 연일 우려와 분노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위생관리와 규제 업무를 수행하는 식약처가 먹거리시스템 전반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농업계 vs 식약처, 가치의 상충

이번 식약처 사태에 있어 가장 민감한 사안은 공공급식이다. 도시 먹거리안전의 시발점으로서 최근 가장 활발한 진전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농민단체·시민사회가 참여하는 민관 거버넌스 체제가 빛을 발하면서 먹거리에 대한 국민의 이해, 도농상생, 환경·문화 보전 등의 다양한 가치를 수반하고 있다.

식약처는 이같은 급식체계의 주도권을 자신들이 가져오려 하고 있다. 급식관리지원센터 설치·운영 계획이 그것이다. 위생안전관리를 강화한다는 명분이지만, 자칫 이로 인해 농업계에서 그동안 구축하고 추진해온 가치들이 흔들릴 우려가 있다.

식약처의 먹거리안전 기조는 위생관리에 치중해 있다. 위생기준에 부합한다면 천연물질과 합성물질을 구분하지 않고 국산·수입산·GMO 식품을 구분하지 않으며 친환경농업보다 GAP 인증을 강조한다. 최근의 공공급식 운동은 이같은 식약처의 입장에 충실했던 일선 영양사와 국민들이 농업과 먹거리에 관한 가치들을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는데, 식약처가 직접 개입하면서 이것이 차단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공공급식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그동안 먹거리정책은 농식품부 소관하에 농민들과 성숙된 시민들의 목소리가 크게 반영돼 왔다. 이들은 건강한 생산과 유기적 관계형성 등 ‘과정’ 속의 가치를 중시한다. 반면 식약처는 ‘결과’ 중심의 일관된 양상을 띠며 현저한 가치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라면 매일 먹어도 안전해”

지난달 31일 식약처가 식품안전정보포털 ‘식품안전나라’에 게재한 홍보자료는 식약처의 정체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민들의 우려와 달리 발색제·표백제 같은 합성식품첨가물이 안전하다는 홍보물로, 성인용 소책자와 어린이용 만화책 두 가지를 제작했다.

특히 어린이용 만화에선 며칠째 라면을 먹었는데 또 먹어도 될지 걱정하는 어린이들에게 라면에 들어간 식품첨가물이 1일섭취허용량보다 훨씬 낮다며 안심시킨다. 만화 속 어린이들은 식품첨가물이 들어간 가공식품을 마음놓고 먹고, 이를 나무라는 어머니까지 설득시킨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작한 어린이용 식품첨가물 홍보 만화책 이미지. 말미에 “균형잡힌 식습관이 필요하다”고 마무리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합성식품첨가물과 가공식품의 안전성을 크게 부각했다.

이와 거의 동시에 발간된 한살림소비자생협의 2월호 소식지에선 맨 앞쪽 4개 페이지를 통틀어 식품첨가물의 문제점을 조명했다. 안전성 논란은 둘째치더라도 미각을 왜곡시키고 당분·염분·트랜스지방 등의 섭취를 늘린다는 지적이다.

식품첨가물 문제에 대해선 이미 범국민적으로 인식이 확산되고 있고, 최근의 먹거리정책 또한 이같은 사회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가공식품의 안전성을 점검하는 것은 응당 식약처가 해야 할 업무지만, 먹거리안전 전반을 총괄하겠다는 기관이 식품첨가물의 안전성을 홍보하는 모습은 그리 편치 않아 보인다.


한 발 뺀 식약처, 하지만…

지난달 말 식약처를 규탄하며 국무총리 면담을 요청한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에게 총리실은 면담 거부 의사를 전했다. 논란이 되는 공공급식에 대해 식약처는 본래의 소관업무대로 위생·영양관리만을 지원할 계획이라는 해명과 함께였다. 거센 반발에 부딪혀 일단은 한 발 물러선 모양새다.

하지만 식약처가 먹거리정책을 총괄하려 한다는 정황은 명확하다. 최근 발견된 식약처의 ‘식의약 안전분야 혁신과제(2017.3.)’ 문건에는 ‘진흥에서 안전으로’라는 구호 아래 생산·유통·소비 전반을 아우르는 안전관리 강화 계획들이 수록돼 있다. 또 지난해 말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공급식 지원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에는 식약처의 급식관리지원센터 설치·운영 권한이 명기돼 있다.

때문에 농업계의 분노는 여전히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김영재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장은 “식약처 문건이나 총리실 식품안전개선TF 운영과정을 보면 의도가 뻔히 보인다. 식약처가 갖고 있는 로드맵 그대로 정책이 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며 불신을 드러냈다.

농업계 일각에선 농식품부에 ‘식품안전청’을 신설해 식품안전관리 업무를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농식품부는 이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며, 식약처 사태에 시종 무력한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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