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농민 숨통 죄어오는 정부 식품안전개선 종합대책

소비자 관점 입각, 규제 일변도 대책 구성
“진흥보다 안전” 식약처 의견 전폭적 반영
농업계 의견수렴은 농협중앙회 하나로 ‘퉁’

  • 입력 2018.01.28 09:49
  • 수정 2018.01.28 09:53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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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해 12월 27일 발표한 관계부처 합동 ‘식품안전개선 종합대책’은 문재인정부의 빈약한 농업의식을 재확인시키기에 충분했다.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광범위한 규제강화 계획은 발표이래 잇달아 농업계의 지탄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처장 류영진, 식약처)가 이같은 정책내용을 사전에 기획한 정황이 밝혀져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식약처, 농업에 손을 뻗다

<농민신문>은 지난 17일자 보도에서 식약처가 지난해 3월 농식품부의 농축산물 안전관리 업무를 흡수할 계획을 세웠다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식약처는 당시 정당별 대선후보 캠프에 ‘공약 수립에 참조하라’며 해당 내용을 담은 문건을 전달했다.

문건을 살펴보면 식약처는 우선 농축산물에 대해 ‘진흥에서 안전으로’라는 기본방침을 설정하고 있다. 지원과 육성에서 규제강화로 정책기조를 바꾸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세부 내용을 보면 GAP와 축수산물 HACCP 관리, 학교급식, 원산지표시, 잔류농약과 동물약품에 이르기까지 농식품부 소관 업무를 식약처로 대거 이관해올 계획을 세웠으며 관계법령 개정 계획까지 꼼꼼하게 수립해 놨다.

식약처는 농축산업에 관여하는 기관 중 가장 규제에 특화된 기관이다. 원래 보건복지부의 외청으로서 농식품부의 농축산물 안전관리에 보완적 역할을 해 왔는데, 지금은 국무총리실 산하기관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갖고 농축산업 생산 전반을 지배하려 하는 모양새다. 농업분야 비전문기관인데다 규제업무 특화기관인 식약처가 농업생산 관리를 주도하게 되면 정책은 다분히 산지의 상황이나 의견을 반영하기 힘들게 된다.

최초 보도매체인 <농민신문>이 해당 문건을 입수·보도하기 전까지 식약처의 이같은 계획은 공식적으로 전혀 알려진 바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미 체감할 만한 수준의 분위기 변화가 감지됐고 농업계 곳곳에서 이에 대한 우려가 흘러나온 바 있다.
 

농민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농업 전반에 대한 규제대책이 등장하자 농민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그간 기업 친화적 행보를 보였던 식약처의 개입 정황이 드러나면서 반발은 더욱 거세다.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가 지난 23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무조정실의 종합대책을 규탄하고 있다.


농민들 의견은 필요없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실)은 지난해 12월 27일 식품안전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수립한 대책이고 향후 부처 간 협업을 강화하겠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식약처가 수립한 계획을 충실하게 담아내고 있다.

산란일자 난각표기, 친환경 인증기준 강화 및 HACCP 기준 적용, 공공급식 지원체계 개편 등 당장 생산현장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대책들도 포함돼 있다. 정책기조가 공인된 만큼 향후 농업정책이나 각종 조정 사안들도 생산지보다 소비지적 시각이 크게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

이번 종합대책은 사실상 식약처의 의견이 크게 개입된 것으로 보이나, 형식적으로는 국무조정실이 주관한 식품안전관리개선 TF가 만든 대책이다. TF는 주로 정부 부처 담당자들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전문가·소비자단체·생산자단체 등 총 50여명으로 구성됐다.

그런데 구체적인 명단은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50여명 중 생산자단체는 농협중앙회가 유일하다. 농협중앙회는 생산자단체 가운데 가장 관변단체의 성격을 띠는 조직이다. 농업 규제 일변도의 대책을 마련하면서 실상 농업분야의 반론기회 자체를 차단한 셈이다.

김영규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정책기획실장은 “생산자단체들이 이 사안을 두고 최근 3개월에 걸쳐 토론회 등 의견개진에 노력했는데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다. 애초에 생산자 의견을 수렴할 생각이 없었던 것 아니냐”며 분개했다.


농민단체들 잇단 규탄

농민단체들은 꼬리를 물고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축산관련단체협의회와 대한양계협회는 이달 초 산란일자 난각표시 등에 대한 비판 성명을 냈으며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식약처 문건이 발견되자마자 식약처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한농연은 식약처의 행보를 기존 농정방향에 엇박자를 내는 조직이기주의적 행태라 비판하며 농식품부 외청으로 ‘식품안전청’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3일엔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가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무조정실의 종합대책은 최근 탄력을 받고 있는 도농상생 공공급식이나 친환경농업 존립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들은 “이번 종합대책은 졸속 대책일 뿐 아니라 지난 정부의 먹거리정책을 답습하고 있다”며 “위생과 안전 기준강화는 부분이지 전체가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한편 김정욱 농식품부 유통소비정책관은 지난 24일 ‘농업전망 2018’ 대회에서 이같은 우려에 대해 “식품안전에 대해선 총리실이 컨트롤타워가 되겠다는 것이 총리의 확실한 입장”이라며 “농식품부가 업무를 잃는 것이 아니라 생산단계의 사전예방적 안전관리를 위해 할 일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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