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폭락이 왜 농민 탓인가

정책 실패해도 반성·책임 없어
정부도·농협도 농민 탓으로

  • 입력 2017.10.15 00:53
  • 수정 2017.10.15 00:55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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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가을걷이가 한창 이어지는 시기지만 농촌 분위기는 밝은 편이 못 된다. 작년산 쌀값이 여전히 바닥을 맴돌고 있는 가운데 올해도 반전을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소출이 대체로 지난해보다 떨어지는 상황으로, 가격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농가소득은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지역마다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의 수매가 결정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그나마 전국 최고가를 책정했던 경기 여주·이천지역 농협들은 되레 40kg당 3,000~4,000원가량 삭감하고자 하는 의중을 공공연히 내비치고 있다. 폭락한 쌀값으로 인해 산지 농협들도 적자가 누적되고 있고, 수매가 결정 회의에선 원망의 화살을 가장 고통받고 있는 농민들에게 돌리기 일쑤다.

폭락 상황에서 농민들을 탓하는 것이 농협만은 아니다. 폭락의 원인을 과잉생산과 소비부진으로 정리한 정부의 설명을 언론들은 고스란히 받아적었고, 이제는 국민 모두가 보도 내용을 줄줄 외는 지경에 이르렀다. 적자영농에 허덕이는 농민들이 여론의 눈총까지 한 몸에 받고 있다.

농민들의 과잉생산이 쌀값 폭락의 원인으로 여론몰이 되면서 정책실패에 대한 농식품부의 책임은 자유로워지고 있다. 한승호 기자

그러나 어느 정도 생산조정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 하더라도 쌀값 폭락의 직접적 원인은 정부의 수급조절 실패에 있다. 수확 후 몇 달이 되도록 가격이 회복되지 않는 것은 수확기 대책이 실패했다는 뜻인데, 시장격리 등 추가 대책이 절실함에도 정부는 매년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다. 가장 중요한 정부의 정책실패와 책임회피 행태가 모두의 관심 밖으로 내몰린 것이다.

여주 구양면에서 농사짓는 전주영(53)씨는 폭락 자체보다도 이같은 억울한 현실에 더욱 분개한다. 그는 “생산이 많아서 농민 탓, 소비가 안돼서 소비자 탓, 이런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데, 사실은 정부가 수급조절을 잘못한 것”이라며 “작년 쌀값이 12만원대였는데, 반대로 30만원대로 폭등했다면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겠나. 정부도, 정계도, 언론도 난리가 났을 것”이라고 개탄했다.

정부는 쌀의 타 작목 전환을 열심히 권장하고 있지만 전환작목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이 없는 상태에서 작목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중에 가격은 바닥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자연히 최근 쌀농가들의 경제상황은 농촌에서도 좋지 않은 편이다. 전씨는 “농민들도 차나 스마트폰을 사지 않을 수가 없어 소비지출은 똑같이 늘어난다. 저축을 해서 노후대책도 하고 빚도 갚아가며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지금 대체로 그러질 못하고 현상유지에 급급한 실정”이라고 호소했다.

정부가 과잉생산과 소비부진의 장막에 숨지 않고 책임감 있는 가격정책을 추진하기를 쌀 농가들은 절실히 바라고 있다. 지난 9년과는 다른 색깔의 정부가 들어선 만큼, 농민들은 아직까지 일말의 기대를 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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