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살 헌법, 이제는 농민을 돌아볼 때 <1>

‘농민권리 신장과 헌법개정’ 토론회 1부

  • 입력 2017.09.10 02:05
  • 수정 2017.09.10 11:13
  • 기자명 권순창·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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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이라는 무거운 주제에도 적지 않은 농민들이 여의도를 찾았다. 토론을 경청하는 농민들의 눈빛은 오히려 종전 어느 토론회보다도 반짝이고 진지했다. “지역 순회 토론회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좀 내 달라”는 김관영 의원의 부탁에 김순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은 “농민들이 광주전남 토론회에 갔는데 인원제한이 있다고 들여보내 주지도 않았다”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농민권리 신장과 헌법개정’ 토론회는 개헌에 대한 농민들의 열기를 소화할 또 하나의 커다란 분출구로서 마련됐다. 의원들의 기조발표와 해외인사들의 사례발표, 그리고 현장성과 전문성을 두루 선보인 종합토론까지. 개헌 논의를 앞두고 농업계에 중요한 체크포인트가 될 이날의 토론을 지상중계한다. 주최는 이개호·위성곤(이상 더불어민주당)·황주홍·정인화·김관영(이상 국민의당) 의원 및 농민의길이며 주관은 <한국농정>과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이다.

정리 권순창·장수지 기자, 사진 한승호 기자

 

지난 4일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농민권리 신장과 헌법개정’ 토론회에서 헨리 사라기 인도네시아농민연합 의장이 유엔에서 추진 중인 농민권리선언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기조발표 1]
“농업에 대한 정부의 시각을 바꾸자”
정인화 의원(국민의당 원내부대표)
 

현행 헌법 제121조, 123조엔 농업에 관한 조항이 있지만, 이것이 농업에 대한 정부의 시각을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일부 법률에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보장하는 내용이 유사하게나마 포함돼 있어도 헌법엔 전혀 포함돼 있지 않다.
헌법은 최상위법이다. 법률의 모태가 되고, 입법·사법·행정 모두의 기준이 된다. 국회는 입법을 할 때 헌법적 가치를 일탈해선 안되며 행정도 헌법정신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 또한 헌법은 사법부의 판단·판결 기준이 된다. 따라서 농업의 가치는 반드시 헌법에 집어넣어야 한다.
그동안 정부가 농업을 보는 시각은 너무 편향돼 있었다. 내년도 농업예산 증가율은 0.04%에 그쳤고 농업에 대한 투자액은 너무나 적다. 보수정권·진보정권을 가리지 않고 농업 홀대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헌법에 반드시 넣고, 농민의 기본적 권리 또한 모두 넣긴 힘들겠지만 핵심을 추려 넣음으로써 정부가 농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근거로 삼아야 한다. 앞으로 몇십 년을 좌우할 수 있는 개헌인 만큼 농민들의 뜨거운 관심과 호소를 부탁드린다.



[기조발표 2]
“개헌, 농민의 의견 반영할 것”
김관영 의원(국회 헌법개정특위 제1소위원장)
 

헌법개정특위 제1소위원회는 재정경제분야 및 기본권을 담당하기 때문에 농민 기본권에 관한 조항은 우리 소위원회 소관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여러 차례 소위원회를 열었지만 아쉽게도 농업부문에 관한 의견개진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최근에 이런 문제를 알고 농민단체들이나 동료 의원들로부터 많은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 현재 총 11회의 전국 순회 토론회를 진행 중인데, 현장 농민단체들이 여기에 방문해 헌법상 농민 기본권이나 농업 조항에 관한 의견을 직접 내 주시기 바란다. 그래야 그 의견들을 토대로 11월에 국회에서 다시 논의를 할 수 있다.
농민에 관한 조항이 헌법에 들어간 사례가 사실 많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는 특정 산업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헌법에 어느 정도 원칙은 들어가야 그걸 뒷받침할 수 있는 법률들이 제정될 수 있다. 헌법의 원칙에 법률이 위배되면 위헌이 되기 때문에 헌법에 원칙이 서야 농민의 권리에 반하지 않는 법률이 만들어지고, 집행하는 과정에서도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앞으로 전국 순회 토론회에서 자주 만나뵙길 기대하겠다.



[해외사례 1]
“농민권리 명문화, UN에서도 활발”
헨리 사라기 인도네시아농민연합 의장(비아캄페시나 전 사무총장)
 

1990년대 들어 세계화·시장자유화의 물결이 세계를 휩쓸었다. 대형 인프라사업의 명목하에 빈곤한 국가들의 삶은 파괴됐고 천연자원은 점차 고갈됐다. 이는 개도국뿐 아니라 선진국 국민들의 삶도 힘들게 만들었다.
개발과 세계화의 부작용은 세계 농민들을 하나로 묶는 끈이 됐고, 우리는 1993년 국제농민연대조직인 비아캄페시나(La Via Campesina, 농민의 길)를 창립했다. 2001년부터 신자유주의에 대항해 목소리를 내던 우리는 2003년 제네바에서 농민권리 침해에 관한 캠페인으로 농민권리 문제를 외치기 시작했다.
식량위기를 겪으며 유럽 각국은 빈곤율 저감을 목표로 세웠지만 결국 개발과 세계화로는 성공할 수 없었다. 따라서 기아 해결을 위한 다양한 논의가 이뤄졌고, 그 때(2009년)부터 UN이 우리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현재 농민권리선언문 확정을 위한 UN 실무그룹 회의가 4차까지 진행돼 있다. 47개국으로 구성된 UN 인권이사회에선 당초 9개국이 반대의사를 표했으나 현재 반대국은 미국 하나만 남아 있다. 한국 또한 당초 반대 입장에서 기권으로 입장을 전환했다.
지난 5월 회의에서 많은 쟁점이 있었다. 많은 국가들이 농민의 정의로 ‘farmer(농부)’를 선호했는데, 한국의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 그렇듯 우리가 말하는 농민 개념은 ‘peasant(소작농)’다. farmer보다 땅과 환경에 더 결부돼 있는 느낌의 단어다. 또 일부 국가들은 ‘식량주권’이나 ‘종자에 대한 권리’ 등을 조항에서 삭제하길 원했는데, 우리 농민 입장에선 너무나 당연한 조항이기 때문에 존치를 강력히 요구했다.
현재 내년 2월경 UN 실무그룹 5차 회의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5차 회의에서 농민권리선언문을 확정하길 바라고 있다. 여기서 확정이 되면 내년 9월 뉴욕에서 열리는 UN 총회에서 농민권리선언문이 최종 채택될 수 있다.
우리 비아캄페시나는 스스로가 농민들이기 때문에 농민이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잘 알고 있다. UN 농민권리선언이 채택된다면 이것이 하나의 기조로서 농민들의 권리를 보장해줄 수 있다. 국제적으로 큰 이슈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농민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 또한 농민 문제는 기후변화 이슈에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농민권리선언을 바탕으로) 농민 문제에 국제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인다면 이런 다양한 문제 해결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해외사례 2]
농업의 가치 인정하는 볼리비아 헌법은…
후안 페드로 칼데론 사발라 주한볼리비아대사관 일등서기관
 

볼리비아 헌법은 농업과 농민의 권리를 담고 있다. 토지와 영토에 관해 그리고 지속가능한 농촌발전을 이야기하는 데 이 모든 것의 바탕은 농업의 사회·경제적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우선, 헌법은 개인 또는 집단·공동체의 부동산을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 목적에 충족되는 한 보장한다. 토지와 영토는 생존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이런 조항이 존재하며 만약 사회·경제적 목적을 충족하지 않는다면 헌법은 해당 토지를 경제적 보상에 갈음해 수용한다.
토지와 관련해 규정과 법은 규모의 제한을 설정하며 이들 각각에 대한 자격을 별도로 설정한다. 개인은 이러한 토지를 취득할 수 있지만 사회적 목적에 부합해야 하며 농촌·사회공동체 등에 반드시 해당돼야 한다. 이러한 경우의 부동산에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공동체의 토지 역시 사회·경제적 목적에 부합한다면 조세 대상이 아니다.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에 이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이며 불가역성을 가져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 만약 공동체가 충분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면 국가는 우선순위를 두고 토지를 할당해야한다. 이러한 노력으로 현재 농촌지역의 공동체 대부분은 충분히 경작할 만큼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한편, 볼리비아는 개인 또는 집단이 굉장히 큰 규모의 토지를 소유하는 경우 이를 금지하는 규정이 별도로 존재한다. 사회적 목적에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례로 외국인의 토지소유 또한 금지되며 개인·공동체에 하나 이상의 토지가 보장되거나 토지에 관해 타인이 소유권을 주장할 경우 별도로 존재하는 농업법원의 결정을 따라야하는 규정도 명시돼 있다.
볼리비아에서는 지속가능한 농촌 발전을 위해 무엇이든 재생 가능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토지를 이용해 산물을 생산 시 해당 경작지에서 다시 재배가 가능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통해 농촌·농민의 삶 수준은 지속적으로 향상돼야 하며 정부는 농촌 발전과 관련한 정책과 계획을 세울 의무가 있다.
이러한 헌법 규정들은 국가가 국민의 식량을 보장하고 토지로부터 생산되는 자원의 독점적 권리를 인정하도록 한다. 결국 국가는 토지를 보전하고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국민의 생존과 정책에 대한 책무를 가진다. 앞으로는 식량주권 확립을 위한 자립도 향상에 목표를 두고 △자연재해로부터의 생산물 보호 △토양의 보전 및 회복을 위한 정책 수립 △관개시스템 향상 등 노력을 계속할 계획이다.



[인사말]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 상임대표)

개헌이라 하면 대통령 임기를 늘리고, 권력자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그런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실 것이다. 하지만 촛불혁명 이후 개헌을 논의한 건 권력자가 아니라 농민, 노동자, 우리 국민들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와 가치를 싣고자 한 것이다. 그동안 권력자가 국민을 유린하고 이리저리 자기들 뜻대로 움직여 온 헌법에 마침내 농민·노동자·국민의 권리를 담고자 한다. 아무쪼록 의미있는 토론이 됐으면 한다.

이개호 의원(국회 농해수위원장 직무대리)

생명산업에 종사하는 농민들의 기본권은 여전히 보장되지 않고 있다. 최근 비아캄페시나 농민권리선언 활동에서 볼 수 있듯 농민 기본권 보장은 세계적인 큰 흐름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새로운 시대정신을 반영한 개선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 농업계도 농민의 권리 신장을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관심갖고 대응해야 한다. 농해수위원장 직무대리로서 농민 권리 신장과 헌법개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위성곤 의원

오늘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연설에서 농지 임대차 문제, 지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하게 말했다. 현장에서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이런 문제를 포함해 현행 헌법에 들어 있는 경자유전의 원칙을 어떻게 구현하고, 또 농업의 다양한 가치를 어떻게 담아내느냐 하는 것을 국민의 이해와 더불어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논의를 통해 헌법 속에 농민들이 요구하는 내용을 담아낼 수 있길 바란다.

황주홍 의원

지난 농해수위 회의에서 ‘현행 헌법 제123조에는 농어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명시돼 있는데, 농어업만을 위한 내용을 분리해 국가가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유지하는 의무를 지도록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내년 헌법개정을 약속한 만큼, 오늘 토론회를 통해 UN 농민권리선언 내용과 함께 우리 헌법에 농업의 가치와 농민의 권리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 논의가 되길 바란다.

윤영일 의원

공동주최 의원은 아니지만 관심이 많아 자발적으로 왔다. 농업은 생명산업인 만큼 지속가능한 산업이 돼야 하며 인간 주체로서 농민 기본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한 논의가 있겠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헌법이 농업·농민의 권리에 대한 깊은 성찰을 투영해서 앞으로 우리 농업이 발전하고 농민의 권리를 신장시킬 수 있는 근간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진지한 토론을 기대한다.

정현찬 가톨릭농민회장(농정개혁위원회 위원장)

농민의 권리는 어떻게든 헌법에 담아내야 한다. 종자주권을 외국자본에 넘겨주고 나니 농민들은 매년 종자를 사서 써야 한다. 안심하고 농사를 지으려면 토지가 받쳐줘야 하는데 이조차 안되고 있다. 식량주권을 뺏기고 수입산에 의존하는 국민들은 소위 혼을 빼앗긴 국민에 다름아니다. 이런 문제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에 의해 흔들리지 않도록 헌법으로 보장해 놔야 그나마 농민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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