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살 헌법, 이제는 농민을 돌아볼 때 <2>

‘농민권리 신장과 헌법개정’ 토론회 2부

  • 입력 2017.09.10 02:24
  • 수정 2017.09.10 02:39
  • 기자명 권순창·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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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이라는 무거운 주제에도 적지 않은 농민들이 여의도를 찾았다. 토론을 경청하는 농민들의 눈빛은 오히려 종전 어느 토론회보다도 반짝이고 진지했다. “지역 순회 토론회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좀 내 달라”는 김관영 의원의 부탁에 김순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은 “농민들이 광주전남 토론회에 갔는데 인원제한이 있다고 들여보내 주지도 않았다”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농민권리 신장과 헌법개정’ 토론회는 개헌에 대한 농민들의 열기를 소화할 또 하나의 커다란 분출구로서 마련됐다. 의원들의 기조발표와 해외인사들의 사례발표, 그리고 현장성과 전문성을 두루 선보인 종합토론까지. 개헌 논의를 앞두고 농업계에 중요한 체크포인트가 될 이날의 토론을 지상중계한다. 주최는 이개호·위성곤(이상 더불어민주당)·황주홍·정인화·김관영(이상 국민의당) 의원 및 농민의길이며 주관은 <한국농정>과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이다.
정리 권순창·장수지 기자, 사진 한승호 기자

 

지난 4일 열린 ‘농민권리 신장과 헌법개정’ 토론회에서 패널로 참석한 전문가들이 농민을 위한 개헌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주제발표]
“농민, 목소리 드높여 헌법 개정에 반영해야”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나는 내가 대표한다. 오늘날 헌법 개정이 맞이한 국면이다. 나의 생활과 이익 문제를 스스로 이야기함으로써 새로운 법 또는 국가질서로 만들어 내겠다는 것이다. 농업과 농민의 위기는 이미 두말할 나위 없이 진행됐고 농민의 이야기는 우리가 스스로 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왜 하필 헌법에 농업을 담아야 될까. 헌법은 대통령을 쫓아낼 만큼 강력한 권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또 농업을 헌법에 집어넣으려 노력함으로써 국민 모두가 농업과 농촌, 농민 문제에 각성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농업·농민의 권리가 법의 차원으로 고양되면 어느 누구에게라도 당당히 주장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농업과 농촌, 농민의 문제는 헌법이라는 최고법 지위에 못 박아야 한다. 국민의 의지를 담은 헌법 명령으로써 국가에게 농업의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집행될 수 있도록 강제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농민은 헌법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방향성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헌법은 34조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와 35조 환경권을 규정한다. 인간다운 생활의 핵심에는 식량이 존재하며 식량은 환경을 통해 제공된다. 농민이 생산한 식량으로 인간은 생태의 한 부분이 되고 농업과 농촌은 인간과 환경을 연결하며 삶을 풍부하게 만든다. 때문에 두 조문의 중간에 별도의 규정을 신설해 식량권과 식량안보, 식량주권에 관한 개념을 담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농촌노동자의 노동권 보호도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특히 농업의 다기능성을 감안할 때 이들의 노동은 다른 산업분야와 달리 수많은 경제외적 가치를 산출한다. 하지만 온당한 보상을 받지 못 했고 농촌의 노동조건은 일반산업에 비해 열악했다. 이에 헌법은 농촌노동자에 대한 국가적 의무를 규정해 형평적인 보상을 책임져 농촌사회를 회복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게다가 농어업보호조항인 123조는 아무리 읽어봐도 농업과 농민을 보호하는 조항이라 인식되지 않는다. 농업을 경제의 하위개념으로 하향평준화할 뿐이다. 이에 123조를 분리해 각각의 영역에 대한 별도의 규정으로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독립된 조항으로 농업 또는 농민을 보호하는 기본적인 목표와 국가 의무사항을 구체적으로 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떤 내용을 헌법에 담는 방법은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 기본적인 가치로 담아내는 것, 권리를 규정하는 방법 그리고 국가의 의무조항으로 지정하는 방식이다. 사실 농업·농촌, 농민과 관련된 권리가 명확하고 뚜렷하게 규정되지 않는 한 이 모든 내용은 국가의 의무조항으로 밖에 담을 수 없다. 하지만, 농민 스스로가 목소리를 드높여 농업, 농촌 그리고 농민의 문제를 이슈화하고 규범으로 정리한다면 이를 기본적인 가치와 권리로 규정할 수 있다. 농민가 가사처럼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그 목소리들이 솟아오른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토론 1]
“농민 위한 개헌, 농민이 나서자”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현장 농민들에겐 당장 올해 쌀값이 더 중요하지 사실 개헌이란 주제가 크게 와닿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헌법은 정치권력의 문제일 뿐 농민들이 자신의 삶과는 무관하다 여겨왔다. 개헌운동이 첫 번째로 넘어야 할 산은, ‘헌법은 우리의 것’이라는 농민들의 의식을 바로잡는 일이다.
쌀값 보장이 농식품부가 아닌 기재부·청와대가 나서 해결해야 할 문제란 것은 농민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농업 자체의 문제로 한정돼 있는 농업·농촌 문제를 국가와 국민 차원의 문제로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필요한 법을 만들면 되지 굳이 헌법을 개정해야 하냐’고 묻는 것은 쌀값 문제를 농식품부에 가서 얘기하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1987년 제9차 헌법개정 이후 농민들에겐 UR·WTO·FTA 등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이란 위기가 닥쳤다. 개정 이후에 새로운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현재의 헌법은 이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사실상 WTO가 헌법 위에 군림하고 있다. 농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나 조례를 만들려 해도 WTO에 저촉돼 못 만드는 일이 발생한다. 초국적 자본이 농민의 권리 위에 군림하는데도 헌법이 이를 전혀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헌법을 개정하지 않고선 변화된 시대,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농업을 지킬 수 없는 것이다.
농민들이 생산하는 것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식량주권과 연계되는 농작물 생산이며, 또 하나는 다원적 기능과 공익적 가치에 해당하는 비농업적 생산이다. 그동안 외면받아 왔던 이 생산물이 올바른 대접을 받는 데 헌법이 기초가 돼야 한다.
그런 헌법을 우리가 직접 만들어야 한다. 헌법개정은 가면 갈수록 국민기본권보다 정치권력 문제로 치우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농민들부터 각성해야 한다. 농민헌법쟁취운동본부 구성을 제안한 바 있는데, 빠른 시일 내에 농민들이 ‘우리의 헌법’을 만드는 데 힘을 합쳤으면 한다.



[토론 2]
“헌법의 농민권리 보장, 지극히 당연한 것”
윤병선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헌법에 농민을 위한 별도의 권리를 담아야 하는 까닭은 단순히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농업을 보호하고 배려하기 위함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일반적 경제법칙이 농업·농민에 대해선 작동하지 않는 특수성 때문이다.
농민들은 자본-임노동관계에 직접적으로 포섭되지 않고 스스로 땅을 매개로 생산활동을 한다. 그 생산활동은 지역사회의 유지와 맞물려 있고, 이는 국토환경의 유지 발전과 연결되며, 국민들의 먹거리와 직접 관련돼 있다.
또한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의 가격결정 메커니즘은 시장경제에서 항상 농민에게 불리하게 작동하고, 농민들의 생활공간인 농촌은 자본의 공격에 항상 위협받고 있으며, 법체계는 공권력조차 자본의 편에 서게 만들었다. 이런 농민이 농업생산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토록 하는 것이 헌법의 역할이다. 농민은 보호와 배려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담지자로서 인정돼야 한다.
비아캄페시나는 농업에 대한 자본의 지배가 농업·농촌·농민의 지속가능성을 훼손시켰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농민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권리를 농민권리선언으로 정리했다. 이를 부분 수용한 UN 농민권리선언 초안에선 비아캄페시나가 강조한 식량주권 개념이 많이 훼손됐지만, 우리 헌법은 이 UN 초안 수준의 농민권리조차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
농업의 공익적 성격도 곱씹어봐야 한다. 자본주의 시장의 수요는 공익적 성격을 반영하지 못하고, 이로 인해 시장실패가 발생하므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농민이 수행하는 공익적 활동은 국가가 장려하고 지원해야 할 부분이지 배려의 대상은 아니다.
농민의 권리뿐 아니라 공익적 성격조차도 인정하지 않는 현재의 대한민국 헌법은 당연히 개정돼야 한다. 농업의 다원적·공익적 기능을 통해 이해관계의 대립을 조정하면서 농민의 권리도 담아내는, 그리고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조항들이 헌법이 담아야 할 최소한의 내용이다.



[토론 3]
“농업분야의 헌법 개정, 국민적 공감 선행돼야”
이재욱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정책국장
 

기본권으로써 식량주권을 어떻게 보장하느냐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최근 쌀이 남아돌며 식량에 대한 소중함 그리고 식량주권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당장 기획재정부에 예산을 받으러 가도 쌀이 남아도는 데 무슨 식량예산이냐는 말을 듣곤 한다. 굉장히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농업·농촌·농민에 대한 인식 또는 공감대가 부족해 아직도 가야될 길은 멀기만 한 것이다.
특히 식량권, 식량주권의 보장은 2015년 기준 식량자급률이 50.2% 내외인 우리 현실로 보아 헌법 반영 시 아주 큰 의미를 갖게 된다. 국민에게 안전한 농식품을 공급함으로써 국민의 식량주권을 보장하는 것은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현행 헌법 121조 경자유전의 법칙 및 소작농 금지 규정과 관련해서는 유지가 필요하다. 농지의 유한성, 회복 불가능성 그리고 식량의 안정적인 공급기반 유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경자유전의 법칙은 규범으로 유지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봉건적인 소작제도는 사라졌지만 농지 임차농가는 2015년 기준 59.6%에 달하고 임차농지 역시 50.9%로 절반을 넘어섰다. 그러므로 지주와 임차인 간 불평등 임대차 계약을 방지한다는 측면에서라도 소작농을 금지하는 현행 규정의 유지 또한 필요하다.
한편, 123조의 경우 지역경제 육성 및 중소기업 보호 등 여러 조항들이 혼재돼 있다. “이게 과연 농업관련 조항이냐”라는 주장들이 많은데 농식품부 역시 농업의 특수성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조문을 분리시킬 필요성에 동의한다. 그래서 이 조항은 우리 농업과 관련된 내용만 담을 수 있도록 개헌을 추진하는 게 맞다.
이렇게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포함한 헌법 개정을 추진하려면 국민적 공감이 선행돼야 한다. 그리고 향후에는 농업계와 국회를 중심으로 개헌 방향성에 대한 다양한 토론의 자리가 조속히 마련돼 농업분야 헌법에 대한 조문화 작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토론 4]
“농민 직접 주도로 농정 전환 계기 삼을 것”
이춘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지난달 29일 부산시청에서는 헌법개정 국민대토론회가 진행됐다. 2시간을 운전해 토론회 시작보다 1시간가량 앞서 도착했지만 200명으로 제한된 토론회장에는 참석할 수 없었다. 설사 운좋게 토론회에 참석해도 좌장의 선택을 받지 않으면 발언을 할 기회조차 없다. 이번 국회 개헌특별회가 정말 국민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형식적으로 토론회를 개최한다는 것을 깨달은 대목이다. 국민이 주도하는 개헌이 되기 위해 국회는 그 목소리를 직접 듣고 반영해야 한다.
요즘 살충제 계란으로 농민들은 곤욕을 겪고 있다. 언론에서는 농민을 싸잡아 왜 금지된 농약을 사용했는지, 친환경 농가에서 왜 그런 약물이 검출됐는지 등을 끝없이 얘기한다. 실질적으로 농민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원인에는 관심조차 없다.
농식품부는 대안으로 동물복지를 내세웠다. 이에 농민들은 동물의 복지는 향상되는 데 그 동물을 키우는 생산자, 농민들은 왜 복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느냐고 얘기한다. 때문에 이번 개헌엔 농민의 권리와 복지가 꼭 반영돼 조항으로 규정되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 여성농민. 농촌·농민만 하더라도 많은 차별을 받고 있지만 여성의 경우 그 정도가 더 심하다. 헌법 32조 4항을 살펴보면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고용·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돼 있다. 또한 볼리비아의 경우 여성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므로 농경지 취득 및 상속에서 차별받지 않는다는 조항도 존재한다. 이처럼 여성농민은 보호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 인정하는 관점을 원한다. 여성농민을 농업의 주체로써 인정하고 차별하지 않는 방향으로 개헌은 추진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헌법에 담은 스위스, 독일 등 선진국의 사례는 농업이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업임을 보여준다. 때문에 이번 개헌은 농민이 직접 주도해 식량주권과 농민의 기본권을 실현하고 농정의 새로운 틀 마련으로 농업·농촌에 대한 다양한 정책과 지원이 펼쳐질 수 있길 바란다.



[좌장]
농업·농촌 가치 인정하고 반드시 헌법에 담아야”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사실 식량주권이나 농민권리,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을 다루는 등의 농업문제는 그 동안 우리가 수없이 논의하며 해결하려 노력해 온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이것을 헌법에 어떻게 담을 것이냐가 새로운 과제로 던져졌다.
우선, 헌법이 농업·농촌, 농민의 문제를 다루려면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또 헌법에 농업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는 농민뿐 아니라 국회 등 정치권이 함께 안을 만들어 다뤄야 한다. 지금 국회 개헌특별위원회는 토론회에 참석해 의견을 주장해야만 헌법개정안에 이를 반영한다고 한다. 상당히 비효율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이런 점들은 속히 개선해 국민모두가 신뢰하는 법 규정이 제정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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