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 농민을 담자

  • 입력 2017.09.10 02:38
  • 수정 2017.09.20 10: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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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우리 헌법에 농업·농촌·농민에 대한 가치를 담을 수 있을까. 실로 오랜만에 찾아온 개헌정국을 맞아 농민들의 적극적인 목소리가 필요한 시기다. 지난 4일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농민권리 신장과 헌법개정’ 토론회에서 전문가와 농민, 정부 관계자들로 구성된 패널들이 헌법에 농민을 어떻게 담아야 할지를 놓고 토론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업은 생태·환경·문화·먹거리 등 인간 삶의 근본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농업의 쇠락은 농업과 연결된 이 모든 요소들의 쇠락을 초래하며, 종국엔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하지만 철저히 산업화되고 도시화된 현대사회의 기준에서 농업이란 ‘후진적’이고 ‘비효율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분야일 뿐이다. 입으로는 모두가 농업의 중요성에 공감한다지만, 중요도에 걸맞은 대접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 자체가 결국 산업화와 도시화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것이 그렇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때, 우리는 하나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 확고부동하고 영향력 있는 원칙이 세워진다면, 우리가 행하는 수많은 행동에 있어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향성을 견지할 수 있다.

최근 UN에서는 농민권리선언문 채택을 위한 준비과정이 한창이다. 여기엔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한 농민의 다양한 권리와 이에 따른 국가의 의무가 담겨질 예정이다. 농민권리선언문 채택은 전 세계 국가들이 농업의 가치를 되새기는 계기가 된다. UN의 선언문은 인류가 공통으로 지향해야 할 하나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국가 단위에도 이처럼 원칙을 설정하는 장치가 있다. 일반적으로는 헌법이 그것이다. UN 선언문이 원론적·거시적·간접적인 데 비해 헌법은 그 국가에 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또 강제적인 규범이다. 우리 헌법에 그동안 빠져 있던 농민의 권리와 농업의 가치를 삽입한다면, 농민을 위한 법과 제도, 정치와 행정이 이뤄질 수 있는 실질적인 근거가 생기게 된다. 또한 농민의 권리에 역행하는 국가의 정책과 법률은 위헌이 된다.

결코 막연한 얘기가 아니다. 스위스·볼리비아 등 몇몇 국가들은 일찍이 농업의 가치에 주목하고 명문화된 헌법 조항을 통해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고 있다. 미국도 법률 등을 통해 원칙을 세우고 있으며, EU 또한 농업의 가치를 따로 명문화해 지키고 있다고 한다.

때마침 우리나라는 1987년 마지막 개헌 이래 가장 적극적인 개헌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후보 시절부터 개헌을 언급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를 병행해 헌법을 개정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역사적으로 개헌 논의가 대통령·국회의원의 임기 조정 등 정치논리로 치우쳤던 경향이 있고 이번 개헌 또한 큰 변화는 기대하기 힘들 수 있지만, 어찌됐든 30년만의 개헌 정국은 농민들에게도 놓칠 수 없는 기회가 될 것이다.

경자유전의 원칙, 지역경제 육성, 농산물 가격안정과 자조조직 육성. 현행 헌법이 농업·농민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조항은 이 정도다. 보다 실질적으로 농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선 어떤 조항을 담아야 할까. 남은 시간은 길지 않고 대변해줄 사람은 많지 않다. 농민들의 주체적인 고민과 참여가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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