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농업 통계조사 신뢰할 수 있을까?

[ 기고 ③ ] 김제 조경희 농민

  • 입력 2017.04.21 23:16
  • 수정 2017.04.21 23:17
  • 기자명 김제 조경희 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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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제 조경희 농민]

촛불대선을 앞두고 언론에 연일 후보들에 대한 지지도 여론조사가 우후죽순처럼 발표되고 있다. 대부분의 여론조사는 언론사가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한 표본조사 내용을 분석해 발표하는 형식인데 왜 제 각각 다른 것일까?

그것은 표본조사 방법의 차이에 있다. 표본조사 대상이 되는 모집단의 설정, 유무선 전화 비율, 면접조사와 ARS(자동응답)의 비율, 연령대별 표본의 수 등을 여론조사 기관마다 달리하기 때문이다. ‘여론조사가 여론을 만들어 낸다’ 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여론조사 기관은 조사를 의뢰한 언론사의 의도를 반영해 얼마든지 조사방법을 달리할 수 있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실제 여론을 의도적으로 왜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부의 농업 통계조사 발표는 어떨까? 이 또한 표본조사 방법에 따라 표본농가의 선정과 내용이 달라질 수 있고, 실제 농촌 현실과 다른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농업을 이해하는 기초 자료는 전수조사에 해당되는 10년 주기의 농업총조사와 5년주기의 인구총조사 결과를 분석해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해마다 달라지는 농산물 생산 면적과 생산 품목, 생산량, 수매 가격, 출하 가격, 생산비 등은 지역별 표본을 조사해 발표하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의 농업 통계조사에 대한 방법과 대상, 조사내용 등의 모든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결과만을 발표한다는 점이다.

김대중정부 시절 농가부채 문제가 정부의 자료와 농민단체들의 주장에 큰 차이가 있어 민관 공동으로 진행한 표본조사 작업(표본농가에 대한 면접 설문조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조사 결과 정부의 자료가 더 정확했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표본으로 선정된 농가의 대부분이 60대 이상의 고령농민이라 경작면적도 작고 보유한 농기계도 없을 뿐 아니라, 이미 자녀들이 학업을 마쳤기 때문에 생활비 지출도 적으니 농가부채가 적게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또한 통계청에서 표본농가를 선정한 이후 해당 농가에 그 사실을 미리 알리고 일정 기간 지속적으로 표본농가로 관리하며 조사에 응하도록 해 농가들이 의식적으로 조사내용에 대비할 수 있다는 것도 문제가 됐다. 가령 학교에서 전체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평가하기 위해 무작위로 선정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표본조사를 하는데, 그 사실을 학생에게 미리 알려준다면 해당 학생도, 선생님도 더욱 신경을 쓰게 돼 조사 결과의 신뢰성을 잃을 수 있다.

농촌은 65세 이상이 전체 농가의 40%를 넘기 때문에 농가를 모집단으로 삼아 표본을 선정하면 고령농의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제 경작면적의 대부분은 청장년층이 경작하고 있기 때문에 농지를 모집단으로 표본을 선정하면 청장년층 농가가 표본이 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어떤 것이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조사 방법인지 면밀히 검토해 봐야 한다.

올해 초 공공비축미 우선지급금 환수 조치와 관련해 만난 공무원이 “위에 있는 놈들도 참 멍청하지! 어차피 아무도 모르는 데 매입가격을 적당히 맞춰서 넘어가면 될 것을, 얼마나 이익이 된다고 농민들 반대하고, 우리 같은 사람들 부담되는 짓거리를 하는지 몰라! 답답해 죽겠어!” 라고 푸념을 했다.

이 말을 듣고 공감이 되는 것은 ‘매입가격을 적당히 맞춰서’ 가 아니라 ‘어차피 아무도 모르는데’라는 대목이다. 아무리 불리한 내용이어도 통계조사 내용을 조작하거나 왜곡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통계조사에 임하는 사람의 양심이자 자부심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조사 내용을 아무도 모르는 것이 아닌 모두가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농민단체에도 제안을 드리고 싶다. 정부의 농업 통계조사가 농민들이 처한 현실과 차이가 크다면 직접 조사를 해보길 바란다. 농민단체의 경우 전국 각 시·군에 조직과 회원이 있기에 중앙에서 표본조사 방법을 설계하고 표본으로 선정된 농가에 대한 면접조사를 실시한다면 보다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정부의 농업정책에 대한 개혁을 요구할 때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정부가 만들어 낸 농업 통계조사 결과에 의존해 정부의 농업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본다. 농민 스스로 농촌 현실에 대한 조사와 이를 통계수치로 확보하면 농민의 권리를 찾는 일에 큰 무기를 만드는 것과 같다. 아는 것이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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