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미래, ‘인구 늘리기’ 아닌 ‘주민 행복 늘리기’에 달려

‘스무 살’ 지역재단의 지역재생 방안은?

  • 입력 2024.03.29 13:15
  • 수정 2024.03.30 18:28
  • 기자명 강선일·문지영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강선일·문지영 기자]

지난 21일 서울 양재동 aT센터 그랜드홀에서 열린 지역재단 창립 20주년 기념식 중 참가자들이 지역의 미래에 대한 희망 메시지를 적은 종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문지영 기자
지난 21일 서울 양재동 aT센터 그랜드홀에서 열린 지역재단 창립 20주년 기념식 중 참가자들이 지역의 미래에 대한 희망 메시지를 적은 종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문지영 기자

‘순환과 공생의 지역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지역주체 양성, 현장 중심 연구활동, 사회연대 활동을 다각도로 수행해 온 (재)지역재단(이사장 허헌중)이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최근 지역재단은 ‘지방소멸’, ‘지역개발’을 명목으로 중앙과 자본을 살찌우는 상황에 맞서,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지역리더의 유쾌한 반란’에 동참하자고 제안 중이다.

‘지방소멸’ 개념, 무비판적 수용 금물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고문의 새 책 '강요된 소멸'. 지역재단 제공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고문의 새 책 '강요된 소멸'. 지역재단 제공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고문은 지역재단 20주년을 맞아 발간한 저서 <강요된 소멸>(한울)에서 소위 ‘지방소멸론’의 실체를 파헤치면서, 지방소멸론이 ‘일제(日製) 불량품’이라고 단언했다. 왜일까?

지방소멸론은 마스다 히로야 전(前) 일본 총무대신이 2014년 5월 발간한 <마스다보고서>에서 유래됐다. 이 보고서는 일본 전체 1747개 시정촌(일본의 기초지자체) 중 절반 이상인 896개가 2040년까지 소멸할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을 담아 일본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일본 정부는 2014년 9월 마스다의 발상을 상당 부분 참고한 전략인 ‘지방창생’ 정책을 시작했다. 지방창생 정책의 핵심 논리는 ‘선택과 집중’이다. 지방 중추 거점도시를 택해 이곳에 주거·교육·노동 관련 기능을 몰아넣고, 투자와 시책도 집중시킨다. 이렇게 거점도시를 육성하고, 거점도시와 거점도시를 연결하고, 거점도시와 주변 지역을 연결하는 것이 지방창생 정책의 주된 내용이다.

<마스다보고서> 속 지방소멸론 개념은 다음 해 국내에 ‘직수입’됐다. 국내 연구자들도 마스다의 연구방법론을 본 따 각 지자체의 소멸위험 여부를 판단했다.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박사는 2015년 마스다의 분석 방법을 차용해 작성한 보고서「한국의 ‘지방소멸’에 관한 7가지 분석」에서 국내 228개 기초지자체 중 79개가 ‘소멸위험지역’이 됐다고 추정했다. 이후 국내 언론과 정치권, 학계에서 무비판적으로 ‘지방소멸’, ‘지역소멸’ 개념을 받아들였다는 게 박 상임고문의 주장이다.

박 상임고문은 <강요된 소멸>에서 이러한 일본발(發) 지방소멸론에 대해 “인구가 감소한다고 해서 지자체가 소멸할 이유는 없고, 설사 행정 통합으로 지자체가 소멸한다 해도 지방이 소멸할 이유는 없다. (중략) ‘인구감소 = 지방소멸’이라는 단순 논리에 놀아나선 안 된다”고 한 뒤 지방소멸론의 근원인 일본의 조사 연구를 인용한다.

일본 국토성이 2015년 817개 시정촌 내 6만5440개 집락(마을)을 대상으로 무(無)거주화 가능성을 조사한 뒤 발표한 ‘과소지역 등 조건불리지역 집락의 현황’에 따르면, 이 중 10년 내 무거주화 가능성이 있는 집락은 515개(0.8%), 언젠가 무거주화할 가능성이 있는 집락은 2697개(4.1%)로 조사됐다. 2010년 동일한 조사에서 10년 이내 무거주화 가능성이 있다고 한 452개 집락 가운데 5년간 실제로 무거주화 상태가 된 집락은 41개로 9.1%에 불과했다.

박 상임고문은 “농촌인구 감소는 지금과 같은 사회경제구조에서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는 한 소멸하지 않는다”며, 지방소멸 문제에 대해 올바른 관점의 접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즉 △해외 사례를 무조건 본 딸 것이 아니라 반면교사 혹은 비판적 시각에서 접근 △지역정책은 지역주민의 관점에서 추진 △지역정책은 인구 늘리기 관점이 아니라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한 것 △지역경제 재생을 위한 농산어촌 재생 △지역개발 정책 핵심요소를 외생적 개발(중앙정부·자본 주도)에서 내발적 발전(지역민 주도)으로 전환 △기후·먹을거리·지역 위기에 대응하는 지역 만들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역재단이 2022년 초 ‘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 개벽대행진(개벽대행진)’을 벌이며 지역민들과 함께 만든, 위기에 대응하는 지역 만들기 방책 ‘3강 6략’은 본지에서도 소개한 바 있다.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고문의 새 책 '지역리더의 유쾌한 반란'. 지역재단 제공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고문의 새 책 '지역리더의 유쾌한 반란'. 지역재단 제공

지역 살리기 과정엔 지역리더(지역주체)의 역할도 중요하다. 박 상임고문은 지역재단 20주년을 맞아, 그동안 전국 각지에서 만났던 지역주체 13인의 이야기를 모은 책 <지역리더의 유쾌한 반란>(휜소나무)을 펴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체 13인은 △박진숙 전 곡성 죽곡면 주민자치회 위원장 △권혁주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전 부여군농민회 사무국장) △황민호 옥천신문 대표 △이영수 영천 사람사는농원 대표 △한석주 제천 농업회사법인 덕산청년마을 대표 △박종범 소셜벤처 농사펀드 대표 △소희주 진주텃밭협동조합 대표 △이도훈 괴산 먹거리연대사회적협동조합 대표 △정상진(전)·조대성(현) 홍성유기농영농조합 대표 △김정열 상주 언니네텃밭 봉강공동체 감사 △유재흠 부안군우리밀영농조합 대표 △나종구 홍천 사랑말한우영농조합 대표 △김해환 청송 현서농협 조합장이다.

지역리더의 ‘유쾌한 반란’은 계속된다

지난 21일 서울시 양재동 aT센터 그랜드홀에서 열린 (재)지역재단(이사장 허헌중) 창립 20주년 기념&지역리더 후원의 밤 행사 중 도올 김용옥 선생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문지영 기자
지난 21일 서울시 양재동 aT센터 그랜드홀에서 열린 (재)지역재단(이사장 허헌중) 창립 20주년 기념&지역리더 후원의 밤 행사 중 도올 김용옥 선생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문지영 기자

지난 21일 지역재단 창립 20주년 기념식이 열린 서울 양재동 aT센터 그랜드홀은 지역주민의 행복을 위해 분투하겠다는 지역재단의 결의에 화답하듯, 300명에 가까운 지역리더 및 농민·시민단체장, 전문가 등으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날 새로 취임한 허헌중 지역재단 이사장은 “지역 주도 내발적 발전의 필요 속에서 지역 문제를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하는 리더들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데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2년 개벽대행진 과정에서 박 상임고문과 함께했던 도올 김용옥 전 한신대 석좌교수는 기념사를 통해 “농민·농업·농촌이야말로 국가의 기본이다. 미국, 유럽, 중국 등에 비해 비정상적인 농업정책을 추진하는 한국 현실에 대응하고자 지역재단과 함께 개벽대행진을 진행했다“며 “시대의 우환을 같이 나누고 농산어촌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이 동양고전에서 의미하는 ‘애인(愛人)’”이라고 전했다.

기념식에선 ‘지역리더의 유쾌한 반란’ 사례들도 공유됐다. 전남 곡성에서 온 박진숙 전 죽곡면 주민자치회 위원장은 지역주민들이 농사수업, 생태공동체 학습, 먹거리 취약계층 지원활동, 마을밴드 등 문화 활동을 함께 운영하고 이러한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주민 주체가 마을교육사회적협동조합이나 주민자치회를 결성해 지역 활동에 의미와 재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소개했다.

한석주 덕산청년마을 대표는 충북 제천시 덕산면에 청년을 위한 공유농지 2000평과 공유주택을 확보하고 농사 외에도 청년들과 함께 지역사회 어르신 집수리, 반찬 배달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고 소개하며, “청년들이 주체적 삶을 살 뿐 아니라, 청년 중심의 새로운 농촌문화와 농촌공동체의 방향을 스스로 제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2004년 3월 창립한 지역재단은 1998년 ‘지역을 생각하는 모임’으로 시작해, 전국지역리더대회, 지역리더포럼, 전국지역리더상 등을 운영하며 1만3000여명의 지역리더를 발굴·연결하고 지역 역량 강화에 기여해 왔다. 또한, 지역활동조직 지원을 위한 조사연구, 농정대전환을 위한 담론과 정책의 의제화를 통해 지역문제 해결을 위한 내발적 발전전략 및 정책대안 등을 제안해왔다.

한편 그동안 순수 민간지원기금으로 운영된 지역재단은 앞으로 ‘지역리더 희망기금’을 조성해 지역리더를 육성·지원하며 지역기반 사업을 넓혀가겠다는 입장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