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임·선출직’ 농협중앙회장, 퇴직급여만 7억원?

‘퇴직금 대신’ 농협중앙회장 퇴임공로금 3억여원 확실시

겸직 중인 농민신문 회장 퇴직금 3억여원 우회 지급까지

“공로패 정도라면 모를까 … 퇴임공로금 왜 줘야 하나?”

  • 입력 2024.02.11 18:00
  • 수정 2024.02.11 18:46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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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농협중앙회장 퇴임공로금은 회장 교체 시기마다 불거지는 고질적인 논란거리다. 2016년 최원병 전 회장 퇴임 땐 11억1,800만원이라는 엄청난 액수에 질타가 쏟아졌고, 2020년 김병원 전 회장 퇴임 땐 편법·위법의 여지가 있는 지급으로 구설에 올랐다(관련기사: 농협 ‘퇴임공로금’에 대하여). 퇴임을 앞둔 이성희 현 회장에겐 두드러지는 이슈가 없지만, 매번 문제가 되고 있는 농협중앙회장 퇴임공로금제 자체가 과연 정의로운가에 대해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오히려 회장 개인의 특별한 이슈가 없는 지금이 퇴임공로금제의 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농협중앙회장 퇴임공로금은 농협중앙회 내규(임원 보수 및 실비변상 규약)에 따라 지급된다. 금액은 급여의 20%에 재직기간을 곱한 값이다. 기본급여만 따져 계산해 본다면, 가장 최근에 공개된 농협중앙회장 연봉이 3억9,000만원(2021년)이니 이성희 회장이 수령할 퇴임공로금은 대략 3억원대로 추정된다(임기 4년 1개월여).

하지만 실질적인 퇴직급여는 더 많다고 봐야 한다. 최원병 전 회장 ‘11억 퇴임공로금’ 논란 이후 농협중앙회장은 ‘농민신문 회장’ 직책에 대한 퇴직금을 받지 않기로 했지만, 비정상적인 연봉 인상으로 사실상 퇴직금에 해당하는 액수를 연봉에 반영해왔다.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중앙회장 연봉 인상률이 8.3%인 데 비해 농민신문 회장 연봉 인상률은 무려 36.1%다. 이로 인해 농민신문 회장 연봉(4억1,500만원)은 중앙회장 연봉(3억9,000만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농민신문 회장 연봉이 ‘상식적인 수준(중앙회장과 동일한 연봉 인상률)’으로 인상됐다면 3억3,000만원 정도에 머물렀어야 한다. 연간 8,500만원(4억1,500만원 - 3억3,000만원)의 비상식적 차액이 발생한 것이며 이를 4년 임기동안 누렸으니 누적 3억4,000만원이 된다. 폐지된 퇴직금을 보전하고도 남는 액수다. 즉, 현시점 농협중앙회장이 받는 실질 퇴직급여는 중앙회장 퇴임공로금 3억여원에 농민신문 회장 퇴직금 편법지급액 3억여원을 합해 7억원 수준이라 볼 수 있다.

이성희 농협중앙회장 퇴임(오는 3월)을 앞두고 농협중앙회장 퇴임공로금 문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과도한 지급액, 그리고 지급 자체의 정당성에 이르기까지 농협중앙회장 퇴임공로제는 오랜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지난달 25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25대 농협중앙회장 선거에서 이성희 회장이 강호동 후보의 당선을 알리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한승호 기자
이성희 농협중앙회장 퇴임(오는 3월)을 앞두고 농협중앙회장 퇴임공로금 문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과도한 지급액, 그리고 지급 자체의 정당성에 이르기까지 농협중앙회장 퇴임공로제는 오랜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지난달 25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25대 농협중앙회장 선거에서 이성희 회장이 강호동 후보의 당선을 알리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한승호 기자

문제는 명료하다. 먼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듯 액수가 과도하다. 가뜩이나 중앙회·농민신문 합계 8억원이 넘는 연봉에 이와 별개로 각종 업무수당을 지급받는데, 퇴임공로금까지 합하면 농협중앙회장이 받는 4년 급여총액은 약 40억원에 이른다. 일반기업이라도 구설에 오를 만한 액수인데 심지어 농협은 농민들의 민주적·자조적 조직인 협동조합이다. 연 농업소득 900만원 시대, 농민들의 사회·경제적 위상이 점점 위축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농협중앙회장이 받는 과도한 연봉과 퇴임공로금은 농협의 기업화, 협동조합 정신 상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더욱이 농협중앙회장은 비상임 명예직이다. 2012년 농협중앙회 사업구조 개편 이래 농협의 경제·신용사업은 지주회사 대표들이 책임지고 있고, 중앙회장은 교육·지원사업과 대외활동을 담당한다. 맡은 업무에 비해 명백히 과한 수준의 연봉·퇴직급여가 지급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애당초 퇴임공로금이란 것은 농협중앙회장을 상임에서 비상임으로 전환하면서 퇴직금을 지급할 수 없게 되자 농협이 자의적으로 마련해 놓은 장치다. 법적 지급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농협중앙회장 퇴임공로금(급여의 20% × 재직기간)은 상임 회장의 퇴직금과 같은 수준이며 소득세법상 임원 퇴직소득 한도치에 해당한다. 적어도 급여상으로는, 상임을 비상임으로 전환한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이는 지난 8년 동안 이어져온 국회의원들의 반복 지적사항이기도 하다.

한발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퇴직급여제도의 취지를 생각해볼 때 상임·비상임을 막론하고 농협중앙회장에게 퇴직급여를 지급하는 것 자체가 과연 타당한지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농협중앙회장은 비상임 명예직인 데다 복무기간이 4년뿐인 임기제 선출직이다. 장기근속이 불가한 데다 퇴직 후 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을 정도의 막대한 급여를 수령한다. 심지어 ‘본업’이 농업이기 때문에 퇴직 이후에도 정년 없는 경제활동을 영위하기가 매우 수월하다.

같은 임기제 선출직인 국회의원·지방의원·지자체장 등은 퇴직급여를 받는 경우가 전무하다. 지자체장들이 퇴직급여를 지급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한 사례들이 있지만 선출직의 특수성이 인정돼 모두 패소 판결이 내려진 바 있다.

물론 공직자인 이들을 농협중앙회장과 똑같이 취급할 순 없다. 농협중앙회가 자율적인 조직인 이상 중앙회장 급여 결정은 중앙회 경영진의 재량사항이다. 다만, 농협중앙회장은 위탁선거법의 관리를 받고 정부 농정사업을 수행하는 자리로서 공공단체장에 준하는 지위를 갖고 있다. 세간의 이목과 농민조합원의 눈높이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다.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 관계자는 “농협중앙회장에게 퇴임공로금이 왜 지급돼야 하는지 원천적으로 납득되지 않는다. 설령 회장이 임기 동안 제 역할을 잘 수행했다 하더라도 감사패·공로패 정도는 수여할 수 있겠지만, 굳이 퇴임공로금을 지급하는 건 단지 전관예우의 끝판왕 격이다”라고 불편한 시각을 표출했다.

농협중앙회 안팎에선 “‘셀프연임’ 무산 이후 이성희 회장의 최대 관심사는 퇴임공로금”이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근거 없는 추측성 루머일 수도 있지만, 임기 막판까지 이처럼 혼탁한 소문이 이어지는 데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건 다름아닌 농협중앙회의 ‘방만한 급여 시스템’ 그 자체다. ‘이렇게나 많이 지급해야 하는가’, ‘꼭 지급해야만 하는가’. 보편적 사회관념에 입각해, 농협중앙회장 퇴임공로금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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