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농업결산] ‘농업정책’이라 쓰고 ‘물가대책’으로 읽는다

윤석열 대통령 거부권 1호로 각인된 양곡관리법

  • 입력 2023.12.24 18:00
  • 수정 2023.12.24 19:06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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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올해 상반기는 양곡관리법 정국이었다. 정부·여당과 야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 국회 처리 단계마다 팽팽하게 맞섰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3월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신곡 수요량보다 쌀 생산량이 많을 경우 정부가 초과분을 의무매입 해 시중 쌀값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한 뒤 정부 이송 닷새 만에 소멸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거부권은 국회에서 이송된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경우 국회로 되돌려 보내 재의를 요구할 수 있는 헌법상(53조) 권한이다. 이미 정치권의 핵심 쟁점으로 자리한 양곡관리법은 ‘보통명사’처럼 일반 국민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던 상황이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1호 거부권’이 농민값이라는 쌀값안정 법안에 사용돼 파장을 더 키웠다.

지난 10월 10일 수확철을 맞아 추수 현장을 찾은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충남 부여군 임천면의 논에서 콤바인으로 논을 수확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0월 10일 수확철을 맞아 추수 현장을 찾은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충남 부여군 임천면의 논에서 콤바인으로 논을 수확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반대한 정부·여당은 ‘수확기 쌀값(80kg) 20만원’이 유지되도록 수급안정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쌀값은 신곡 시세가 반영된 10월 5일자에 반짝 상승했다가 거짓말처럼 20만원대를 유지했으며, 지난달 15일부터 20만원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쌀값이 이처럼 맥을 못 추는 원인 중 하나로 정부는 소비량이 감소한 데 반해 시중에 쌀이 많다는 논리를 펴지만, 현장 농민들은 농산물 할인쿠폰을 문제 삼았다. 농산물 할인쿠폰은 소비자가 대형마트나 전통시장 등에서 농축산물을 구입할 때 가격을 20∼30% 깎아 주는 정부 사업으로, 지난 2022년 590억원의 예산이 반영됐고 올해는 3배 가량 증액한 1,690억원이 편성됐다. 문제는 폭등한 생산비를 반영할 수 없는 농산물 가격이 할인쿠폰을 적용한 농산물값 때문에 더 하향 조정된다는 점이다.

물가안정을 이유로 저율관세할당(TRQ) 수입을 크게 늘린 것도 올해 농업정책의 특징이다. 농협경제연구소가 펴낸 ‘농축산물 수입관리제도 운영현황과 개선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9월까지 결정된 추가 TRQ 물량은 생강·양파·대두·참깨 등이다. 15개 품목 61만6,755톤이 올해 더 증량된 것이다. 농산물 ‘수급안정’ 정책은 사라지고 농산물 ‘수입확대’ 정책이 농산물값을 좌지우지한 한 해였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산물 수출’에 역점을 뒀다. 정확히 말하자면 농식품산업 수출 확대 정책에 힘을 썼다.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의 해외출장도 잦았는데, 럼피스킨 병이 국내에 처음 발병해 전국으로 확산하는 위기 상황에서도 정 장관(가축질병중앙사고수습본부장)은 네팔로 출장을 갔다. 사전에 예정돼 있던 일정이었다고 해도 비판을 피할 수는 없었다. 정 장관의 네팔행은 ‘농축산협력 확대’와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교섭 국외 출장’ 명목이었다.

농식품부가 올해 100억달러를 넘겼다며 역대 최고치 경신을 예고하고 있는 ‘K-Food(케이-푸드) 수출 성과’를 짚어보면 지난 11월까지 신선농산물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되레 6% 줄었다. 김치를 포함한 신선농산물 수출액은 지난해 13억4,200만달러였으나 올해 12억6,120만달러를 기록했다. 다만 가공식품이 전년 동기대비 2.4%(1억5,890만달러 ↑) 늘었고, 스마트팜·농기계·동물용의약품·펫산업 등 전후방산업까지 끌어모아야 100억달러를 넘는다. 2.4% 늘어난 가공식품 수출용 원료농산물은 주로 수입이라는 것도 맹점이다. 우리 농업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보기 어려운 성과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산하기관 갑질 문제가 국회 농해수위 국정감사에서 집중 다뤄진 것도 특이사항이다. 본지가 보도한 농림수산교육문화정보원 상임이사(총괄본부장) 인사 논란이 대표적인 갑질로 국감장에서 다뤄졌다. 국회 농해수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농정원 ‘불법 인사개입’ 문제와 관련해 장관 해임을 요구하며, 정 장관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해 놓은 상태다.

식량자급률을 높이고 국민의 먹거리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농업정책은 대다수의 소농을 살리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정부는 최첨단 기술과 자본으로 무장한 기업농 또는 상위 1% 농민들에게 스마트팜·푸드테크·그린바이오 등의 이름으로 정책적 혜택을 몰아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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