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농업결산] 농협중앙회장 ‘셀프연임’, 2년 연속 농협 개혁의 손발을 묶다

  • 입력 2023.12.24 18:00
  • 수정 2023.12.24 19:06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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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농협 국정감사가 있었던 지난 10월 13일, 이성희 농협중앙회장(가운데)이 국감장을 빠져나와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있다. 이 회장은 국감 당일 아침에 농해수위에 조기이석을 신청했고 농해수위 간사들이 이를 허락했다. 한승호 기자
농협 국정감사가 있었던 지난 10월 13일, 이성희 농협중앙회장(가운데)이 국감장을 빠져나와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있다. 이 회장은 국감 당일 아침에 농해수위에 조기이석을 신청했고 농해수위 간사들이 이를 허락했다. 한승호 기자

농협과 관련된 개혁 의제와 기타 생산적 논의는 2022년 이후 완전한 정지 상태다. 농협중앙회장 ‘셀프연임’ 논란에 모든 공력이 소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성희 현 농협중앙회장의 이권이 중심이 된 이 국지적이고 소모적인 의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농협 관련 의제를 통째로 집어삼켜버렸다.

문제의 셀프연임법안(「농업협동조합법」개정안)은 단임제인 농협중앙회장의 임기를 연임제로 전환하고 ‘현직 회장부터’ 소급적용하려는 법안이다. 연임제 자체도 농협개혁의 역사를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지만 더 큰 문제는 현직 소급 조항이다. △농협중앙회장 자리에 막대한 이권이 걸려있다는 점 △현직 중앙회장이 연임에 도전하면 낙선하기 힘든 구조라는 점 △연임제 도입을 위한 농협중앙회의 대국회 로비활동이 감지됐다는 점에서 이 법안은 이성희 회장 개인의 이익 도모를 위한 법안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해 이 법안의 무대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법안심사소위였다. 신정훈·윤준병·윤미향 등 일부 의원들의 맹렬한 반대와 충격적인 로비 증언이 터져나왔지만 김승남 소위원장과 여당 의원들이 합심해 지난해 말 의결을 강행했다.

올해는 그 후속 절차인 농해수위 전체회의,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전체회의가 무대였다. 법안을 밀어붙인 농해수위 의원들에게 여야 다수 의원들이 동조 내지 관조적 자세를 취하자 농해수위 내엔 걸림돌이 없었다. 지난 5월 농해수위 전체회의 당시 신정훈·윤준병·윤미향·안병길 의원이 논리와 도의를 앞세워 끝까지 법안을 반대했지만, 나머지 의원들은 토론에 응하지 않고 표결을 진행, 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에 제동이 걸린 건 법사위에서다. 박주민·이탄희·박용진·김의겸·최강욱(현재 의원직 상실)·조정훈 등 야당 의원들이 셀프연임의 심각한 논리적·도덕적 결함에 주목했고, 의원들이 직접 겪은 농협중앙회 로비 행태가 추가로 줄줄이 거론되기도 했다. 야당 간사인 소병철 의원이 “말도 안 된다”며 로비 의혹을 언성 높여 부정했지만 이는 결코 흘려보낼 수 없는 문제였다. 지난 8월과 9월 각각 한 차례 법사위 전체회의에 이 법안이 상정됐으나 연거푸 계류된 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후 농협중앙회 연관 단체들과 임원조합장들이 성명·집회를 통해 법안 통과를 촉구했지만 통과를 시키기엔 껄끄러움이 많은 상태다. 농협중앙회장 선거 전까지 아직 기회가 남아있긴 해도 법사위에서 법안이 통과되긴 어려우리라는 게 현재 지배적인 견해다.

뼈아픈 건 역시 셀프연임 논란으로 인해 농업계가 농협 발전을 고민할 기회를 잃었다는 점이다. 적어도 최근 2년 동안 농협에서 셀프연임을 빼면 남는 의제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모든 것이 셀프연임에 집중돼 있었고, 올해는 지난해보다 그 양상이 더욱 심했다.

그나마 ‘반짝 이슈’로 등장한 게 있다면 이성희 회장의 ‘국정감사 엑시트(퇴장)’ 사건이다. 국정감사를 보름여 앞두고 목디스크 시술을 받은 이 회장은 지난 10월 농협 국감 현장에 목 깁스를 하고 등장했고, ‘당일 아침’에 농해수위에 조기이석을 요청했다. 농해수위 간사들이 이를 허락함으로써 이 회장은 간단한 업무보고만 마친 뒤 국감장을 떠났다.

셀프연임 논란이 한창 뜨거웠던 시기라 법안에 반대했던 농해수위 의원들의 맹공이 이뤄질 수도 있는 자리였으나, 회장이 빠진 농협 국감은 밋밋한 양상으로 진행됐다. 신정훈 의원은 “1년에 딱 하루, 국민과 농민에게 보고하는 자리인데 이 일정을 못 맞추나”라며 이 회장을 질타했다.

그 외 예정된 일정에 따라 화제가 된 ‘자동 이슈’로 지난 3월 거행한 제3회 동시조합장선거가 있다. 수협·산림조합을 제외한 농·축협 조합장 선거는 투표율 81.7%(134만4,719명)를 기록했다. 초선 조합장 비율은 37.8%(421명)이며 박준식 서울 관악농협 조합장(11선), 홍성주 제천 봉양농협 조합장(10선)은 초장기집권 조합장으로서 이번에도 자리를 지켰다.

조합장선거는 유권자의 알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깜깜이 선거제’가 묵은 논란거리지만 이번 선거 역시 기존의 방식으로 진행됐다. 다행히 선거 이후 국회에서 선거운동을 대폭 확대시키는 방향의 선거법 개정이 추진 중이다. 논의 과정에서 끝내 ‘후보자 토론회’는 삭제됐지만 △예비후보자제 도입 △공개행사 정견발표 허용 △선거운동을 위한 유권자 가상전화번호 제공 등이 개정안에 살아남아 있다. 다만 총선을 앞두고 향후 국회 의정활동이 흐지부지될 수 있어 동력을 유지하는 일이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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