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 없는 농촌을 향해

  • 입력 2023.11.12 00:00
  • 수정 2023.11.12 20:59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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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지난 6일 전북 익산시 삼기면 서두리마을회관에서 열린 ‘성평등한 마을만들기 교육’에서 마을주민들이 김덕지 농촌 특화형 성평등 전문강사로부터 교육을 받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6일 전북 익산시 삼기면 서두리마을회관에서 열린 ‘성평등한 마을만들기 교육’에서 마을주민들이 김덕지 농촌 특화형 성평등 전문강사로부터 교육을 받고 있다. 한승호 기자

‘손가락이 굽도록’ 농사지었어도 여성농민은 농업 경력을 제도적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평생을 남편의 그늘에 살다, 남편이 죽어야 비로소 ‘경영주’가 됐다는 이야기는 농촌 현장에서 매우 흔하다. 경영주는 농업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가진다. 작물 결정, 농자재 구입, 수확물 처분 등을 책임지고 총괄한다. 그러니 경영주가 아니면 수십 년을 농사지어도 공식적인 경력은 없는 셈이다. 각종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2022년 11월 기준, 여성 경영주 비율은 29.7%에 그친다. ‘시도별 공동경영주 등록현황’에 따르면 경영주와 공동경영주로 등록된 여성 비율도 27.9%에 머문다. 같은 해 기준, 농가 인구 216만여명 중 여성농민이 109만여명으로 절반을 넘어서는 걸(50.6%) 감안하면 턱없이 낮다.

경영주가 중요한 이유는 각종 농업정책, 지원 대상 기준이라서다. 이는 곧 여성농민 대다수가 엄연히 농민임에도 제도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농촌 성평등 문제가 성역할에 따른 관습적 차별을 넘어 제도적 차별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

이 같은 제도적 성차별이 지역소멸의 원인과 맞닿았다는 점도 큰 문제다. “귀농 청년 중 여성이 정말 없다. 성별이 굉장히 불균형한 상태다. 여성 청년들이 귀농·귀촌했다가도 성 불평등한 농촌사회를 접하고 많이 떠나기도 해서다. 농촌사회가 소멸 위기를 벗어나려면 여성 청년이 들어와야 하는데도 현실이 이러니 농촌 성평등 교육이 정말 필요하다. 지자체는 성평등 교육의 시급함과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 임덕규 전국여성농업인센터협의회 대표의 지적이다. 실제로 2021년 기준 여성 귀농인 비율은 32.8%에 그쳤다. 2019년부터 5년간 30%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농촌 현장에서 만난 여성농민들은 농촌 성평등 문제가 일반적인 성평등 이슈와 달리 오랜 관습적, 제도적 불합리함에 고령화, 지역소멸, 생업으로서 불투명한 농업의 전망까지 겹친 복잡다단한 문제임을 절감하고 있었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도 지난 2020년부터 ‘농촌특화형 성평등 전문강사’를 매년 양성해 농촌의 성차별 문제를 개선하고 성평등 인식을 제고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농촌 현장에 교육이 확산되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다.

배출된 강사들은 정작 교육을 펼칠 기회를 잡기 어렵고, 지자체 대부분은 관련 사업을 별도로 추진하지 않고 있다. 그나마 적극적인 지역도 각종 농업인교육(여성농업인센터, 농업기술원 등), 단체장 모임, 농민 관련 행사 등에서 성평등 교육을 진행해 달라고 안내하는 역할에 그친다. 성평등 교육이 의무도 아니니 교육 진행은 각 기관의 재량에 달린 셈이다. 지역에서 관련 업무를 전문으로 수행하는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제주양성평등교육센터, 충북여성재단 같은 기관들도 농촌 성평등 교육을 인식하고는 있었지만, 지자체 농정 당국의 적극적 사업 추진이나 성평등 교육 의무화 같은 제도적 장치 없이는 교육을 힘 있게 추진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농촌 성평등 정책의 방향성은 그 어느 때보다 탁월하지만, 실행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이 상황. 지자체의 적극성과 현장의 열의에 더해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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