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해·수해 지나니 우박 … 경북 사과농가 ‘억장’

사과 주력품종 부사 초토화

농민단체들, 재해보상 촉구

  • 입력 2023.11.05 18:00
  • 수정 2023.11.05 18:14
  • 기자명 권순창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달 26일 저녁, 강원·충북·경북 일대에 강한 뇌우를 동반한 우박이 쏟아졌다. 배추·무·고추 등 농작물 전반에 피해가 덮쳤지만, 계절과 지역의 특성상 가장 광범위한 피해를 입은 건 사과다. 이미 지난 봄 냉해와 여름 습해 등 수차례 재해를 맞았던 사과농가의 가슴에 또다시 깊은 생채기가 났다.

경북 영주는 이번 우박의 최대 피해지역이다. 탁구공 만한 우박이 땅을 울리며 지나간 뒤, 가뜩이나 착과량이 줄어든 사과엔 온통 흠이 파였다. 여름사과와 추석사과가 끝나고 이 시기 맺혀있는 품종은 ‘부사’. 저장성이 좋아 사과 과원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주력 품종이다. 보통 여름에 일어나는 우박 피해는 일부 군소 품종에 국한되게 마련인데, 때 아닌 가을우박이 사과농가의 주력을 망가뜨려버렸다.

영주 문수면의 장신덕씨는 복잡한 표정으로 사과를 수확하고 있다. 지금까지 수확한 사과를 분류해 보면 정품이 54%, 흠집이 난 게 27%, 심각하게 망가진 게 12%, 폐기 수준이 7%다. 작은 흠집만 있어도 정상 유통이 불가능하거니와, 54%의 정품 역시 외관만 멀쩡할뿐 정상이라 할 수 없는 상태다.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면 십중팔구 어둑어둑한 부분이 보이고 껍질을 깎아보면 잔뜩 속멍이 들어 있다. 제값을 받기는 틀린 물건들이다.

장씨는 “올해 워낙 재해로 많이 얻어터지다 보니 우박을 맞고도 아무 생각이 안 들더라. 그나마 우리 집은 다른 집에 비해 냉해를 덜 입어서 지금 시세면 평년 소득은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수확할 때가 되니 이렇게 됐다”고 한탄했다.

경북 영주 문수면 사과농가 장신덕씨가 우박을 맞아 손상된 사과를 수확해 놓고 들여다 보고 있다. 현장에선 심한 경우 실질 피해율이 80%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경북 영주 문수면 사과농가 장신덕씨가 우박을 맞아 손상된 사과를 수확해 놓고 들여다 보고 있다. 현장에선 심한 경우 실질 피해율이 80%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재해보험은 이번에도 유명무실하다. 우선 수확기에 이르면 보험금은 정상의 50%밖에 지급받을 수 없는데, 실질적으로는 50%가 아니라 35%다. 과원의 70%가 부사(현재 달려 있는 품종), 그 70%의 절반은 35%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20%의 자부담을 제하면 대략 15%가 되는데, 경북 상당수 지역이 ‘상습피해지역’으로 분류돼 여기서 5~10%를 추가로 삭감한다. 기껏해야 피해의 10%를 보상받을까 말까 한다는 얘기다.

앞서 냉해·태풍 등으로 30% 이상의 피해(보험금 지급을 위한 최소 피해율)를 입었다면 피해율 가산이라도 할 수 있지만, 냉해 25%, 태풍 25% 등 애매한 피해를 입어왔다면 그조차 불가능하다. 장씨가 그런 경우다. 장씨는 “손해평가사가 와서 보고는 보상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며 울고 돌아갔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상황이 비정상적인 만큼 농민단체의 보상 요구도 빗발치고 있다. 전국사과생산자협회(회장 김충근)는 지난달 30일 성명을 내 정부의 대책을 요구했다. 사과협회는 “현재 사과 가격은 kg당 5,000원이 넘지만 재해보험의 보상기준 단가는 kg당 1,900원 정도다. 재해보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피해를 본 농가에 정부의 직접적인 보상·대책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농협을 향해서도 “농협중앙회는 ‘셀프연임’에 몰두할 게 아니라 고금리 시대 수조원의 이익금으로 피해농가 지원 대책과 지원금을 마련하라”고 일침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북도연맹(의장 김태현)도 지난 1일 경북도청 앞 기자회견에서 △정부·기초자치단체가 재난예비비 등으로 피해농가에 최대한의 지원을 할 것 △재해보험의 사과 보상기준을 현실화할 것 △‘농업재해보상법’을 제정해 보험이 아닌 정부가 자연재해를 책임질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특히 농산물 수입, 양곡관리법 거부권 행사 등 정부의 거듭된 ‘반농’ 행보를 거론하며 윤석열정권 퇴진 투쟁의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