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필요한 것은 민주주의

  • 입력 2023.10.08 18:00
  • 수정 2023.12.03 17:27
  • 기자명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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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대표. 변호사 및 공인회계사. 199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해 왔다. 현재는 농촌·농업·농민을 옹호하는 공익법률단체인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예산감시운동 단체인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승수 대표. 변호사 및 공인회계사. 199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해 왔다. 현재는 농촌·농업·농민을 옹호하는 공익법률단체인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예산감시운동 단체인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농촌에 사는 사람이든, 도시에 사는 사람이든 서민·중산층이라면 뛰어오른 물가 때문에 살기가 팍팍하다. 환율과 국제유가도 날로 오르니, 앞으로 수입물가는 더 오를 수밖에 없다. 당장 다가올 겨울의 난방비부터가 걱정이다. 농민들의 입장에서도 생산비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현 대통령은 ‘이념이 중요하다’고 하니, 한숨이 더 커질 뿐이다.

힘들어지는 삶의 원인, 퇴행하는 민주주의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라는 얘기를 할 수 있지만, 최소한 농민과 노동자들, 서민·중산층들에게 민주주의는 밥이다.

흔히 정치의 핵심은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라고 한다. 민주주의가 안 되면 소수의 기득권·특권세력들은 챙기는 것이 더 많아진다. 그들에게 더 많은 이권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다수의 사람들은 불평등이 심해지고 최소한의 삶의 기반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살기가 힘들어진다.

반대로 민주주의가 잘 되면, 필요한 곳에 자원이 배분되고 사회안전망도 강화된다.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은 모두 민주주의가 잘 되는 나라로 손꼽히는 나라들이다. 이는 민주주의와 ‘먹고 사는 문제’의 연관성을 잘 보여준다. 복지국가라서 민주주의가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잘 되기 때문에 복지국가가 된 것이다. 이처럼 다수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와 민주주의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래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우선 필요한 것이 ‘민주주의’인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퇴행하고 있다. 퇴행한 민주주의는 사람들의 삶을 더욱 위태롭게 하고 있다. 오르는 물가와 극심해진 불평등, 날로 팍팍해지는 삶에도 현재의 기득권 정치는 문제해결을 하려는 의지조차 없어 보인다.

아니 지금 대통령이나 그 측근들의 행태를 보면,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가진 배경으로 설명될 수 있다.

지난 5월 9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윤석열정부 1년에 즈음한 농민, 노동,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에서 각 부문별 대표자들이 “윤석열정부의 1년은 반민생, 반민주, 반평화, 반환경, 친재벌 등 퇴행과 역주행의 1년이자 반시민의 1년이었다”며 현 정부의 1년 성적표를 매기는 상징의식에서 낙제점을 주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5월 9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윤석열정부 1년에 즈음한 농민, 노동,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에서 각 부문별 대표자들이 “윤석열정부의 1년은 반민생, 반민주, 반평화, 반환경, 친재벌 등 퇴행과 역주행의 1년이자 반시민의 1년이었다”며 현 정부의 1년 성적표를 매기는 상징의식에서 낙제점을 주고 있다. 한승호 기자

‘검사 + 강남’ 정권과 민생

윤석열정부에서 요직을 맡고 있는 사람 중에 검사 출신이 많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검사 중에서도 특권층에 속하는 특수부 검사 출신들이 많다. 특수부 검사들은 특수활동비도 현금으로 많이 받아 쓰고, 승진에서도 이득을 봐 왔다.

그러나 대통령과 그 측근들을 단지 ‘특수부 검사’ 출신으로만 보는 것은 현실의 한 측면만 보는 것이다. 현 정권의 핵심을 표현할 수 있는 또 다른 키워드는 ‘강남’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고,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서울 서초동의 ‘아크로비스타’라는 고급아파트에서 살았다. 윤석열정권의 핵심 실세라고 할 수 있는 한동훈 장관은 서울 강남구에 있는 현대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한동훈 장관의 재산공개 내역을 보면, 서울 서초구의 삼풍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으면서 서울 강남구의 타워팰리스에서 전세로 거주하고 있다.

특수부 검사 출신으로 윤석열정권에서 금융감독원장을 맡고 있는 이복현 원장의 경우에도,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

물론 이전 정권에서도 장관 등 고위공직자들 중에 서울 강남의 아파트를 소유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최소한 대통령 본인이 비수도권 지역 출신이거나 대통령의 최측근 중에도 비수도권 지역 출신들이 어느 정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정권을 보면 그렇지 않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대통령이나 그 측근들에게 비수도권 지역에 대한 이해나 서민·중산층의 삶에 대한 이해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가와 지방의 심각한 재정위축

다수 사람들의 삶이 어려울 때일수록,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불평등과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세금을 잘 걷어서 잘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가의 재정상태를 보면, 현 정권의 감세정책 등으로 인해 세수가 매우 감소된 상황이다. 그런데도 검사들이 사용하는 특수활동비는 내년 예산안에서도 줄지 않은 것이 상징하는 바가 크다.

액수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태도가 중요한 것이다. 국가재정이 어려워서 여러 군데 예산을 삭감하는 마당에 검찰 특수활동비처럼 현금으로 펑펑 ‘쌈짓돈’처럼 사용하는 것으로 드러난 예산을 줄이지 않는다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국가의 세수감소는 지방재정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는 내국세 수입의 일정부분을 지방자치단체와 지방교육청으로 배분하는 방식으로 재정을 운영해 왔다. 그런데 내국세 수입이 대폭 줄면서, 지방으로 배분되는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도 대폭 줄어들게 된 상황이다. 지난 9월 기획재정부가 2023년 세수 재추계 결과를 발표한 것에 따르면, 올해 국세 수입이 예산 대비 59조1,000억원 감소함에 따라, 이와 연동해서 줄어드는 지방교부세 및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23조원으로 추산됐다.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그런데 대통령이나 그 측근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걱정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중앙정부는 무책임하게 지방자치단체들에게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그리고 유예기간 같은 것도 없이 곧바로 올해부터 지방으로 배분되는 돈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들은 비상이 걸렸다. 중앙정부가 당초에 약속했던 지방교부세에 맞춰서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집행하고 있었는데,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특히 농촌지역의 군(郡)은 더 큰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지방교부세가 세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나라살림연구소>에 따르면 지방교부세가 군당 평균 408억원 정도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600억원 이상 감소될 군도 5개에 달한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올해에만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년에도 국세수입은 늘어나지 않을 전망이니, 앞으로도 지방재정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내년도 중앙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지방교부세 규모도 올해 예산보다 8조5,000억원 줄어든 상황이다. 그에 따라 농촌지역 지방자치단체들의 살림규모도 줄여야 하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민주주의가 중요하다

이처럼 국가적으로나 지역차원에서나 답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게다가 지역에서도 일부 지방자치단체장들의 독선과 전횡으로 인해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살림은 어려워지는데, 여전히 난개발 사업이나 전시성·일회성 사업에 재정을 쏟아붓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있다.

지역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지역에 피해를 입히는 일을 벌이는 지방자치단체장도 있다. 최근에 필자와 만난 어떤 지역주민은 지방자치단체장이 산업폐기물 시설을 추진하는 업자와 유착돼 있다고 털어놓는다. 지역에 사람들이 들어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사람들마저 떠나게 만드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국가와 지역 차원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고, 주권자인 국민·주민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 어떻게 보면, 우리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민주주의’인 것이다.

민주주의가 어려운 얘기인 것만은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 말을 좀 더 구체화하면, ‘모든 권력은 (권력의 원천인) 국민을 두려워해야 하고, 따라서 국민의 삶을 살피는 것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심판받게 된다’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만 된다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 우선 필요한 것은 대통령부터 지방자치단체장까지 주권자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선거 때에 투표를 제대로 하는 것도 중요하고, 평소에 주권자로서 목소리를 내는 것도 필요하다.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서 서명이라도 하고, SNS 등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을 이용해서 권력의 잘못을 최대한 알리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 삶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우리가 내는 세금의 사용을 감시하는 활동도 필요하다. 그래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자원이 소수 기득권층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수의 국민·주민들을 위해 사용되도록 해야 한다. 어려운 시절일수록, 필요한 것은 용기와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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