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성평등 강사, 안 할래요

  • 입력 2023.09.24 18:00
  • 수정 2023.09.24 20:45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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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2020년부터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농촌특화형 성평등 전문강사 육성을 야심차게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꼭 필요한 사업이고, 머잖아 농촌사회에 유의미한 진전이 올 것이라 여기며 1기 전문강사 과정에 등록했습니다. 물론 그동안의 활동에서 간간이 여성농민을 대상으로 여성농업정책이나 농촌현실을 이야기하며 농촌사회의 불평등을 말해왔습니다만, 부족함이 많던 차에 좋은 기회가 생긴 것이지요.

공부하는 과정은 재미있었습니다. 그쪽 분야에서 쟁쟁한 경험을 가진 이론가나 정책가, 또는 실천가들이 강사로 편성돼 그동안 강사로서 부족했던 점을 보충할 수도, 또 잘 몰라서 어물쩍 넘어가는 분야도 제대로 알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토록 큰 차이라 여겨지던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도, 배 발생 초기에는 같은 기관에서 출발했다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 놀랐고 새로운 호기심을 갖게 했습니다.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실제 시연도 하면서 평가를 받아 농식품부 인증 강사 자격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 실제로 마을에 찾아가서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주로 노인 분들이었고, 할머니들께서는 간간이 지지를 해주시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시간을 때우는 분위기가 강했고, 무엇보다 할아버지의 태도는 짐짓 놀랍기 그지없었습니다. 강사의 능력이 부족하기도 했겠지만, 정말이지 강사와 맞대응을 하려는 태도하며,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박박 우기기까지 하는데, 1시간이 어찌 그리 길던지 진땀을 뺐습니다. 그럭저럭 1시간 넘게 말하고서 목이 잠긴 채 돌아오는 길에 참 많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동안 강의랍시고 사람들 앞에서 설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옳거나 똑똑해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강사를 존중해주는 분위기 덕에 가능했던 것이었습니다. 특히 성평등에 대한 절박한 요구가 있었기에 시시한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구나 싶어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달은 것이지요. 그러니 공적인 공간에서 내 실력으로, 특히 성평등을 말하는 것은 씨알이 먹히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는 한 며칠 고민하다가 강사를 포기했습니다. 이 일 말고도 농촌 성평등에 기여할 일이 너무 많은데, 강사는 여기까지라며 깨끗이 승복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그 방면의 전문가가 하는 얘기에 대해서는 집중해서 듣습니다. 그렇게 해서 변화가 오는 것이지요. 그런데 성평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힘의 관계에 따라 권한이 행사되는 바, 굳이 먼저 그 권한을 내려놓으려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자신의 행동에 대한 나름의 확고한 견해를 갖고 있는데, 낯설고 어줍잖은 강사의 말을 수용하기란 쉽지 않지요. 그리고는 어떤 내용의 강사보다 권위를 확인하려 듭니다. 물론 80시간을 이수한 강의 실력도 빤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강사의 능력만큼 조직의 관점이 중하다는 것이지요. 물론 수강자의 자격도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일정 부분의 학습수준을 갖추고, 대중 앞에 선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수강기회를 주기는 합니다. 어쨌건 교육을 주최하는 단위가 교육의 중요성을 주지시켜야 효과를 볼 터인데, 강사에게 부담을 지우는 모양새이니 참 힘든 과정입지요. 그래서 농촌 성평등 강사들이 자조모임을 가지며 그 부담을 완화시켜 내기도 하더군요.

지금도 강사양성 사업은 그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암요, 잘 해야지요. 하지만 이것이 더 효과를 보려면 교육내용만큼 과정에 대한 의미를 제대로 알고, 같이 풀어야 할 숙제임을 최대로 알려야 하겠다는 생각을 거듭합니다. 며칠 전에 지역 작목반 교육에서 성평등 교육을 해보겠냐는 제안을 하길래, 강사 자격을 내려놓았던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농촌 성평등은 참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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