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농가 내팽개친 정부, 수해로 ‘논콩 초토화’ 어찌할까

전북 김제시 논콩 재배면적 5,415ha 중 최소 5천ha 이상서 피해 발생
멀쩡히 자라는 논콩 찾기 힘들어 … “벼 대신 심으라 해서 심은 논콩이건만”

  • 입력 2023.08.06 18:00
  • 수정 2023.08.06 19:1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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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집중호우에 의한 논콩 침수 피해를 입은 박흥식(전북 김제)씨가 지난달 31일 웃자라기만 한 논콩을 살펴보며 막막한 표정을 짓고 있다. 박씨는 “6월 18일에 파종해 한창 이파리가 커야 할 논콩이 침수 이후 콩대만 웃자라고 있다”며 “이대로면 사실상 수확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승호 기자
집중호우에 의한 논콩 침수 피해를 입은 박흥식(전북 김제)씨가 지난달 31일 웃자라기만 한 논콩을 살펴보며 막막한 표정을 짓고 있다. 박씨는 “6월 18일에 파종해 한창 이파리가 커야 할 논콩이 침수 이후 콩대만 웃자라고 있다”며 “이대로면 사실상 수확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승호 기자

논콩이 멀쩡하게 자라는 논은 전북 김제시의 그 너른 들판 어디에도 없었다. 지난달 중순 쏟아진 폭우는 김제의 거의 모든 논콩에 피해를 입혔다. 정부가 논콩 심으면 소득 보장을 해주겠다 해서 심은 죄밖에 없는 농민들은 허탈한 심정으로 논콩이 심긴 논을 바라봤다.

지난달 31일, 김제농민회 회원들과 함께 김제시 검산동·부량면·죽산면 일대의 콩 재배 논을 둘러봤다. 그냥 눈으로 보면 논콩이 멀쩡히 자라는 듯 보였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김제 논콩 재배 농민들의 설명에 따르면, 논콩이 현 시점(8월 초)까지 제대로 자랐다면 논에 심긴 콩대의 높이가 사람 허리 높이만큼은 올라와야 했다. 또한 논콩이 제대로 자랐다면 콩대에서 이파리가 수북하게 자라나, 콩대가 심긴 고랑과 고랑 사이 골이 보이지 않게 덮여야 했다. 그 정도는 돼야 ‘평년작’이 가능하다.

위와 같은 기준을 충족하는 논콩은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콩대 중 그나마 잘 자랐다는 게 허리는커녕 사람 무릎~허벅지 정도까지밖에 못 자랐고, 이파리가 수북하게 자라 골이 덮인 곳도 드물었다.

논콩을 재배하는 박흥식 전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의장의 논을 가봤다. 사진으로 보다시피 콩대는 앙상했다. 박 전 의장은 “지금 시점엔 콩대의 이파리가 무성하게 자라나야 한다. 6월 중순에 심은 논콩은 7월말엔 순이 자라나기에 옆순 자르기 작업을 바삐 해야 한다. 그러나 이 콩대들은 수해를 겪은 뒤 성장을 멈췄다”라며 “지난해 기준으로 콩대 한 대에서 콩이 100~150개 달렸는데, 올해는 이대로라면 많이 달리는 게 30개 정도일 듯하다. 평년 대비 전체 수확량이 20~30%나 나올까”라고 토로했다.

이날 둘러본 논의 절반 가까이는 박 전 의장의 논과 비슷한 상태였다. 누렇게 마른 이파리가 드문드문 달린 데다 키도 낮은 콩대들이 논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최재호 김제농민회장은 논 중 한 곳을 보며 “한 필지당 논콩 수확량이 평년작 기준으론 약 1,200kg이었는데, 이 상태의 논에선 300kg도 수확이 가능할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논 중엔 아예 콩대가 ‘녹아버린’ 곳도 종종 눈에 띄었다. 이파리 하나 없이 검게 변색되고 앙상한 콩대만 잔뜩 심긴 논도 부지기수였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김제시의 논콩 재배면적 5,415ha 중 논콩이 멀쩡히 자라는 곳은 사실상 없다시피 했다. 김제시의 피해통계 추산이 아직 진행 중이지만, 현재까지 파악된 바론 약 5,000ha의 콩 재배 논이 피해를 입었다는 게 김제시 측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김제 농민들은 왜 논콩을 심었을까. 박흥식 전 의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선 쌀값 폭락으로 벼농사의 안정적 지속이 어려워졌다. 윤석열정부 정책 기조상 올해도 쌀값이 낮을 것으로 봤다. 그렇다고 밭작물을 심으려 해도 정부가 계속 수입정책을 실시하니 역시 불안했다. 마침 정부가 전략작물직불제를 내밀며 콩·보리·가루쌀 등을 심으라고 했다. 이로 인해 벼도 어렵고, 밭작물도 어렵겠다 싶어 논콩을 심은 농가가 늘어난 것이다.”

김제 벼 재배농민들은 올해 상반기 정부가 신동진 벼 매입제한 및 보급 중단 계획(내년부터 실시)을 발표하는 걸 보며 정부의 ‘쌀 정책 포기’ 기조를 확인한 바 있다. 신동진 벼 역시 정부가 ‘수확량’을 강조하며 농민들에게 심으라고 권장했기에 심었던 품종이다. 지난 2월 22일 전주시 전북도의회에서 전북 지역 농민단체들이 ‘2024년 공공비축미곡 신동진 벼 매입제한 및 보급종 중단 철회 촉구 기자회견’에서 밝힌 데 따르면 김제에서 재배되는 벼의 약 60%가 신동진 벼로, 매입제한 시 예상 피해액이 약 1,567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됐다.

일단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달 28일 열린 고위 당·정 협의회에서 그간 생산을 장려한 논콩에 대해 “호우 피해로 재배 유지가 어려운 경우에도 전략작물직불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불충분하다.

지난달 26일, 전농 전북도연맹(의장 이대종) 등 전북지역 농민단체들은 전주시 전북도청 앞에서 연 수해대책 촉구 기자회견에서 △농가 피해액 전액 보상 △군산·부안 등 전북 타 지역에 대한 특별재난지역 추가 선포 △농작물 피해에 대한 현실적 보상 등을 촉구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농작물재해보험에 따른 농작물 피해 보장률이 낮고, 영농기자재는 (지원대상에서) 제외돼 있으며, 피해지원도 대파대·농약대 지원에 불과”하다며 “정부와 전북도, 지자체는 특별재난지역 선포로 끝날 게 아니라 즉시 긴급 재난지원금 지급과 농작물 피해에 대한 현실적이고 충분한 보상을 통해 피해 농민들이 조속히 영농기반을 복원하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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