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화원농협 조합원들 “우리농협 장부 좀 봅시다”

조합 내 산더미 같은 의혹들 … 조합원들, 조합에 자료 청구

조합원 100분의 3 서명 받았지만 … 조합 측, 자료 공개 거부

  • 입력 2023.07.23 18:00
  • 수정 2023.07.23 21: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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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화원농협 조합원들이 조합 내부의 복잡한 논란·의혹을 확인하고자 조합에 자료 열람을 청구했지만 조합 측의 거부에 부딪혔다. 조합원들은 이에 국민신문고 등 정부 민원을 통한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화원농협 조합원들이 조합 내부의 복잡한 논란·의혹을 확인하고자 조합에 자료 열람을 청구했지만 조합 측의 거부에 부딪혔다. 조합원들은 이에 국민신문고 등 정부 민원을 통한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조합원은 언제든지 자기 조합의 정관, 이사회·총회 회의록, 조합원 명부를 열람할 수 있다. 전체 조합원의 100분의3 또는 100명의 동의를 받으면 회계장부와 운영 관련 서류까지 열람 가능하다.「농업협동조합법(농협법)」과 각 지역농협 정관에 명시된 내용이다. 하지만 최근 전남 해남 화원농협(조합장 김복철)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합원들의 자료 청구 ‘싸움’은, 일선 조합의 폐쇄성이 법과 정관을 넘어설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화원농협은 전임 조합장 재임 당시부터 유독 많은 잡음을 양산했던 조합이다. 이사들의 외유성 출장, 변호사 수임료 사적 남용, 경제사업 비효율과 공사 추진절차 하자 등의 의혹이 그것이다. 감사가 문제를 확인하고자 각종 서류 열람을 요구했지만 조합은 비협조적으로 일관했고, 되레 이 감사의 해임안이 석연찮은 과정을 거쳐 대의원회에 상정되기도 했다. 최근엔 전임 조합장 임기 막바지 예산 남용 문제까지 부상하고 있다.

지난 3월 당선된 김복철 조합장은 ‘투명한 서류 공개’를 공약으로 내걸 정도로 조합 내 의혹 청산에 의지를 보인 인물이다. 조합장 교체 이후 조합원들은 법과 정관에 따라 조합원 100분의 3 이상(전체 1,457명 중 50명)의 서명을 모아 지난 3일 조합에 서류 열람을 청구했다. △법인카드 사용 내역 △변호사 수임료 관련 서류 △경제사업장 신축 관련 서류 △대의원회 감사 해임안 상정 관련 서류 △이사회 1박2일 출장 관련 서류 △고추 계약물량 수매·판매처·판매단가 관련 서류 등 위의 의혹들을 확인하는 데 필요한 자료들이었다.

하지만 조합의 반응은 기대와 달랐다. 조합원들은 7일에서 12일로, 다시 12일에서 14일로 기일을 연기한 끝에 자료를 받았는데, 결국 손에 쥔 것은 ‘이사회 회의록’뿐, 나머지 요청자료들은 모두 ‘제공 불가’ 답변을 받았다. 이사회 회의록은 굳이 50명의 서명을 받지 않아도 언제든 열람할 수 있는 자료다.

청구인 중 하나인 김현철씨는 “핵심은 회계장부 등 다른 요청자료들이지, 이사회 회의록만으론 수많은 의혹 중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조합장이 ‘자료 제공에 최대한 협력하라’고 지시까지 했는데도 이 모양이다”라고 한탄했다.

또한 “조합원 50명의 요구가 있으면 최소한 전무라도 직접 나와봐야 하는 것 아닌가. 청구인을 앞에 두고 팀장이 전무실을 계속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전령 역할만 하더라. 요청한 자료를 받으러 두 차례나 방문했는데 아무 권한도 없는 팀장밖에 만나지 못했다”라고 혀를 찼다.

화원농협 측이 조합원에게 고시한 자료열람 청구 거부 이유. 농협법은 청구 거부 시 조합원에게 거부 사유를 설명하도록 하고 있지만,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네 줄의 글이 설명의 전부다. 조합원 제공
화원농협 측이 조합원에게 고시한 자료열람 청구 거부 이유. 농협법은 청구 거부 시 조합원에게 거부 사유를 설명하도록 하고 있지만,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네 줄의 글이 설명의 전부다. 조합원 제공

법률과 정관상, 조합은 특별한 이유 없이 조합원의 회계장부·서류 열람 청구를 거부할 수 없으며 거부하려면 그 사유를 서면으로 알려야 한다. 화원농협은 거부 사유를 ‘농협법 65조 및「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정보공개법)」9조에 따라 검토한 결과’라고 매우 추상적으로 고지했다.

이 설명만으론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에 의해 거부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건 세부 기준이 아니라 법률 자체다. 농협법은 조합원에 대한 조합의 ‘정보 공개 의무’에 무게를 싣는 법이라 이 사안에 걸림돌이 될 요소가 없다. ‘비공개 정보’의 기준을 정해놓은 건 농협법이 아니라 정보공개법으로, 결국 정보공개법에 나열돼 있는 어떤 조항 중 일부가 장애물이 됐다는 얘기다.

문제는, 지역농협은 정보공개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보공개법 적용 대상에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특수법인’이 들어 있어 혼란의 여지가 있지만, 법제처가 “지역농협은 정보공개법이 규정하는 특수법인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령해석을 내린 바 있다. 이 법률 때문에 자료 공개를 못 한다는 화원농협의 항변은 성립되지 않는다.

애당초 조합이 조합원의 서류 열람 청구를 ‘어떻게 막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도울까’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설령 정말 장애요소가 있더라도 돌파할 방법을 찾을 가능성이 있다. 법은 생각보다 유연하며 특히 민주성 같은 중요한 가치를 최대한 보호하려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료제공 기일 연기, 전무의 간접 응대, 무성의한 거부 사유 고지 등 이번 청구 건에서 보여주고 있는 화원농협의 태도는 조합원들에 대한 극도의 폐쇄성으로 일관돼 있다. 조합 내부의 아주 기본적인 정보 공유 문제임에도, 조합원들은 결국 조합을 벗어나 국민신문고 등 정부 민원을 통한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지역농협들, 공시문서에도 내용 ‘꼭꼭 숨기기’

“조합의 사고발생 보고에 따라 농협중앙회 감사에서 사고로 확정함.” “중앙회 조합감사위원회로부터 임직원 징계 및 문책을 요구받음.” 지난해 2월 한 지역농협에서 게재한 사건·사고 공시문이다. 조합장이 성희롱을 저질러 정직 처분을 받은 사건이지만, 조합원들이 공고문을 보고 이를 인지할 방법은 없다. 이 조합뿐 아니라 성범죄·횡령·갑질 등 전국 모든 농협의 사건·사고 공시문이 복사라도 한 듯 위 문구와 거의 똑같이 작성되고 있다.

조합원들의 열람 청구와 별개로 조합이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하는 공시문서가 있지만 공시는 늘상 시늉에 그칠 뿐, 정보 은폐는 여기서도 당연하다는 듯 행해진다. 한 시·군 전체 농협이 연루된 부실대출 사건이 터져도 조합원은커녕 조합 이·감사조차 내용에 접근하지 못하는 일까지 발생한다.

성희롱으로 정직 처분을 받은 위 사례의 조합장은 지난 3월 조합장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 지금도 조합장직을 수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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