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팍팍한 ‘지역살이’ … 그래도 우린 살아가리라

  • 입력 2023.07.21 06:20
  • 수정 2023.07.21 06:28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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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역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주체들은 오늘도, 앞으로도 지역에서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여럿이 함께 살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과 실천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2019년 충남 부여군 홍산면의 농생태학 실천농지에서 부여 여성농민들이 작물을 살펴보고 있다.
지역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주체들은 오늘도, 앞으로도 지역에서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여럿이 함께 살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과 실천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2019년 충남 부여군 홍산면의 농생태학 실천농지에서 부여 여성농민들이 작물을 살펴보고 있다.

기후위기로 인한 각종 재난, 정부의 농업정책 외면, 점차 사람이 줄어가는 농촌…. ‘지역’에 들이닥치는 악재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지역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주체들은 오늘도, 앞으로도 지역에서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나만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과 실천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지난 14~15일 충남 부여군에서 진행된 (재)지역재단 제20회 전국지역리더대회엔 올해도 충남 및 전국 각지의 ‘지역 주체’들이 모여 자신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지역살이가 더 좋아질지를 이야기했다. 전국지역리더대회 행사의 일환으로 부여문화원에서 진행된 7개 분과의 토의 내용 중 일부나마 소개하며 이들의 고민을 나누고자 한다.

기후위기 시대, 국가는 어디에?

기후위기대응분과에 토론자로 참석한 조도운 한살림생산자연합회 정책위원장은 전북 정읍에서 생강농사를 지으며 직접 실감한 기후위기를 증언했다.

“2018년 700평 농지에 생강을 심었다. 7월 초까진 발아와 생육에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그해 여름 31일간의 폭염을 거치며 생강이 다 죽어버렸다. 생강종자 550kg을 심었는데 수확량은 216kg이 나왔다. 종자값 315만원, 파종·김매기·수확에 소요된 인건비(30인) 300만원, 비료와 약제비 180만원, 기타 100만원으로 생산비는 총 895만원이 들어갔는데, 판매수입은 179만2,800원이었다. 농사가 안돼 추가로 들어간 김매기, 수확 후 선별작업 비용은 뺀 금액이다.”

조 정책위원장이 국가로부터 받은 것은 △일반작물 대파대 88만6,666원(ha당 380만원) △농약대 17만2,666원(ha당 74만원). 합계 105만9,332원이 전부였다. 생강은 재해보험 대상이 아니기에 생강 생산량 감소에 대한 보상은 없었다.

이는 조 정책위원장만의 상황이 아니었다. 조 정책위원장이 한살림생산자연합회 측에 집계된 내역을 정리한 데 따르면, 2020년 전북·충북·강원 지역 한살림 생산자들의 기존 과채류 예상공급량은 약 342톤이었으나, 그해 여름 폭우로 인해 실제 출하량은 약 75톤(예상공급량 대비 17%)에 그쳤다. 지난해에도 중부지방 집중호우로 강원도 홍천·화천 지역 한살림 생산자들의 잡곡 실제 공급량은 3톤(기존 예상공급량 13톤. 예상공급량 대비 25%)에 그쳤다.

조 정책위원장은 “농업분야에서의 기후위기 대응을 농민 개인에게 맡기는 대신 국가와 국민이 책임지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후재난을 당한 농민에게 국가가 져야 할 책임의 예시로, 조 정책위원장은 △대파대·농약대 보상 사유로 ‘생산감소’ 추가 △재해보험 품목 대폭 확대 △재난기금 제도화 등을 들었다.

지역에서 살아가는 청년, 서로의 뒷배가 되자

청년분과 참가자들은 팍팍한 ‘지역살이’ 속에서 지역의 희망을 만들어갈 방안을 논의했다.

부여 농민 최동혁씨(영농조합법인 충남친환경청년농부 대표)는 부여에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며 살아가는 청년으로서의 고민거리를 이야기했다. 최씨는 특히 농촌지역엔 청년이 모일 공간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여군에서 ‘청년센터’를 만들었지만 청년이 거기 많이 갈까? 못 간다. 왜? 위치상 주차가 어려운 부여군 한가운데 만들었다. 주차를 밖에 해놓고 한참 걸어들어가거나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 부여군이 정말 청년을 위한 공간을 만든다면 청년과 소통하며 청년이 필요로 하는 위치에 만드는 게 좋지 않았을까.”

최씨는 이어 청년이 살아가기에 열악한 부여의 생활환경을 이야기했다.

“부여엔 산부인과도, 소아과도 없다. 청년 부부가 아이를 낳아야 하거나 아이가 아프면 어찌할까. 공주나 타 지역으로 나가야 한다. 갓난아기 문제는 생명과 직결되기에 중요하다. 이런 문제를 7~8년간 이야기해도 바뀐 게 없다. (지역의) 선배들도 ‘우리도 10년 넘게 이야기해왔지만 안 바뀌었다’라고 하더라.”

최씨를 비롯한 청년분과 참가자들은 지역 곳곳의 청년이 함께 목소리를 내야 지역에 변화의 불씨를 지필 수 있으며, 어떻게든 청년이 모일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청년분과 참가자들은 또한 청년을 ‘정책 대상’으로 호명만 하고 그들의 삶을 제대로 고민하지 않는 국가·지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이준규 괴산군농민회 사무국장은 “이젠 공공의 영역(정부·행정단위)에서 청년에게 투자해야 한다. 중앙이든 지방이든 지역의 청년이 살 수 있는 주거 공간과 안정적 소득, 일자리 등을 마련해야 한다. 이게 기본이다. 그래야 청년들이 ‘주변’을 바라볼 여유가 생긴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지역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이 서로의 ‘뒷배’가 돼주며 협동·공생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충남 서천 청년농민 김옥진씨는 “지난해부터 참여하고 있는 한살림 생산자공동체 ‘손뼉공동체’가 내가 믿는 든든한 뒷배다. 처음엔 농산물 출하처를 찾을 목적으로 모였지만, 지금은 함께 일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게 어색하지 않은 가까운 사이가 됐다”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공동체를 조직하고 얼마 안 됐을 때, 밭에서 돌을 골라내야 농사가 가능한 상황이라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트랙터에 돌 수집기를 부착하고 묵묵히 내 밭을 갈아주는 친구 농민을 보며 오랜만에 ‘거래의 손길’이 아닌 ‘도움의 손길’을 경험하고 스스로를 되돌아본 적이 있다. 이후 서로 일손 도울 일이 있으면 나도 기꺼이 팔을 걷어붙였다. 이렇게 만난 청년농민 간 네트워크는 지역 내 소식을 알 수 있는 장이 됐고, 내가 지역에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점차 사라져가는 농촌 가부장제 … 그러나 아직 갈 길 멀다

여성분과에 토론자로 참석한 서천 청년농민 이수진씨는 여성농민의 관점에서 최근 농촌지역의 분위기를 이야기했다. 이씨는 “고등교육을 수료한, 자유롭고 개방적인 문화에 익숙한 자녀세대가 많이 합류함과 함께 도시에서 오래 생활하다가 귀농·귀촌한 사람이 늘면서, 마을에서 고착화됐던 가부장제의 모습은 많이 희석됐다”고 한 뒤, 그럼에도 아직은 갈 길이 먼 상황임을 언급했다. 특히 ‘가부장적 마을문화’를 이어가려는 주체 중엔 남성뿐 아니라 여성도 있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었다.

“예컨대 여성에게 결혼·출산을 강요하고, 원하지 않는 주선을 하고, 여성의 노동과 희생을 기반으로 마을 발전·친목을 도모하는 부녀회 전통의 계승을 강요한 주체 중엔 60대 이상 여성들도 있었다. 20~30대와 40~50대 모녀 세대 사이엔 성평등 강화, 가부장적 문화 개선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지만, 60대 이상 조부모 세대와는 의견 차이가 심했던 사례가 많다.”

이수진씨는 또한 정부·지자체의 여성농민 지원정책에 대한 의견도 표했다. 일례로 농기구·농작업 지원정책과 관련해서도 더욱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이씨의 주장이다.

“소농기구, 작업대 등의 수요는 가족농 중심 체계에 맞춰져 있다. 여성 1인 가구와 여성 1인 경영체가 늘어나는 가운데, 다양한 여성농민의 현장 고충을 완화하기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예컨대 바퀴 의자, 근력 대신 기술로 사용 가능한 농기구가 필요하며, 수동 견인 동력분무기 대신 승용관리기를 지원하는 걸 고민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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