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미래 위해 분투하는 괴산 청년들의 삶

  • 입력 2022.10.16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올해 10월, 충청북도 괴산군은 축제의 장이었다. 2015년 이래 7년 만에 열린 세계유기농산업엑스포에 참가하고자 국내외에서 50만명 이상이 방문했다. 2022년 기준 20대 1,024명, 30대 855명이 사는 ‘인구소멸 고위험지역’ 괴산은 모처럼 들썩거렸다.

축제는 끝났다. 그리고 1,879명의 20~30대 청년들은 괴산에서 다시금 일상을 살아간다. 다시 맞이한 일상의 각박함 속에서 미래를 위해 분투하며 살아간다.

지난 7~8일 괴산 중원대학교에서 (재)지역재단(이사장 박경) 주최로 열린 제19회 전국지역리더대회엔 ‘생존’을 위해 분투 중인 괴산 청년들도 많이 모였다. 농사를 짓고 안 짓고를 떠나서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괴산이라는 지역의 미래를 위해 분투한다는 점에서 그들 모두 똑같았다. 그들이 전한, 괴산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괴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민은?

지난 7일 충북 괴산군 중원대학교에서 지역재단 주최로 열린 제19회 전국지역리더대회 청년분과. ‘청년세대, 지역에서 살아남기’란 주제로 열린 이날 분과에선 지역의 미래를 위한 괴산 청년들의 ‘분투기’가 공유됐다.
지난 7일 충북 괴산군 중원대학교에서 지역재단 주최로 열린 제19회 전국지역리더대회 청년분과. ‘청년세대, 지역에서 살아남기’란 주제로 열린 이날 분과에선 지역의 미래를 위한 괴산 청년들의 ‘분투기’가 공유됐다.

‘청년세대, 지역에서 살아남기’란 주제로 7일 열린 전국지역리더대회 청년분과에서 박지은 농촌인생공간연구소 대표는 ‘괴산군 청년의 살아가기’란 주제하에 괴산군 내 청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청년 기초실태조사에 대해 발표했다.

조사대상 247명 중 영농에 종사한다고 밝힌 사람은 65명이었다. 박 대표는 “청년들의 재배작목이 괴산군에서 소개하는 주 작목, 또는 최근 청년들의 주 작목으로 거론되는 작목 범위를 훨씬 넘어설 정도로 다양하다는 점에서 놀랐다. 할 수 있는 건 정말 다 지어보는구나 싶었다”며 “이 작물을 재배해도 어려우니까 저것도 심어보고, 이걸 해서 (소득) 보장이 안 되니 저걸로 넘어간다는 맥락이 읽혀 가슴 아팠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내국인 영농 종사자들이 밝힌 노동 과정의 애로사항으로서 인력 부족, 인력 수급의 어려움, 인건비, 수입·생계의 불안정, 각 관공서 담당자의 행정처리 관련 비협조, 날씨와 자연재해, 판매처 확보의 난항, 건강유지 등을 언급했다. 여성농민의 경우 가사·농업 부담을 덜어줄 괴산군 정책 부재, 농번기에 여성농민 대상 사업을 놓치는 상황의 발생, 인력부족으로 인한 피로, (영농을 위한) 이동거리 등이 주요 애로사항이었다.

한편 사무직(주로 관내 기관 근무)이나 전문직, 자영업, 학업 등에 종사하거나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지역 내 비영농 종사자들은 노동 과정에서 대인관계, 업무 과다, 저임금, 조직 내 갈등, 체계화되지 않은 업무 등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변화를 싫어함’, ‘도시가 아닌 지역의 한계로 청년 프리랜서, 예술인들이 새로운 자극, 영감을 얻기 어려움’, ‘지역 텃세’ 등 지역 문화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한편 괴산엔 이주민 청년들도 산다. 결혼이주민의 경우 70%가 가족·친인척·지인의 영농에 참여하며, 비영농 종사자의 경우 아시안 가게(이주민을 위해 아시아 각국의 먹거리를 파는 가게) 또는 ‘농가에 피고용인 보내는 사업’ 등을 운영하거나 식품업, 상품 포장, 생산직 등에 종사한다. 이주노동자의 경우 계절성 영농에 종사한 경험을 공통적으로 갖는다.

박 대표는 영농·비영농 종사자를 막론하고 평균 노동시간이 길고 일하는 과정은 불안정하다고 분석했다. 영농종사자는 하루 10~12시간(계절성 노동), 비영농 종사자는 하루 8~10시간 노동에 종사하나 노동시간이 불규칙하다는 게 박 대표의 분석이었다.

괴산 청년농민의 삶

청년분과에 참석한 이준규 괴산군농민회 사무국장은 약 7,000평 농지에서 친환경농사를 짓는다. 괴산이 고향인 부친의 뒤를 이어 후계농으로서 농사를 시작했다.

이 사무국장의 연 소득은 약 7,000만원이다. 그러나 그중 절반 가량이 생산비로 빠진다. 괴산의 경우 올해 농업노동 일당이 남성 14만원, 여성 12만원으로 1월과 7월, 그리고 절임배추 생산기간에 평균 40명의 일꾼을 고용한다. 절임배추 생산기간엔 일당이 1만~2만원씩 더 붙는다. 이런 식으로 1년 인건비는 2,000만~3,000만원씩 나간다.

농사과정도 쉽지 않다. 친환경 농자재가 아무리 발달했다 해도 한 번이 아닌 여러 번 약을 쳐야 효과를 본다. 애벌레 피해의 경우 약을 쳐야 할 시기를 놓치면 약을 쳐도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 농지가 가물어서 물대느라 정신없을 때 눈앞에서 작물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도 놓친 적이 여러 번이었다.

괴산군으로부터 자재비 보조금(50% 지원)을 받긴 하나, 매년 자재비 가격이 상승하다 보니 보조금을 절반 지불한다 해도 2~3년만 지나면 자부담으로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가격이 나온다. 이 사무국장은 매년 약 1,200만원의 자재비를 지출한다.

이 사무국장은 부친과 아내, 두 아이 등 가족과 같이 산다. 매달 전기세 15만~20만원, 통신비 20만원, 수도세는 많이 나오면 15만원까지 지출하며, 예년엔 월 25만~30만원이었던 자가용 기름값은 유가폭등으로 40만~50만원으로 늘었다.

신혼 초 약 147만원이었던 가정의 한 달 고정지출은 최근엔 200만원, 많으면 254만원까지도 나왔다. 여러 지출을 제외하고 나면 결과적으로 1년 농사지어 700만~800만원 정도가 남아, 농협 대출을 안 받는 한 생계 유지가 버겁다.

이 사무국장은 “그나마 ‘고소득’을 번다는 친환경농민의 현실이 이러한데, 관행농사 짓는 농민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기본 수익률 자체도 친환경농사보다 낮은 상황에서 규모라도 키워야 농사가 유지된다”며 “농사 유지는 농협으로부터 대출받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들이 폐업하게 되면 농협 경영에도 문제가 생기는 만큼, 농협도 농민들에게 계속 채무상환 유예를 준다. 그런 식으로 농업이 이어지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한때 고향을 떠나 수도권으로 이주해 문화활동에 종사했던 이 사무국장은, 이상과 같은 농업현실을 바꾸기 위해 고향 괴산에서 농민회 사무국장으로서, 청년농민으로서 당당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공간’을 만들자 청년이 모였다

한편 ‘비영농 종사’ 청년 중엔 괴산에서 공동체 회복을 위해, 청년의 연결망 형성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다.

괴산에서 17년간 활동 중인 이애란 문화학교 숲 대표는 지역민들과 함께 ‘우리가 만드는 그림책’, ‘2030 밥상모임’, ‘오감낭독극 만들기’ 등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특히 ‘2030 밥상모임’은 농촌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응원하는 자리이자, 지역에서 다양한 삶을 꿈꾸고 살아가는 청년에게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

2030 밥상모임에서 모인 청년들은 매주 한 번씩 저녁을 먹으며 서로 공감대를 형성했고, 청년이 더 자주 만나고 더 많은 청년이 함께하며 지역 주민과 연결될 수 있는 ‘공간’ 마련에 동의했다. 이에 지난해 문화학교 숲과 2030 밥상모임은 ‘청년공간 만들기 프로젝트’를 벌였고, 그 결과 지난해 말 지역 청년들의 새 공간 ‘청년창작소 오롯(대표 홍남화, 오롯)’이 만들어졌다. 오롯에선 영화 감상모임 및 마을방송국 운영, 벼룩시장 ‘마주보장’ 운영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며 지역 청년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홍남화 오롯 대표는 "오롯이라는 공간이 생겨나니 수많은 연결점이 생겨났고,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게 숨어있던 디자이너, 작가, 싱어송라이터, 문화예술강사, 대학생, 직장인, 농부 등등 다양한 청년들이 함께 모여 기획하고, 도전하고, 시도해보며 지역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조금씩 찾아내 해봤다"며 "지역에서 재미와 즐거움을 찾던 청년들은 오롯에서 자연스럽게 지역 청년문화 기획자가 돼 가고 있다. 각자가 하나의 프로그램을 맡아 운영하고 있고, 또 새로운 일들을 계속 기획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당신의 ‘존재 자체’를 응원합니다

지역의 미래를 위해 분투하는 청년 주체들이 바라는 지역상은 어떠할까. 이준규 사무국장은 △청년을 위한 주거공간 마련(영농 여부와 상관없이) △매달 30만원 이상 지역상품권 지급 △대중교통 및 여성을 위한 의료시설 등 최소한의 공공서비스 마련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주거공간과 관련해 이 사무국장은 “괴산에 귀농해서 집 알아볼 때 34년 된 아파트의 집 가격이 1억원이더라. 5층 건물 꼭대기 층인데 엘리베이터도 없어 걸어 올라가야 한다”며 “청년이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꺼리’를 만들고서 지역에 인구가 유입되길 바라야 하지 않겠나. 지금 같은 농촌 상황에서 귀농·귀촌을 권유하라고? 양심적으로 그렇게 못하겠다”고 말했다.

박지은 대표는 “괴산을 비롯한 농촌 청년들은 마을-도시 간 이동과 이주가 빈번한 삶을 살다 보니 이동시간이 길며, 장시간 노동에 종사한다. (영농종사자의 경우) 겸업하는 사례도 많다”며 “이러한 지역 청년층의 생활리듬을 반영한 정책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복잡한 요소들이 중첩되고 얽히는 청년층의 삶은 가급적 스스로의 목소리를 통해 파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애란 대표는 “지역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며 청년문화를 만들어가는 ‘핵심씨앗’들을 위한 괴산군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며 “청년이 지역에서 진행하는 실험들의 성공 여부를 떠나 그들의 ‘존재 자체’를 응원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