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최소가격보장조례’ 가로막는 농식품부?

5개 품목 가입률 17% 불과한 채소가격안정제와의 ‘중복성’ 이유
조례 운영 중인 지자체에 ‘최소가격보장’ 용어 사용자제 등 권장
기저엔 ‘가격보장 시 농민들 과잉생산할 것’이란 전제 깔려 있어

  • 입력 2023.07.16 18:00
  • 수정 2023.07.16 18:37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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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정부가 채소가격안정제와의 중복을 이유로 지방자치단체가 운영중인 농산물 가격보장조례에 '최소가격보장'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말 것을 요청해 논란이 일고 있다. 2019년 7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농산물값 폭락대책 촉구 전국생산자대회'에서 한 마늘 재배 농민이 최저생산비 보장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정부가 채소가격안정제와의 중복을 이유로 지방자치단체가 운영중인 농산물 가격보장조례에 '최소가격보장'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말 것을 요청해 논란이 일고 있다. 2019년 7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농산물값 폭락대책 촉구 전국생산자대회'에서 한 마늘 재배 농민이 최저생산비 보장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전국 마늘 주산지 농민들이 가격 하락으로 고충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일명 ‘최소가격보장제’로 불리는 지자체 조례마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뭇매를 맞고 있다. 지자체 행정 담당자 등의 소극적인 태도도 문제지만, 농림축산식품부가 ‘채소가격안정제’ 사업과의 중복성이 우려된다는 이유를 들며 지자체에 “조례를 근거로 사업을 운용하더라도 ‘최소가격보장’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말라”는 요청을 하달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더해지고 있다.

올해 마늘 재배 농민들은 냉해와 봄 가뭄, 수확기 폭우 등으로 생산량과 품질이 모두 하락해 큰 피해를 감내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아울러 지역농협 계약재배 단가도 지난해 대비 낮게 책정된 데 이어 최근 건마늘 경매가 역시 낮은 수준으로 형성돼 농민 피해를 가중시키고 있다. 이에 농민들은 정부와 지자체를 향해 마늘 생산량 및 품위 저하 피해를 재해로 인정해 줄 것과, 생산비가 보장되는 수급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 중이다. 특히 전남지역 농민들은 박형대 진보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전라남도 주요 농산물 가격안정 지원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 지난 5월 전라남도의회 임시회 2차 본회의에서 의결된 이후 한층 강화된 조례안의 정상 작동과 이로 인한 농산물 가격안정 및 소득 보전 등에 기대를 거는 상황이나, 전남도 등 지자체에서는 수급대책 마련은 정부가 우선돼야 한다는 점, 마늘이 농식품부 채소가격안정제 대상품목이라는 점 등을 앞세우며 소극적인 실정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3일 전남도 관계자는 “양파도 그렇고 마늘 또한 정부(농식품부)가 수급 안정을 위해 추진 중인 채소가격안정제 사업 대상품목이기 때문에 이를 통한 수급대책을 우선 시행하고 추후 가격이 더 떨어져 시장격리 시 농식품부 예산이 부족한 경우 등에 자체 예산을 집행하고 있다”라며 “물론 최저가격보장제라고 불리는 도 조례도 있지만, 수급조절은 정부가 해야 할 부분이다. 조례에 근거해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가격보장 등의 대책을 운용한다 해도, 다른 지자체에서 안 하면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기 때문에 수급 관련 사업의 경우 정부가 우선적으로 대책을 추진하고 부족할 경우 지자체에서 추가적으로 관련 예산을 발동하는 그런 구조로 보면 된다”고 전했다.

농식품부 담당자 또한 지난 11일 “채소가격안정제는 정부 수급정책에 참여하겠다는 의사가 강한 농민이 자부담을 내고 참여하는 계약재배 성격의 사업이다. 기준 이하로 시장가격이 하락할 경우 농가에 가격하락분을 보조하거나 과잉물량을 격리한다”라며 “전라남도 등의 조례가 농식품부 채소가격안정제 사업과 유사하기 때문에 중복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는 데다 지자체가 조례에 근거해 ‘최저가격보장’을 하다 보면 농민들이 해당 농산물을 과잉생산해 수급조절이 원활하지 않을 우려가 있다. 과잉생산의 첫 단추가 되는 셈이기 때문에 지자체가 조례에 근거해 농산물 가격 하락 시 농민을 지원하더라도 ‘최저가격보장’이라는 이름을 앞세우기보다 생산비 등으로 우회 지원해달라 최근 요청한 건 사실이다”라고 밝혔다.

이 담당자는 덧붙여 “최근 마늘의 경우를 예로 들어 일부 지자체가 최저가격보장제(조례)로 농가 소득을 보전해줄 경우 전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커지는데, 이 경우 이중 지원이 불가하기 때문에 채소가격안정제에 가입한 농가들은 해당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 아울러 채소가격안정제는 도매시장 단가가 기준의 80% 이하로 떨어졌을 때 발동되는데, 현재 산지 수매단가 등은 지난해 대비 하락했음에도 이상하게 도매시장 단가는 기준 대비 80%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채소가격안정제가 발동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라며 “이러한 이유로 각 지자체에서 최소가격보장조례 등을 제정할 당시에도 채소가격안정제 대상품목은 제외해줄 것을 내부 방침으로 내린 적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이무진 해남군농민회장은 “마늘 가격 하락으로 최저가격보장제 운영에 대한 농민들의 요구가 거세지자 지자체가 농식품부 의견을 물어봤다고 한다. 지자체 조례를 운영함에 있어 중앙정부 의견을 묻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농식품부가 이래라저래라 간섭하고 그걸 또 따르는 지자체 행정 담당자의 태도는 더 큰 문제다”라면서 “전남도를 예로 들어 조례 운영을 그렇게 할 거면 지난 6월 이전보다 강화된 내용으로 조례를 개정할 때 나서서 막았어야지, 당시엔 아무 노릇도 안 하고 이제 와 가격이 떨어져 시름하는 농민들의 요구를 모른 체하고 책임을 농식품부에만 맡긴 채 손을 놓고 있으면 안 된다. 또 농식품부는 지자체 조례 운영에 간섭할 거면 아예 조례를 없애도록 지침을 내리든지 원활한 수급조절이 가능하도록 채소가격안정제를 대폭 확대하든지 방침을 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일권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 의장 역시 “전남도뿐만 아니라 광역지자체에 해당 조례가 대부분 존재하는 데다, 지금 마늘의 경우 가격 하락으로 인한 발동요건이 마련됐음에도 불구하고 담당자들이 채소가격안정제와의 중복성 우려와 ‘세계무역기구(WTO) 농업보조금총액(AMS)’ 한도 초과 우려까지 들먹이는 실정이다. WTO AMS 한도 초과 우려가 있으면 애당초 조례를 제·개정할 때 그걸 고려했어야 한다”라며 “지금 상태로는 조례가 유명무실할 뿐이다. 또 조례에서 정한 마늘 기준가격 자체가 터무니없어 제대로 된 지원 대책이 마련되기 어렵다. 생산비가 보장되도록 기준가격을 현실화하고, 제도가 사문화되지 않도록 지자체 행정이 적극적인 태도로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5개(마늘·양파·무·배추·대파) 중점 품목 채소가격안정제 가입률은 17%에 불과한 상황으로, 여전히 한계가 존재하는 실정이다. 오는 2024년 농식품부가 채소가격안정제 사업 개선 및 규모 확대를 계획 중인 것으로 파악되는 가운데, 최근 (사)전국마늘생산자협회의 요구를 일부 반영해 농식품부가 내놓은 ‘2023년산 마늘 수급대책’마저 벌마늘 등의 저품위 마늘 수매를 채소가격안정제를 통한 출하연기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채소가격안정제 미가입 농가는 해당 지자체와 생산단체 등을 통해 자체 처리하도록 방안을 협의하겠다는 계획이나 미가입 농가의 혼란은 여전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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