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대체식품’ 용어, 다시 생각해보자

  • 입력 2023.06.11 18:00
  • 수정 2023.06.12 06:39
  • 기자명 황명철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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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명철 박사
황명철 박사

 

축산물 모방 식품의 제도적 명칭을 고심하던 정부가 이를 ‘대체식품’으로 통칭할 것이라는 소식이다. 이는 지난달 24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개최한 ‘대체 단백질 식품과 배양육의 현재와 미래’라는 토론회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 책임자가 언급한 사실이다. 이 자리에서 “고기를 대체할 목적으로 생산되는 이 식품군의 명칭이 ‘대체식품’으로 결정됐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아울러 “대체식품이 국민들에게 안전하게 공급되는 것뿐만이 아니라, 신기술을 개발하는 식품업체의 경쟁력 강화를 고려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고민하고 있음”을 강조하기도 했다고 한다.

‘대체식품’이라는 용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대체’라는 단어다. ‘대체’라는 단어는 어떤 한 재화가 다른 재화를 동등한 수준에서 대신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국어사전에서 ‘대체’는 ‘다른 것으로 바꿈’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대체물’에 대해서는 ‘일반 거래에서, 같은 종류로서 크기, 무게, 형태 따위가 같고 값이 같으면서 대체가 가능한 물질, 또는 물건’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한 ‘대체원칙’이라는 단어에서는 ‘같은 성질의 물건을 생산함에 있어, 되도록 비용이 적게 드는 생산요소를 비용이 많이 드는 그것에 대신하는 원칙’이라고 정의한다.

이처럼 ‘대체’라는 단어는 분명히 동질성, 동격이라는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체식품’이라는 용어는 실험실에서 공장에서 이름 모를 인공재료로 합성한 먹거리를, 자연 섭리에 따라 생산한 자연식품과 동질한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가짜가 진짜와 같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경쟁력 확보를 위해 신제품 개발 시, ‘제품차별화’를 위해 노력한다. 이름을 달리하고 경쟁사와 제품 특성과 효용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인공식품에 있어서는 자연식품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맛이 같고, 영양이 같고, 식감이 같다고 주장한다. 인공식품은 자연식품과 같다는 주장이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일 것이다.

게살의 맛이 나도록 가공해 만든 인공식품으로 ‘게맛살’이라는 것이 있다. 1972년 스기요라는 일본 수산물 가공회사에서 처음 발명했다. 최초 개발 이후 세대를 거듭하면서 2004년에는 자연산 게살과 거의 같은 수준이라고 주장하는 제4세대 제품이 발매됐다.

작년 일본의 한 TV 방송에 출연한 스기노 사장은 게맛살 판매량을 크게 늘린 비결로, 게맛살 진열을 이전 가공식품 코너에서 수산물 코너로 바꾼 것이라고 소개했다. 가공식품을 수산물 코너에 진열함으로써 ‘게맛살은 진짜 수산물’이라는 인식을 소비자에게 심어주는 데 성공했고, 판매증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가짜 게맛살’이 ‘진짜 게살’을 ‘대체’하게 되는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국내에서도 ‘대체’ 효과를 노린 기업의 상술에 축산단체가 반발하는 사건이 있었다. 재작년 12월 국내 대표적 대형마트가 축산 코너에 식물성 대체육 브랜드 ‘언리미트’ 제품을 진열했다. 대형마트가 대체육을 가공식품이 아닌 소고기, 돼지고기 같은 하나의 육류로 받아들인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대체육이 진열된 지 하루 만에 축산관련단체협의회는 해당 대형마트에 “동물성 단백질이 전혀 함유되지 않은 식물성 식품을 소비자 선택권이라는 미명 하에 축산 매대에서 판매하는 행위는 엄연한 소비자 인식 왜곡”이라고 항의하며 “축산대체식품을 축산 매대에서 판매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축산단체의 운동 역사는 ‘대체’와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수입쇠고기 반대는 수입육이 국산육을 ‘대체’하는 데 대한 우려다. 대기업 축산업 진출 반대는 ‘대기업’이 가족 중심 ‘농가’를 ‘대체’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축산관련단체협의회는 올해 초 ‘대체식품’ 용어를 담은 정부 고시안에 대해, ‘대체’가 아닌 ‘모방’, ‘인조’, ‘모조’로 표시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정부는 농가의 주장도 배려한 공정한 입장에서 ‘대체식품’이라는 용어를 재검토해 주길 바란다. 아울러 ‘자연식품’을 ‘인공식품’이 대신할 수 있다는, 소비자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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