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처럼 만든 것’을 뭐라 불러야 할까

‘대체식품’ 행정예고에 축산업계 “‘인조’·‘모조’ 표기해야”

  • 입력 2023.04.02 18:00
  • 수정 2023.04.02 20:31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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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고기를 모방한 식품’을 무엇으로 부를 지가 연일 화두다. 명칭에 대한 명확한 규제가 없는 상태에서 시장에는 소비자의 혼란을 초래하는 이름들이 난립했고, 이를 산업에 대한 위협으로 느낀 축산업계가 대응 활동을 펼치는 가운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이 식품군에 대한 정의와 명칭의 결정을 앞두고 있다.

현재 시장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식물성 원료를 사용해 축산물을 표방하는 제품들의 경우 식품업계는 이것이 축산물의 일종이자, 이를 대신할 수 있다는 긍정적 뉘앙스의 수식어를 덧댄 ‘대체육’, ‘대안육’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시장규모의 급격한 팽창과 자본을 바탕으로 한 공격적 마케팅에 힘입어 시장에서는 대체육이 이미 하나의 식품군으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간 축산업계에선 ‘대체육’이라는 용어를 구성하는 두 가지 요소 모두에 반발해왔다. 먼저 제기된 건 이들을 ‘고기(육)’나 ‘우유(유)’로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한 비판이다.

시장 형성이 한발 빨랐던 서구권에서는 농업계 요구를 받아 소비자 알 권리와 농업 유산 보호를 이유로 관련법을 제정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영농활동을 거치지 않은 식품에 농업생산물의 명칭을 붙여 판매할 수 없도록 아예 제한한 것이다. 그 뒤 벌어진 ‘다음 단계’는 이에 반발한 관련 기업의 이의제기나 소송 행렬이었다.

지방자치단체의 폭넓은 자치권을 보장하는 미국에서는 농업에 주력하는 지역을 위주로 모방 식품들이 농산물의 이름을 붙이는 것을 아예 금지하는 주법이 최근 몇 년 새 급속도로 확산했으나, 이에 반발하는 식품기업들이 소송에 나서자 제대로 된 집행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사례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여름 프랑스와 남아프리카 공화국 역시 식물성 식품이 ‘스테이크’와 같은, 육류를 연상케 하는 이름을 붙이는 것을 금지하는 규제를 도입했다. 프랑스 역시 같은 맥락 속에서 한 달 만에 법원에 의해 집행이 유예된 상황이다.

신세계푸드에서 내놓은 대체육 샐러드. 한승호 기자
‘고기를 모방한 식품’을 무엇으로 부를 지가 축산업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사진은 한 식품대기업에서 내놓은 대체육 샐러드. 한승호 기자

우리나라의 경우 생산자들이 이 제품군의 시장진입에 반발하고 대응하는 초기 단계는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우유자조금관리위원회(관리위원장 이승호)는 최근 유행하고 있는 귀리 음료를 유명 커피전문점 대다수가 ‘오트밀크’로 내세워 판매하고 있는 데 대해 문제의식을 품고 지난해부터 대응해왔다. ‘식품위생법’이 원유를 살균·멸균처리한 것 등만을 우유라 부르기로 한 만큼 실제 원유가 함유돼 있지 않은 식물성 음료는 ‘우유’가 아닌 ‘음료’로 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식약처로부터 사실을 확인받아 공표하는 나름의 성과를 내기도 했다.

일련의 흐름 속에 지난해 12월 22일, 식약처는 마침내 국내 유통 가능한 식품의 종류와 기준을 정하는 행정규칙 ‘식품의 기준 및 규격’의 일부개정고시안을 행정예고하고 의견 수렴에 나섰다. 우리 정부가 처음 내놓은 결론은 이를 ‘대체식품’으로 표기하자는 것이었다.

이 안은 동물성 원료 대신 식물성 원료, 미생물, 식용곤충, 세포배양물 등을 주원료로 사용해 포장육이나 식육과 유사한 형태, 맛, 조직감 등을 가지도록 제조했다는 것을 표시한 것을 ‘대체식품’으로 부르기로 처음 정의했다. 예를 들어 식물성 원료를 사용해 만든 스테이크, 실험실 배양을 통해 만든 배양육 등을 모두 대체식품이라는 새 범주에 두고 관리하겠다는 얘기다.

이 행정예고 발표 이후 축산업계선 ‘고기’나 ‘우유’를 빼면서까지 ‘대체’ 표기를 유지하는 데 대한 반대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우선 생산자들은 맛과 영양, 공익적 가치 등을 제공하는 축산업의 산물을 ‘대체한다’는 인식 속에 접근하는 데 대한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고 있다.

축산생산자단체들을 대표하고 있는 축산관련단체협의회(축단협)는 이에 ‘축산물모방(모조)식품’ 등을 주장하고 있다. 축단협을 비롯해 농협 축산경제, 축산바로알리기연구회 등도 대체식품 표기에 부정적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윤재 축산바로알리기연구회장(서울대 명예교수)은 대체식품이라는 표현이 ‘고기’를 포함하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고 강조·반박했다. 지금의 안과 같이 뭉뚱그려 대체식품으로 묶어선 명료하게 식품의 성격을 전달하기 어렵고,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필수정보도 부족해 혼동과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축산업계에서 ‘고기’라는 단어를 쓰는 것에 대한 반발이 심하니 식약처에서 나온 정의가 ‘대체식품’인데, 대체식품이라고만 하면 소비자는 그것이 식물성인지, 배양한 고기인지, 혹은 곤충으로 만든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라며 “항생제 첨가·혈청 사용 등 세포배양으로 만든 고기의 안전성도 여전히 의문인 만큼, 고기라는 단어를 쓰자면 ‘식물성 인조고기’, ‘세포배양 인조고기’, ‘곤충 인조고기’ 등으로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었다는 정확한 표현을 써서 소비자가 무엇을 먹는지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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