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묵은 적폐, 비상임조합장 ‘무제한 연임’

국회에 2년째 쌓여만 가고 있는 ‘연임제한’ 법 개정안

명확한 폐단, 지속된 문제제기에도 손 놓고 있는 국회

농협 저항 넘어설 수 있을까 … 의원들 ‘강단’ 시험대

  • 입력 2023.04.23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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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전국 동시조합장선거 이후 조합장 선거제 개선과 농협개혁에 다방면으로 논의가 촉발되는 분위기다. 선거운동 확대, 농협 내부구조 정비 등에 관해 다양한 의견과 법안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비상임조합장 무제한 연임’ 문제는 그 중에서도 가장 내용이 단순하고 명료한 의제다.

2004년 개정된「농업협동조합법」은 그동안 전면 무제한이었던 지역농협 상임조합장의 연임 횟수를 2회로 제한했다. 조합장 장기집권으로 인한 부패·부정 등의 폐단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유독 비상임조합장에 대해선 연임 제한을 설정하지 않았다. 상임보다 권한이 약하고 ‘명예직’에 가까운 만큼 규제를 느슨하게 풀어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는 당시 국회가 저지른 치명적 실수가 됐다. 20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까지 비상임조합장들은 낙후된 조직문화와 관성을 등에 업고 상임조합장과 다름없는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10년, 20년 장기집권하는 동안 임원을 측근들로 채우고 직원을 장악하며 장기집권 체제를 더욱 굳혀가는 식이다. 상임조합장 이상의 급여를 챙겨가는 비상임조합장도 허다하며 사실상의 ‘종신집권’과 ‘직위세습’ 행태까지 일어나고 있다.

실제 최근 성추행·갑질·횡령 등 후진적 사건사고가 발생한 농협들을 보면 3선 이상 다선 조합장이 집권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피해자들은 폐쇄적·고압적 조직문화와 그 속에서 겪어온 고통을 공통적으로 호소한다. 그나마 사건이 공론화되고 처벌이 이뤄지면 다행이다. 조합을 넘어 지역 토호세력으로 군림하는 조합장의 권력 앞에 사건이 은폐되고 처벌이 무마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농협중앙회에 관리감독 기능이 있다 하지만 중앙회 역시 조합장들의 눈치를 살피는 처지며 다선 조합장일수록 중앙회에 미치는 영향력 역시 커지게 된다. 조합에 대한 중앙회의 감사는 늘상 형식적·소극적으로 일관되고 있다.

상임조합장과 비상임조합장의 상이한 연임규정 그 자체가 유발하는 폐단도 있다. 일차적으로 불평등의 문제도 있거니와, 매번 조합장 선거가 임박할 때마다 눈 뜨고 못 볼 꼴이 반복되고 있다. 3선 임기를 마치는 상임조합장들이 임기연장을 위해 조합장직을 비상임으로 전환하려 하는 것이다. 농협과 농민의 사회적 위상에도 손상을 입히는 행위로, 개인의 도덕적 일탈로만 치부하기엔 너무 광범위하며 제도의 부작용으로 해석해야 할 문제다.

지난 2021년 2월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비상임조합장 연임 횟수를 제한하는 농협법 개정안을 발의하자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이 세종시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환영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지만, 농해수위 의원들은 아직 법안 논의를 시작하지 않고 있다.
지난 2021년 2월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비상임조합장 연임 횟수를 제한하는 농협법 개정안을 발의하자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이 세종시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환영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지만, 농해수위 의원들은 아직 법안 논의를 시작하지 않고 있다.

국회에 문제의식이 없는 건 아니다. 비상임조합장의 연임을 상임과 똑같이 2회로 제한하는「농업협동조합법(농협법)」개정안이 10년 전부터 등장하기 시작했고 현 21대 국회에도 윤준병(2021년 2월)·윤재갑(2022년 10월)·신정훈(2023년 3월)·윤미향(2023년 3월) 의원이 각각 법안을 발의해둔 상태다. 국회 행정안전위 소관인「공공단체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조합장 선거제 전반에 대한 규정)」과 달리 농협법은 농협의 부조리에 직접 촉각을 세우는 농해수위 소관이라 안건을 상정하고 통과시키기도 훨씬 수월하다.

다만 윤준병 의원의 최초발의 이후 2년이 지나도록 논의가 시작조차 되지 못했다는 것은 문제에 대한 농해수위 의원들의 무관심을 보여준다. 폐단이 뚜렷하고 딱히 반론이 없는 사안임에도 개정 논의가 진행되지 않는 데 대해, 의원들이 조합장들의 ‘지역 파워’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비판이 만연해 있다.

농협중앙회가 개입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팽배하다. 지난해 말 농협중앙회는 ‘중앙회장 연임허용법’에 대한 조합장들의 의견을 모으면서 ‘비상임조합장 연임제한법’에 대한 의견을 같이 물어 “중앙회장 연임에 동의해주면 비상임조합장 연임제한도 막아주겠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무모한 법안 강행에 중앙회장 연임 허용법은 논의가 수그러들었지만, 비상임조합장 연임에 대한 중앙회 로비가 살아있다면 법안 통과에 가장 큰 저해요인이 될 수 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조합장들의 ‘보이지 않는 저항’이 언제나 있을 수밖에 없는 안건이지만, 조합장 임기가 갓 시작된 지금은 가장 그 저항이 약할 시기다. 고무적인 것은 최근 들어 신정훈·윤미향 등 ‘농협개혁’ 성향을 띤 의원들이 연이어 이 개정안을 재차 발의하며 논의를 촉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20년 묵은 적폐를 청산할 절호의 시기인 만큼, ‘비상임조합장 연임제한법’은 농해수위 소속 21대 국회의원들의 강단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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