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시장 ‘배추 하차거래’ 의무화됐지만, 갈등 여전

비용 증가 속 출하자-중도매인 간 ‘감식망’ 합의 여전히 진행 중

주체별 불편 호소 계속되는 가운데 산지 출하 진통도 남아 있어

  • 입력 2023.04.23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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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지난 19일 밤 서울 가락시장 한 경매장에 팰릿 단위로 출하된 배추가 가득 쌓여 있는 가운데 상인들이 경매가 끝난 배추 일부를 선별해 다시 포장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9일 밤 서울 가락시장 한 경매장에 팰릿 단위로 출하된 배추가 가득 쌓여 있는 가운데 상인들이 경매가 끝난 배추 일부를 선별해 다시 포장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이달부터 가락공영도매시장 배추 비팰릿 출하가 금지되며 하차거래가 의무화됐지만 이를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특히 ‘감식망(품질 확인용 샘플)’은 뜨거운 감자로 자리 잡았는데 더딘 속도로 논의가 진행되고는 있지만, 유통 주체별 이익과 직결되는 까닭에 합의는 여전히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중도매인의 경우 팰릿 1개 당 1개의 감식망을 요구하고 있지만, 출하자 측은 여전히 팰릿 2개 당 1개의 감식망을 고수 중이기 때문이다.

대아청과 소속 중도매인 A씨는 “차상거래 때에는 ‘이등품(재)’이 존재했기 때문에 선별이 안 돼 발생하는 하자를 감수할 수 있었지만, 하차거래 도입 후엔 재가 없어져 이를 고스란히 손해 보는 입장에 처했다. 예를 들어 이전엔 경매받은 물건을 자체적으로 선별해서 규격에 미치지 못하는 걸 재로 빼 버리고 팰릿화해서 판매를 했는데, 지금은 배추 팰릿을 경매받아 풀어 선별한 다음 다시 팰릿으로 포장해 판매하는 상황이다”라며 “인건비는 인건비대로 더 들고 재는 재대로 없어져서 불편함과 손해가 더 크다”고 전했다.

이어 “품질은 둘째치고 규격 등의 선별을 잘 하는 출하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분명히 존재한다. 때문에 상품인 줄 알고 사서 이걸 상품으로 되팔았는데 사실 중품이나 하품인 경우 컴플레인이 발생하게 되는 거다”라며 “지금은 저장물량 출하라 조금 덜하지만 여름에는 품질도 상당히 문제가 되기 때문에 팰릿 당 1개의 감식망을 제공해달라 요구하는 것이다. 출하자 측과 논의는 계속 진행 중인데, 애초 하차거래 전환 얘기가 나온 이후 실제 도입되기까지 2~3년가량 지나며 이런 부분들을 섬세하게 논의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지 못했던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밝혔다.

재는 운송 과정 중 상품이 짓눌리는 등의 품질저하가 발생한다는 이유로 전체 물량의 20%를 이등품으로 처리해 경락가의 60%를 적용하는 것을 의미하며, 차상거래의 잘못된 관행으로 손꼽힌다. 물류 효율화를 내건 배추 하차거래 전환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며 포장재와 팰릿 사용이 필연적으로 추가되는 출하자에 적지 않은 부담 초래가 문제로 대두됐지만 한편으론 재가 없어진다는 게 일부 장점으로 손꼽히곤 했다. 때문에 재는 가락시장 내 마지막 남은 차상거래품목이던 배추의 하차거래 전환을 이끈 이유 중 하나기도 하다.

하지만 출하자 입장에서 현재의 하차거래는 재보다 더한 존재가 돼버린 상황이다. 출하자들은 팰릿 출하 시 한 차에 적재할 수 있는 물량이 적지 않게 줄어든 반면, 팰릿과 이를 포장하는 필름·그물망 등의 자재값, 팰릿화 과정에 소요되는 인건비 등은 늘어났는데 팰릿 1개 당 1개의 감식망까지 제공해야 한다면 가락시장 출하 포기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광형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한유련) 사무총장은 “하차거래 전환을 추진하면서 재가 없어지니 손해 보지 않을 거란 얘기들을 했는데, 기존 상차거래 때는 5톤 트럭에 배추 1,000망을 실을 수 있었던 반면 팰릿 하차거래 시엔 5톤 트럭에 팰릿 14개가 실리고 팰릿 한 개에 64망 정도를 적재할 수 있어 최대 896망밖에 못 싣는 실정이다. 10년 평균 배추 한 망 경락가가 4,500원 정도인데 계산해보면 팰릿 적재로 인한 손해만 벌써 46만8,000원이고, 통이 더 큰 해남 월동배추 등은 팰릿당 적재 망 수가 줄어 손해가 더 커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또 이 사무총장은 “뿐만 아니라 팰릿 1개 임차비용이 6,000원이고 5톤 차 당 팰릿 14개가 들어가니 팰릿 비용만 총 8만4,000원인데 랩핑용 비닐과 여름철 그물망 등의 자재비, 지게차 사용료에 팰릿 포장 시의 인건비까지 다 하면 차량 1대 당 약 55만원의 비용이 추가된다. 물론 박스 작업 시엔 비용이 더 들어간다. 비교해보면 재가 존재하던 상차거래는 1,000망의 20%인 200망에 경락가(4,500원)의 60%를 적용해 출하자가 보는 손해가 36만원 정도였고, 지금은 못해도 100만원 이상인 것이다”라며 “서울시공사에선 현재 팰릿당 3,000원을 보조하겠다고 하는데 이 경우 지원금은 5톤 차 1대 당 4만2,000원밖에 안 된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이 사무총장은 “소비지 유통 흐름 등을 살펴볼 때 하차거래로 전환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반입물량에 따른 가격 진폭이 큰 지금의 도매시장 경매제도 안에서는 하차거래 의무화로 출하자가 감내해야 할 몫이 너무 막대하다. 하차거래가 연착륙되려면 어느 정도 적정 가격이 유지돼야 하는데 우선 그게 안 되다 보니, 성수기 출하로 물량 확대 시 출하자 피해가 크게 우려되는 상황이다”면서 “배추 팰릿 하차거래를 가락시장에서만 진행하기 때문에 불락 시 팰릿을 다시 차에 실어 다른 시장으로 보낼 수 없는 것도 걱정이다. 상차거래 땐 바로 다른 시장으로 옮겨갈 수가 있었는데 그렇질 못하다 보니 결국엔 가락시장 배추 거래물량이 줄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지난달 말 문영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사장은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출하자와 중도매인 간 감식망 논란 불식에 적극 나서 배추 하차거래를 가능한 빨리 안정화시키겠단 의지를 내보였지만, 현재 공사는 공정거래법 등을 이유로 한발 물러난 상태다. 공사 관계자는 “법적으로도 그렇고, 개인 재산이다 보니 공사가 직접 나서 중재를 하거나 강제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양 측이 협의하는 방법뿐이다”라며 “공사에선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쏟고 있으며, 출하자 지원사업을 확대하는 것 역시 적극적으로 논의 중에 있다”고 전했다.

한편 가락시장 내 배추 팰릿 하차거래는 본격적인 산지 출하 과정에서의 진통 또한 과제로 남겨둔 상태다. 창고에 보관 중인 현재 저장물량 출하의 경우 팰릿화에 어려움이 적은 편이지만, 산지 수확과 동시에 이뤄지는 출하는 재배지 여건상 운반과 팰릿 포장의 과정이 추가될 수밖에 없어 유통 비효율성과 비용 증가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에 이무진 해남군농민회장은 “팰릿 출하를 위해선 지게차 등의 기계가 반드시 투입돼야 하는데, 밭이 평지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장비가 들어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밭에서 수확 작업은 수확 작업대로 하고, 이걸 다시 평지나 작업할 수 있는 장소로 꺼내 팰릿화 작업을 해야 되니 이중 작업이 될 수밖에 없는 거다”라며 “당장 예산 등 하우스 봄배추가 출하되면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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