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화되는 농촌 인력난 … ‘농사의 종말’ 다가오나

법무부 미등록 외국인노동자 단속 ‘표적’ 된 경기 여주 농촌의 인력난 상황은?

  • 입력 2023.04.02 18:00
  • 수정 2023.04.02 20:15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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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불법체류자’를 뿌리 뽑아 엄정한 법질서를 세우겠다는 법무부(장관 한동훈)의 의도는, 결과적으론 외국인노동자 없이는 단 하루도 농사가 이어질 수 없는 농촌 지역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현장 농민들은 백번 양보해 단속을 감행하더라도, 최소한 농촌 인력난 해소를 위한 근본 대책부터 정부 차원에서 마련하는 게 급선무라고 한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경기도 여주시의 경우, 법무부가 단행한 ‘불법체류 외국인(미등록 외국인노동자) 단속’의 주된 타격 대상 지역이었다. 농촌 인력난이 여주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번호에선 최근 법무부 단속을 전후해 특히 인력난이 심화된 여주 지역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지난달 28일 경기 여주시 점동면의 한 감자밭에서 외국인노동자 2명이 9,000평의 밭에 감자를 심고 있다. 지인의 소개로 다른 지역에서 외국인노동자를 데려온 농민은 사흘째 감자를 심는 중이었다. 한승호 기자
지난달 28일 경기 여주시 점동면의 한 감자밭에서 외국인노동자 2명이 9,000평의 밭에 감자를 심고 있다. 지인의 소개로 다른 지역에서 외국인노동자를 데려온 농민은 사흘째 감자를 심는 중이었다. 한승호 기자

“3개월간 인력 모집해서 1명 지원 … 반나절 만에 그만둬”

여주 가남읍 농민 고석재(57)씨의 농장에선 지난 2월 1일, 2월 22일 두 차례에 걸쳐 18명의 외국인노동자가 출입국·외국인청 직원들에 의해 연행됐다. 특히 2월 22일엔 출입국·외국인청 직원들이 외국인노동자들이 묵는 숙소를 새벽부터 3시간 30분간 ‘포위’한 끝에 노동자들을 끌고 갔다.

고씨는 ‘불법체류자’를 고용했다는 명목으로 졸지에 5,000만원의 벌금을 물게 생겼다. 약 10만평 농지에서 친환경 고구마·감자 등을 재배해 온 고씨에겐 그렇지 않아도 6억원 가량 빚이 있는데 거기에 벌금이 더해진 셈이다.

당장은 일할 사람들이 사라졌으니 농사일 자체가 불가능하다. 고씨 농장에서 생산한 고구마 약 450톤은 진작 학교 등으로 출하됐어야 할 물량이었으나, ‘합법’의 영역에선 그 어디서도 노동자를 고용할 수 없으니 그대로 썩힐 수밖에 없었다. 출하는커녕 선별작업도 불가능했다. 선별작업을 하려면 9~10명의 인력이 필요하나, 그들을 구할 방법이 없다. 갈 곳을 잃은 고구마는 저온저장고 안에서 쭈글쭈글하게 썩어가고 있었다. 450톤의 고구마를 이미 버렸거나 버려야 할 상황이다.

고씨는 “고구마 농사를 크게 지어 왔지만 그걸로 수익이 나는 게 아니다. 다음 해 농사를 이어가는 데 (전년도에 번 수입을) 고스란히 투자해야 한다”며 “고구마를 어디에도 팔지 못하면 지금 빚 6억원은 12억원으로 2배 오를 것”이라고 토로했다.

고씨라고 미등록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하고 싶어 고용한 게 아니었다. 언제나 인력은 부족했다. 2020년 코로나19 발생 이래 더욱 그랬다. 고씨는 내국인 인력을 찾아 나섰다. 코로나 초창기였던 2020년 봄엔 동네 곳곳에 현수막까지 걸며 고구마 파종을 도울 사람을 찾았다. 3개월간 단 한 명이 지원했으나, 그는 반나절 일하고 너무 힘들다며 그만뒀다. 그 뒤로도 내국인 인력은 구할 수 없었으며, 지자체 차원의 계절근로자 투입 인원은 농가 수요에 비하면 항상 적었다는 게 고씨의 설명이다.

고씨는 “농사 규모를 줄이려 한다. 그러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고 한 뒤 “단속 시행 후 고구마를 재배하는 다른 농가의 어르신은 아예 농사를 포기하겠다더라. 그래서 ‘참 현명하시네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지난달 28일 경기 여주시 강천면의 한 친환경마늘밭에서 박순희씨가 풀을 매고 있다. 박씨는 “너무 가물어 풀이 잘 자라지 못하는 게 다행이라 생각될 정도”라고 말했다. 한승호 기자
지난달 28일 경기 여주시 강천면의 한 친환경마늘밭에서 박순희씨가 풀을 매고 있다. 박씨는 “너무 가물어 풀이 잘 자라지 못하는 게 다행이라 생각될 정도”라고 말했다. 한승호 기자

사람 부족해 파종·수확 시기 놓치는 사례도 부지기수

노지에서 재배하는 고구마·감자·마늘·생강 등은 대부분 봄에 파종하고 가을에 수확하는 작물들이다. 파종·수확 두 작업 모두 적절한 때를 놓치면 작물의 생장 및 품위에도 영향을 주기에, 농민들은 파종·수확 시기엔 특히 한 명의 일손이 아쉽다. 사람이 많을수록 씨를 한 개라도 더 제때 뿌릴 수 있고, 작물을 한 개라도 더 제때 수확할 수 있어서다. 그런 면에서 최근 여주의 인력난은 봄철 파종·수확에 분주한 농민들로선 재앙에 가깝다.

여주 점동면 농민 S씨는 인력 수급에 차질을 빚어 원래 파종해야 할 시기보다 감자를 10일 늦게 파종했다. S씨는 감자 파종 작업을 진행 중이었는데, 9,000평 농지에서 S씨와 함께 파종작업(S씨가 농기계로 두둑에 비닐을 덮으면 구멍을 뚫고 씨감자를 심는다)을 하는 사람은 외국인노동자 2명뿐이었다. 파종이 늦어져서 감자싹(감자싹엔 독이 있다)도 커졌다는 게 S씨의 설명이다.

S씨는 “원래 5명은 있어야 파종 작업이 가능하다. 5명이 함께하면 하루 만에 끝날 파종인데 지금 3일째 파종작업 중이다. 내일, 그러니까 나흘째 돼야 작업이 마무리될 듯하다”며 “그나마 저 2명의 외국인노동자도 지인을 통해 경기도 내 다른 도시에서 겨우 구해왔다. (이 노동자들의 신분이) 합법인지 불법인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외국인들이 없으면 지금 우리나라에선 농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여주 강천면에서 친환경농사를 짓는 이방래·박순희씨 부부도 인력 부족으로 예년보다 마늘·감자 등 여러 작물의 파종이 늦어졌다. 이들 부부가 생산한 친환경농산물은 여주 등 경기도 학교급식에 공급되는데, 학교에서 농산물 ‘품위문제’, 즉 크기와 모양새, 때깔 등을 매우 중시하는 걸 감안하면, 사람이 부족해 작물의 파종 또는 수확이 늦어진다는 건 친환경농민 입장에선 치명적이다.

특히 마늘의 경우 예년보다 15일 늦어진 지난해 10월 말에야 심었다. 원래는 10월 초, 늦어도 10월 중순에 심어야 하는데 심을 사람이 없어서 많이 늦어졌다는 게 이방래씨의 설명이다. 심지어 그때는 지금과 달리 법무부의 단속도 없었다. 그만큼 농촌 인력난은 만성화된 문제라는 뜻이다. 파종이 늦어진 ‘대가’는 커서, 이들 부부의 마늘밭 중 한 곳에선 심은 작물의 절반 가까이가 생육 부진에 시달렸다.

박순희씨는 “다양한 친환경농산물을 재배해 공공급식에 납품하는 농민들은 하나의 품목에서 파종·수확 시기가 늦어지면 다른 작물의 재배 과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며 “그렇다고 일부 지자체 또는 기관에서 ‘자원봉사 인력’을 보내거나 대학생들이 농활을 오는 것도, 그 취지와 별개로 ‘작업 측면’에선 현실적인 도움이 안 된다. 작업 숙련도가 낮다 보니, 품위기준 충족이 중요한 친환경농산물이 작업 과정에서 흠이 생겨 출하가 불가능해지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일할 사람은 없고, 농산물 가격은 떨어지고…”

여주 대신면에서 감자·고구마를 재배하는 K씨는 알음알음 구한 외국인노동자 3명과 함께 감자밭에서 파종준비를 하고 있었다.

점동면의 S씨가 예년보다 10일 늦게 파종했다고 설명한 걸 보면, K씨 역시 파종시기가 늦어진 상황이었다. 그는 “총 6만평 규모인 감자밭, 8만평 규모인 고구마밭에서 본격적으로 파종작업을 하려면 40~60명의 인력은 있어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선 많이 구해야 20명이나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사람이 부족해 수확 적기를 놓쳐버리면 수확량이 제대로 나올 수 없다”고 언급했다.

K씨는 인력난 심화가 자연스레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고, 인건비 상승은 여타 생산비의 압박 및 농산물 가격 하락 문제와 어우러져 농가경영을 악화시킨다고 지적했다. K씨는 “지난해 1인당 13만~14만원이던 인건비가 올해는 15만원으로 오를 것으로 보인다. 안 그래도 트랙터 구입에 2억원을 들였고, 기름값 등 농기계 관련 비용으로 2,000만~3,000만원이 매년 나가는 상황”이라고 한 뒤 “정작 고구마 가격은 바닥을 긴다. 지난겨울 고구마 가격은 10kg당 1만~1만4,000원이었는데, 이렇게 나오면 생산단가도 못 건진다. 최소 10kg당 1만5,000원은 나와야 본전”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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