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맞닥뜨린 농촌 인력난, 국가의 역할은?

  • 입력 2023.04.02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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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달 17일 경기 여주시청 앞에서 열린 ‘외국인 농업노동자 단속 중단 및 농업인력에 대한 정부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고석재씨가 “두 차례에 걸친 외국인노동자 집중단속에 올해 농사를 포기할 수준”이라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달 17일 경기 여주시청 앞에서 열린 ‘외국인 농업노동자 단속 중단 및 농업인력에 대한 정부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고석재씨가 “두 차례에 걸친 외국인노동자 집중단속에 올해 농사를 포기할 수준”이라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우리도 ‘합법’ 노동자를 고용하고 싶다. 그러나 방법이 없다. 정부는 단속을 할 거면 최소한 지금의 농촌 인력난에 대한 대책이라도 마련해 놓고 단속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식으로 대책 없이 단속만 하면 농민들은 농사짓지 말라는 건가?”

지난달 17일 경기도 여주시청 앞에서 ‘농업인력수급여주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외국인 농업노동자 단속 중단 및 농업인력에 대한 정부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여주 가남읍 농민 고석재(57)씨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상황을 토로했다. 졸지에 자신의 농장에서 일하던 외국인노동자 18명이 연행되자, 고씨는 고구마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선별 및 출하작업을 위해선 많은 인력이 필요한데,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로 인해 약 450톤에 달하는 고구마를 폐기하거나 폐기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법무부(장관 한동훈)는 지난달 2일부터 경찰청·고용노동부·국토교통부·해양경찰청 등과 함께 ‘불법체류 외국인 정부합동단속’을 실시 중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미등록 외국인 대상 강경 단속은 이미 2월부터 시작됐다. 특히 여주시에서만 약 130여명의 미등록 외국인이 출입국·외국인청 직원들에게 강제 연행됐다. 고씨가 고용한 외국인노동자들도 그때 연행됐다.

고씨는 출입국·외국인청 직원들에게 “인력난에 시달리는 농촌 현실은 아랑곳없이 그토록 ‘불법체류자’부터 때려잡는 게 중요하다면, 당신들은 왜 싸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생산한 ‘불법농산물’을 먹는 거냐?”라며 강하게 항의했으나, 직원들은 그저 고씨에게만 책임이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고씨는 이에 분노해 산으로 들어가 ‘극단적 선택’까지 하려 했었다고 밝혔다.

2주일 뒤인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도 기자회견이 열렸다.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반인권적 정부 합동단속을 규탄하는 전국 이주인권단체들의 공동 기자회견이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윤석열정부가 미등록 외국인노동자 대상 초강경 단속을 진행하는 상황을 규탄했다.

대구에선 이주민 교회에 경찰이 허락도 없이 예배 도중 들이닥쳐 수갑을 채우고 미등록 외국인들을 연행해 갔다. 지난달 17일 여주 기자회견에서 고석재씨는 “출입국·외국인청 직원들이 새벽에 군사작전 펼치듯이 숙소에 들이닥쳐 외국인노동자들을 강제 연행해 갔다”고 증언한 바 있는데, 이와 다를 바 없는 상황이 각지에서 벌어진 것이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미등록 숫자를 줄이겠다며 정부가 강제 단속 추방의 칼날을 휘두를수록 미등록 이주민은 더욱 숨을 수밖에 없고, 생활처지와 인권상황은 훨씬 열악해진다”며 “존재가 불법인 사람은 없다. 단속 추방을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여주에서 130여명의 미등록 노동자가 연행됨에 따라 농촌 인력난이 심화된 상황은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공유됐다.

이상의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법무부의 미등록 외국인노동자 강경 단속은 인권침해 및 농촌 인력난 심화 등의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 ‘법치질서 회복’이라는 법무부의 명분이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 그 누구에게도 도움되지 않는 상황을 초래하며, 오히려 각종 인권침해, 그리고 미등록 외국인노동자가 더욱 음지로 숨어들게 하는 등 ‘더 많은 불법’을 양산하는 셈이다.

본지는 법무부의 미등록 외국인노동자 단속 강화 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 중 하나인 경기도 여주시의 상황을 들여다봤다. 농촌 인력난이 우리 농업에 어떤 위기를 몰고 오는지,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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