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민에게 힘이 되는 농업재해 대책 마련하자

  • 입력 2023.04.02 18:00
  • 기자명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연구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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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연구기획팀장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연구기획팀장

 

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으로 인간에게 위안을 선사하지만 급작스런 이상기후로 커다란 시련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 시련이 훌훌 털고 일어날 정도로 경미할 때도 있지만 슬프게도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농사의 반은 하늘이 짓는다는 말처럼 농업은 기후변화에 민감하고 농민들은 그 누구보다도 일기예보를 발 빠르게 접하고 민첩하게 대비하지만 재해를 막지는 못했다.

올해 1월 유난히도 추웠던 제주도는 폭설과 한파로 농작물에 큰 피해가 발생했다. 이번 제주도의 농작물 재해피해는 역대 발생한 피해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알려질 만큼 제주도의 상황은 좋지 않다. 육지가 꽁꽁 얼어있는 겨울 동안 제주도에서는 육지의 먹거리를 책임져준다. 월동무, 브로콜리, 양배추 등을 제주 농민들이 농사짓는 덕분에 겨울철 우리 국민들의 식탁은 제철 농산물로 채워질 수가 있다. 하지만 지난해 심어뒀던 월동무의 속이 거무스름하게 변할 정도로 이번 한파는 혹독했다.

약 8개월가량 정성스럽게 키운 월동무가 대부분 언피해를 입으면서 그동안 투입했던 생산비는 고스란히 농가 부채로 남게 됐다. 그나마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한 농민들은 생산비라도 건지고자 하는 마음으로 보험금에 기대어 보지만 이 또한 산 넘어 산이다. 재해를 입은 농민들에게 보험금을 받는 과정은 또 다른 상처를 남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보험에 가입하고 이에 의지해보려 했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좌절감과 정책당국에 대한 커다란 불신뿐이다.

이번 제주 월동무 재해피해도 피해접수 후 곧바로 산지폐기를 진행해야 마땅했지만 정부는 가격이 급등할 것을 우려해 추진하지 않았다. 물가를 잡기 위해 농산물값을 떨어뜨리는 정책은 농민을 좌절케 하기에 충분했다. 지금도 피해 입은 월동무를 처리하지 못한 농민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애가 타들어 가고 있다. 날은 따뜻해져 가고 하루빨리 봄 농사를 준비해야 하지만 행정당국은 현장이 직면해 있는 상황에 무감각한 듯하다.

지금과 같은 농업 재해 대책만으로 위기상황에 직면한 농민이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 분명 제도개선은 필요하다. 농작물재해보험이 갖고있는 한계가 명확하고 보험이라는 틀 안에서는 농업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기에 한계가 있다. 제1차 농업재해보험 발전 기본계획도 현장의 요구를 반영하고자 하는 노력은 엿보였으나 국가의 책임성을 강화하고자 하는 방향성이나 전략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기후 발생이 늘어나면서 농업재해 발생 가능성 또한 앞으로 더 커져나갈 것으로 예측된다. 영농환경에 대한 위험 발생의 빈도와 그 규모가 커진다면 이에 대한 대비를 착실히 해나가야 한다. 물론 농업재해 피해의 모든 것을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험 제도가 도입된 이후 국가의 책임성은 점점 민간으로 이양돼 갔고 농가 피해에 대한 보장성은 약해져 갔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보험사인 NH농협손해보험은 농식품부의 관리 감독을 받지만 상품을 판매하는 보험사가 상품 개발까지 맡고 있어 회사 이익 추구의 원리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한계가 분명하다. 피해 농민들은 피해율 산정과정에서 수많은 갈등을 겪으며 비현실적인 제도의 개선을 목놓아 외친다. 재해에 대한 체감도가 높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대안 마련은 절실하며 더 늦기 전에 논의돼야 한다.

농업은 정부가 책임지고 보호하고 지켜야 하는 대표 산업이다. 농업의 위기는 식량의 위기이며 곧 국가안보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해를 입은 농민들이 믿고 의지할 곳이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은 현행 제도의 미흡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농민이 다시 농사지을 수 있는 힘과 의지를 심어 주고 정책당국을 신뢰할 수 있는 재해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의 농업재해 대책은 민간영역의 확대가 아닌 국가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수립돼야 한다. 민간의 영역으로 커져가면 갈수록 농업의 설 자리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농업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재해로부터 농업과 농민을 보호하기 위한 획기적인 사회안전망 마련을 고민해야 한다. 제도마련을 위해 풀어나가야 하는 과제 또한 정부와 농민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고민한다면 분명 그 해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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