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운동의 성과 ‘공공급식’, ‘도농상생’ 지우며 끝나나

  • 입력 2023.03.05 18:00
  • 기자명 정은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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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정 작가. 농촌사회학 연구자. '대한민국치킨展',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뿌리다 – 백남기 농민 투쟁 기록',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등을 썼다. 농촌과 먹거리, 자영업 문제를 주제로 일간지와 매체에 글을 쓰고 있으며 라디오와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서 농촌과 음식의 이야기를 전하는 일도 겸하고 있다.
정은정 작가. 농촌사회학 연구자. '대한민국치킨展',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뿌리다 – 백남기 농민 투쟁 기록',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등을 썼다. 농촌과 먹거리, 자영업 문제를 주제로 일간지와 매체에 글을 쓰고 있으며 라디오와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서 농촌과 음식의 이야기를 전하는 일도 겸하고 있다.

무엇을 전환하고 넘고 싶었던 것일까

한때 시민사회 운동 영역의 대주제는 ‘전환시대’였다. 전환시대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고민하자는 취지였다. 농민운동 부문에서의 ‘전환시대’는 투쟁을 넘어 대안을 만들어가자는 뜻이었다. 또 다른 유행으로는 ‘넘어’라는 동사가 붙는 형태였다. ‘이분법을 넘어’, ‘적대적 관계를 넘어’도 자주 썼다. 너는 너, 나는 나의 갈라섬을 극복하고 동지 관계를 회복하여 체제나 이념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의지 표현이었으리라.

전농 창립 30주년을 맞이해 ‘지금은 전환시대, 투쟁 아닌 대안 만드는 농민운동 해야’라는 제하로 좌담회 내용이 본지(2020년 12월 13일자)에 실려 있다. 전농의 농민운동가들은 투쟁동력이 약화된 원인에 대해 평가를 내렸다. 농민회가 경제투쟁, 정치투쟁을 선도적으로 전개해 왔고 농업 붕괴의 속도를 늦춘 성과도 있었지만, 기업 중심의 민영화와 대농 중심의 농업 규모화라는 신자유주의의 광풍은 가족농과 농촌공동체를 위기에 빠뜨렸지만 ‘농촌’을 챙기지 못했음을 아프게 고백하고 있다. 농산물 가격 투쟁의 상징인 ‘쌀 투쟁’에만 집착한다는 세평에는 쌀이 농촌의 삶을 지탱하는 기본작물이자 한국 농민 정체성의 정수인 쌀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복잡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농업 부문에 신자유주의는 ‘농산물 수입개방’이라는 경제적 압력이었지만 삶의 결도 바꾸어 놓았다는 점에서 더욱 고약하다. 생산자에 대한 기본적인 연대감마저 희미해지고 소비자는 또렷한 권리의식을 드러내며 ‘먹거리’가 아닌 ‘상품’으로 농산물을 대하는데 거리낌이 없어졌다. 근래 양곡관리법에 대한 논란은 ‘쌀’에 대한 시민들의 감정이 변했다는 점도 아프지만 인정해야 한다. 쌀에서 농업·농촌·농민이라는 맥락을 읽어낼 수 있는 시민들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고 인정에만 호소해서 될 일이 아니라고 말이다. 고맙게도(?) 도시 소비자들이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는 듯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해마다 발간하는 <농업·농촌 국민의식 조사> 2022년 보고서에서는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을 유지·보전하기 위한 추가 세금 부담 의향에 도시민 65.7%가 찬성했다. 설문 응답이 행동으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지만 일단 농촌·농업을 필수 공간이자 산업으로 인식한다는 점에서는 다행이다. 도시민과 농민들 모두 농업·농촌의 중요한 기능으로 ‘안정적 식량 공급’을 택했고, 미래의 중요한 기능으로 도시민은 ‘안정적 식량 공급’을, 농민들은 ‘환경보전’이라 답했다. 도시민과 농민들의 인식에는 그만큼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학교급식을 교두보 삼아 먹거리 의제를 행정과 시민의 삶의 중심으로 삼도록 끊임없이 도전했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결국 도농상생과 공공급식의 의미를 새기는 먹거리 교육엔 실패했다. 2021년 3월 서울 송파구 가락동 가락농수산물도매시장 내에 위치한 송파구 친환경 공공급식센터 작업장에서 한 직원이 전날 농촌에서 배송돼 온 친환경농산물을 어린이집마다 분류해 상자에 담고 있다. 한승호 기자
학교급식을 교두보 삼아 먹거리 의제를 행정과 시민의 삶의 중심으로 삼도록 끊임없이 도전했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결국 도농상생과 공공급식의 의미를 새기는 먹거리 교육엔 실패했다. 2021년 3월 서울 송파구 가락동 가락농수산물도매시장 내에 위치한 송파구 친환경 공공급식센터 작업장에서 한 직원이 전날 농촌에서 배송돼 온 친환경농산물을 어린이집마다 분류해 상자에 담고 있다. 한승호 기자

학교급식에서 공공급식으로의 전환시대, 성공과 좌절

농업의 본령은 먹거리 생산이지만 농업·농촌의 ‘공익성’ 측면은 설명이 복잡하다. 먹지 않으면 살 수 없으니 농민이 없다면 굶어 죽는다는 문장은 소비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중요한 동력이었다. 하나 먹거리 생산을 꼭 ‘농민’만 해야 하냐는 반격도 거세지고 있다. 식품기업이 저임금 이주노동자를 고용해 대신할 수 있고, 땅이 아닌 식물공장으로 대체할 수도 있지 않냐는 짐짓 과학적인 이 논리에도 힘이 실릴 것이다.

그동안 먹거리를 정치의 중요 의제로 세우려던 노력과 투쟁을 ‘먹거리 정치’로 본다면 지금은 먹거리 정치의 최대 위기다. 농민은 의식있는 소비자, 예를 들자면 생활협동조합이나 지역먹거리를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깨어있는 소비자’를 믿고 농사짓고, 소비자는 농민들을 믿고 먹으면서 서로를 엄호하던 호시절은 끝났거나 끝나간다.

‘먹거리’라는 공통분모로 저변도 확장하면서 운동적 성과로 만들어낸 부문은 ‘학교급식운동’이다. 초중고 급식 전면실시부터 직영급식 전환, 초중고 친환경 무상급식까지 거침없이 뻗어 나왔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학교급식을 통해 도농상생이라는 공통의 의제를 만들어온 덕분에 제도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학교급식은 기본적으로 지방자치의 영역으로 지역 중심의 운동이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이런 지역성(자치성) 때문에 2015년 경남도지사였던 홍준표는 무상급식을 엎은 적도 있고, 2011년 오세훈 서울시장도 무상급식을 철회하기 위해 시장직을 걸었다. 반동적 현상이었지만, 무상(보편)급식의 기조는 꺾을 수 없다는 것도 확인하는 계기였다.

시민들은 적어도 학생들 먹이는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미래세대에 대한 보호와 투자로 받아들였다. 전국의 600만여 명의 학생들이 학교급식을 먹었고 그 부모들은 얼추 1,000만 명, 학교급식은 납세자 복지가 강화되는 측면도 있었다. 학교급식운동의 성취에 힘입어 다양한 영역에서 ‘먹거리 보장’ 논의까지 확장될 수 있었다. 영유아와 먹거리 취약계층에게도 공공의 식사가 주어져야 한다는 외침이 ‘학교급식을 넘어 공공급식으로의 전환’이라는 의제로 모아졌다. 그 첫 번째 먹거리운동 전환시대의 마중물은 ‘서울시 도농상생 공공급식’이 부어주리라 기대했다.

고등학생 무상급식이 가장 늦게 이루어진 건 고등학교는 의무교육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어린이집과 유치원도 돌봄과 교육이 작동하지만 의무교육은 아니다. 2019년 농경연의 보고서 <공공급식 식재료 공급 실태와 개선과제>를 보면 어린이집·유치원이 제공하는 급식은 학부모 부담금 비중이 높을수록 친환경 식재료 또는 지역산 식재료 이용 비중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온다. 대체로 외국의 사례도 일치한다. 실제로 ‘생협 식재료’를 공급받아서 쓰는 영유아 보육시설의 경우 ‘비싼 어린이집’으로 여겨진다. 보육비가 비싼 사설 영어유치원(실제로는 학원)일 경우에 외려 친환경 식재료를 적극적으로 쓰기도 한다.

그래서 공공영역인 학교급식만큼은 부모의 지불 능력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성적이나 부모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위계화된 교육 현장에서 유일하게 평등의 원칙이 지켜지는 시간이 급식시간이다. 그래서 ‘서울시 도농상생 공공급식’은 도시와 농촌의 공존과 상생을 실천할 수도 있어서 귀했고, 영유아들의 밥에서 ‘돈의 맛’을 뺐던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짧았던 호시절도 끝나간다. 본지에 ‘서울시 도농상생 공공급식’의 일방적 사업종료 통보에 대한 보도가 자세히 다뤄져 있으니 일련의 과정을 적을 필요는 없겠다. 지금의 분위기로 이 사업은 접거나 학교급식에 포갤 확률이 높다. 간단한 원인으로는 정치권력이 바뀌어서다. 급식으로 한번 엎어졌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재선까지 성공한 마당에 오 시장이 자기만의 ‘먹거리 정치’를 펼칠 것은 뻔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급식은 좌파들의 부패사각지대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상황을 보수정권의 반동으로만 봐서도 안 된다. 서울시는 임산부 친환경 농산물 꾸러미 사업의 예산을 삭감했지만, 경기도는 이 사업을 그대로 실행하기로 했다. 권력의 주체가 달라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경기도의 임산부 꾸러미 사업에 농협경제지주도 뛰어들었다. 임산부에 대한 친환경 농산물 지원이 지속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권력주체가 어떤 세력을 배제하려는지를 보아야 한다. 그동안 대안먹거리운동 진영이 어렵사리 만들어놓은 임산부 꾸러미 사업에 농협이 숟가락을 얹을 정도로 이 공간이 탈정치화되었다는 것도 분명하다. 하여 ‘국힘당’이냐 ‘더민당’이냐는 판단은 속 편한 일이 될 뿐이다.

지난 2일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초월어린이집에서 어린이들이 ‘경기도 어린이 건강과일 공급사업’을 통해 제공된 친환경사과를 맛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경기도 광주의 한 어린이집에서 어린이들이 ‘경기도 어린이 건강과일 공급사업’을 통해 제공된 친환경사과를 맛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도농상생 공공급식의 위기와 먹거리운동에 던지는 차가운 질문

오세훈 시장은 공고한 체계로 잡힌 학교급식보다는 규모도 작고 ‘당사자’도 많지 않은 영유아들 대상의 도농상생급식이 만만했을 것이다. 그 징후는 한참 전부터 있었다. 문화일보 10월 22일자에 ‘배보다 배꼽 커진 도농상생 공공급식센터’ 라는 제목으로 나온 기사를 보면 이는 전임 박원순 시장의 선심성 사업으로 혈세를 마구 낭비한 사업일 뿐이다. 게다가 좌파 운동권의 소굴(?)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들의 밥줄 정도로 의미를 격하시켜 놓았다. 현실 정치는 복수의 말을 내뱉는 것이 예삿일이나 그 행간은 놓치지 말았어야 한다.

그동안 부침은 있었어도 아이들 먹이는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사회적 합의를 이루었다 마음을 놓은 탓도 있다. 결혼과 출산이 드문 일이 되면서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이 ‘내 자식’은커녕 ‘내 조카’도 아닌 시대변화를 얕잡아 보았다. 여기에 ‘내 자식’들은 졸업하고 학교급식의 대상자가 더이상 아니어서 한정판 관심도였을 뿐이다. 이는 실효성 있는 먹거리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오로지 먹이는 일에만 몰입했던 뼈아픈 결과다.

여기에 농민도 늙었고 먹거리운동가들도 늙어간다. 농업의 승계구도가 만들어지지 않아 애를 먹듯 먹거리운동도 후속세대 양성에 성공하지 못했다. 도농상생 공공급식은 먹거리운동의 후속세대를 양성할 기회이기도 했다. 젊은 세대인 영유아의 부모는 공공급식의 당사자였고 중요한 동료였다. 하지만 친환경, 국내산 식재료를 아이들에게 먹인다니 좋을 뿐 도농상생 사업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서울시의 피감대상이자 지원대상인 보육시설장들은 이 사업이 만족스러워도 행정과 각을 세워 함께 싸워줄 동인은 약하다. 공공급식센터 일원들의 ‘지쳤다’라는 말속에 이 싸움이 처음부터 고립상태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공급 계약 농민들에겐 강제성 없는 협약일 뿐이었다는 서울시의 건방진 태도에 ‘서울시는 각성하라!’ 외쳐볼 뿐이다. 급식도 시장에 맡기면 알아서 굴러갈 텐데 거추장스럽게 ‘도농상생’ 따위에 세금 낭비를 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수사에 많은 도시민들은 표를 던질 테고….

단체급식의 공통 목적은 영양공급과 건강으로 명시되어 있다. 그중 학교와 유치원, 어린이집만은 급식 제공 목적으로 ‘교육’이 명시되어 있다. 하나 성공적인 먹거리운동으로 자평해 왔던 학교급식에서조차 교육적 목적을 달성하려 노력했는지 물어야 한다. 학교급식을 교두보 삼아 먹거리 의제를 행정과 시민의 삶의 중심으로 삼도록 끊임없이 도전했어야 하지만 학교급식 정도가 종착점이 되고 만 것은 아닐까. 친환경 무상급식의 제도화 정도로 자족하고 말았던 것은 아닐까.

급식의 ‘교육적 목적’은 달성되면 좋지만 당장 급하지는 않아서 뒤로 미뤄뒀던 후과를 치르고 있지 않은지 서늘하게 물어본다. 우리는 과연 ‘먹거리로의 전환시대’를 맞이할 능력이 있었던가를 말이다.

공공급식의 축소는 결국 급식 식재료를 계약재배해 온 친환경 농민들의 피해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전북 장수군의 한 농민이 하우스에서 자라고 있는 시금치를 살펴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공공급식의 축소는 결국 급식 식재료를 계약재배해 온 친환경 농민들의 피해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전북 장수군의 한 농민이 하우스에서 자라고 있는 시금치를 살펴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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