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부터 시작될 사육농가 붕괴 … 어떻게 막을까

  • 입력 2023.01.05 20:56
  • 수정 2023.01.06 09:31
  • 기자명 한우준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사육두수 50두 미만의 농가들은 주로 적은 수의 ‘밑소’, 즉 송아지를 팔아 소득을 얻는 번식 농가, 그리고 이와 함께 비육도 병행하는 소규모 일관 사육 농가로 구성된다. 비록 전체 사육두수에서 이들 농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송아지 생산기반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한우 산업의 가장 중요한 축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한우 산업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가장 먼저 사라졌고, 이번 가격 파동으로 인해 또다시 대량으로 폐업할 처지에 내몰렸다.

새해 첫 우시장이 열린 지난 2일 강원 횡성군 횡성축협 가축경매시장을 찾은 농민들이 전광판을 통해 1차 경매 결과를 확인하고 있다. 한우 산업의 위기를 반영하듯 3차 경매까지 진행하고도 유찰된 경우가 많았다. 한승호 기자
새해 첫 우시장이 열린 지난 2일 강원 횡성군 횡성축협 가축경매시장을 찾은 농민들이 전광판을 통해 1차 경매 결과를 확인하고 있다. 한우 산업의 위기를 반영하듯 3차 경매까지 진행하고도 유찰된 경우가 많았다. 한승호 기자

“사육농가 7만 가구 선 깨질 것”

한우정책연구소는 지난해 말 낸 보고서에서 “이번 가격 파동기에 소규모 농가를 위한 충분한 대책이 없다면 2만 가구 이상이 폐업해, 전체 한우농가수가 현재의 약 9만 가구에서 6만 가구 후반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이 감소분의 대부분은 50두 미만의 소규모 농가들로 구성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거 2010년의 kg당 평균가격(1만6,036원)이 이듬해 1만2,782원으로 급락했다가 2015년 들어서야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 전체 농가의 약 53.8%가 감소했는데, 이때 50두 미만의 농가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구성비는 약 92% 수준이었다. 한우정책연구소는 농가 평균 사육두수가 당시 16.6두에서 현재 40두로 증가한 점 등을 고려하면, 그때보다 폐업의 비율은 줄어들 것이라고 보면서도 최소 30% 이상은 경영을 유지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들은 현재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번식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당연지사 송아지를 제때 팔아 제때 소득과 사료값을 충당하고, 지속적인 송아지 생산을 위해 암소 기반을 유지하는 데도 투자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수송아지 기준 25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는 암소의 사료값으로만 1년에 200만원 가량이 들어가는 상황에서 경영비를 충당할 수 있는 길이 없다.

그렇다고 송아지를 내지 않고 비육하자니 당장 버틸 힘도 없을뿐더러, 큰 소 역시 제값을 받을 길이 없는 상황에서 출혈을 감수하고 인내하려는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결국 가장 규모가 작은 농가들을 필두로 또다시 가임암소의 ‘줄도태’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횡성 가축시장에서 만난 김철수씨는 “우리 같은 농가 입장에서 지금 암소는 필요가 없는 존재”라며 “그나마 빚이 없어 아직 버틸 여력이 되는 농가들도 송아지를 사려고 하지 굳이 암소를 들일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실제 이날 시장에서도 암송아지들은 낮은 가격에라도 거래가 이뤄졌으나 10개월이 넘은 암소들은 11마리 중 5마리가 유찰됐다.

불황기가 정점에 달했던 지난 2012~2013년 2년간 약 21만 마리가 도태됐고, 그중 약 15만 마리가 가임암소였다. 사라진 암소들로 인해 송아지 생산기반이 쪼그라들면서 한우가격은 자연스레 제자리를 찾았지만, 그 대가로 사육농가 수는 절반으로 줄었고 자급률은 30%대로 곤두박질쳤다. 더욱이 지금은 할당관세 정책으로 인한 수입소고기 물량이 증가해 도태암소의 시장경쟁력이 더욱 낮아진 상황이기에, 이들의 홍수 출하가 10년 전보다 더 심각한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란 우려가 커진다.

그간 산업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이들의 소득을 보장할 선제적 안전장치에 대한 논의가 꾸준했지만, 결국 ‘작동 가능한’ 송아지생산안정제, 소규모 농가 중심의 직거래 유통망 활성화 등의 실질 대비책은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채 다시금 역대 최악의 위기를 맞고 말았다.

“소비자가 낮출 방법, 결국 농가 직거래뿐”

‘춘천농민한우’는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한우를 판매하기로 유명한 식육식당이다. 이곳을 운영하는 춘천농민한우유통영농조합법인은 전기환 대표를 비롯해 농가 27가구가 기르는 소를 직접 도축해 판매한다. 1년 도축 두수는 가장 많았을 때도 290두 수준으로, 각 가구는 대부분 소규모 농가들이다.

생축이 자체 육가공공장만 거쳐 바로 식탁에 오르는 만큼 유통단계에서 발생하는 마진이 매우 적다. 이런 환경에서 발생한 여유는 시장가격 변동으로부터 생산자를 지키는 데 쓰인다. 소를 구매하는 영농조합법인은 생산비를 고려해 주기적으로 기준 단가를 정하고, 여기에 도매시장 경락가와의 차액 중 50%를 구입 단가에 추가 반영하는 체계를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생산자는 소값이 많이 오른 경우 약간은 싸게 공급해야 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도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소규모 농가의 지속가능성을 지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값이 높을 때도 소비자 가격의 상승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조합이 자리를 잡으면서 수익을 출하장려금, 친환경 생산비 지원 등으로 환원하는 등의 추가 대비책도 풍부하게 갖췄다.

전 대표는 한우 소비자가격이 도매가격의 하락세를 따라가지 못하는 원인이 최근 쏟아지는 언론의 보도처럼 유통구조에 있는 것은 맞지만, 이를 마진에만 치중해 해결할 문제는 아니라는 의견을 냈다. 그는 “일반적으로 한우가 유통되는 구조를 살펴보면 농가와 소비자 사이에 도축장·경매장(중도매)·육가공·소매 등 적어도 3~4단계가 존재하는데 우리처럼 직접 도축·가공해서 파는 게 아닌 이상 여기서 더 줄일 수 있는 부분이 사실상 없다”라며 “반면 유통과정에 드는 비용은 한우가격과 무관히 물가 상승에 따라 계속 증가했다. 소값이 10년 전으로 돌아갔다고 해도 그때와 같은 가격으로 먹을 수 있을 것 같나”라고 반문했다.

전 대표는 “마지막 단계 중 하나인 식당만 봐도, 13년 전 우리가 식당을 처음 열었을 때 식당 노동자 임금이 160만원이었지만 지금은 노동시간을 훨씬 줄이고도 약 250만원 정도다. 그 밖에 다른 재료나 식자재 비용은 또 얼마나 오르고 있나. 직거래가 아니고서야, 식당이나 소매점이 한우 도매가격이 낮아졌다고 해서 그만큼 발맞춰 따라가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전 대표는 한우가격 하락세가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송아지생산안정제를 안착시키거나 직매 확산을 유도하기는커녕 무관세 수입량을 대규모로 늘려 시장을 교란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장 전체의 마진을 줄이려면 결국은 한우 직매밖에 없는데, 지금 수준의 직매 규모로 소비 촉진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겠나. (언론에서) 유통구조가 문제라고 얘기하고 싶으면, 직매 확산 정책에 예산을 반영하라고 요구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정부·농협, 대단위 수매·판촉으로 역할해야”

비슷한 부류의 문제의식은 생산자단체 안에서도 나왔다. 전국한우협회는 지난 3일 2023년 1차 이사회를 긴급 개최하고, 이사진을 중심으로 협회가 대응할 방안을 다각도로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정윤섭 전국한우협회 전북도지회장은 “진정성 있게 농민을 생각한다면 축산물값이 조금 비싸다고 해서 무관세로 외국에서 마구 들이는 이런 나라는 있을 수가 없다”라며 정부의 책임론을 강조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기존의 유통구조 속에서 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대형마트보다는, 소를 자체적으로 도축해 소비자와 거래하는 협동조합에 정부의 판촉 지원예산이 돌아가야 한다”고도 설파했다.

정 지회장은 또한 홍수 출하를 막기 위해 농가들이 먼저 자구 노력을 펼치는 동시에 정부 역시 벼랑 끝에 몰린 농가들이 내놓는 물량 위주로 ‘수매’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료값을 감당하지 못한 농가들이 제대로 비육도 못한 암소를 내놓고 있는데, 이렇게 가격이 낮은 저등급의 물량은 격리에 예산이 크게 들지 않는 만큼 정부가 책임지고 투자해야 한다는 얘기다.

최종효 대구경북도지회장은 축산농민이 이토록 어려운 상황에서 농협의 역할이 부재하다며, 생산현장과 비교적 가까운 농협과 하나로마트가 소고기를 원가에 가깝게 공급해 소비자가격을 낮추는 첨병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지회장은 “소값을 받는 판매대금 통장을 포함해 농축협의 모든 신용상품을 다른 은행으로 바꾸는 등 전국 9만 농가가 신용사업에 압력을 가해서라도 농협이 (파격적인) 공급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전국한우협회는 협회와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 선정 소매점인 전국 480여개소의 ‘한우인증판매점’을 기반 삼아 생산자가 직접 관리하는 유통망, 가칭 ‘한우유통플랫폼’을 만들어 농가생산비를 보장하겠다는 계획을 꾸준히 드러내고 있다. 김삼주 전국한우협회 회장은 “우리 생산자들 스스로 유통에 일정 부분, 최소 전체물량의 15% 정도는 관여할 수 있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라며 “지금 당장은 수급 조절을 통한 가격 안정이 목표가 될 수밖에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한우산업기본법과 자체 유통 플랫폼에 집중해야만 한다. 한우 산업의 안정을 위해 적극 동조를 부탁드린다”라고 당부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