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농업결산] 정부의 ‘농민 홀대’에 필사적으로 싸운 농민들의 일 년

  • 입력 2022.12.25 18:00
  • 수정 2022.12.25 18:18
  • 기자명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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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태형 기자]

사상 최대폭으로 떨어진 쌀값에 농정당국을 규탄하는 농민들의 아스팔트 농사는 올해 내내 서울과 지역을 오가며 이뤄졌다. 지난 9월 27일 전북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무장기포지에서 열린 ‘쌀값 폭락과 농민생존권 사수를 위한 논 갈아엎기 결의대회'에서 농민들이 추수를 앞둔 나락을 트랙터로 갈아엎고 있다. 한승호 기자
사상 최대폭으로 떨어진 쌀값에 농정당국을 규탄하는 농민들의 아스팔트 농사는 올해 내내 서울과 지역을 오가며 이뤄졌다. 지난 9월 27일 전북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무장기포지에서 열린 ‘쌀값 폭락과 농민생존권 사수를 위한 논 갈아엎기 결의대회'에서 농민들이 추수를 앞둔 나락을 트랙터로 갈아엎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해 12월 27일, 쌀 생산자단체가 당시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따른 쌀 시장격리 요건이 충족되고, 쌀값 하락에 대한 우려로 농민들과 관련 기관, 단체, 지방정부, 국회, 여야 대선후보들이 연이어 시장격리 시행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고, 이로 인해 쌀값이 떨어지고 있다는 게 고발 취지였다. 1년이 지난 지금, 우려는 현실이 됐다. ‘내년에도 농사짓기 위한’ 농민들의 필사적인 몸부림을 기록한다.

사상 최대폭으로 떨어진 쌀값

현재의 쌀값 폭락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2년 전으로 거슬러 가야 한다. 농업활동을 통해 식량 생산뿐만 아니라 환경보전과 농촌유지 등 공익을 창출하도록 농민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가 2020년 도입됐다. 바로 ‘공익직불제’다. 당시 농민들은 그 취지에 공감했다. 하지만 정부가 공익직불제를 도입하면서 ‘변동직불제’를 폐지한 것에 대해서는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변동직불제는 농가소득 안정을 위해 쌀 목표가격과 수확기 산지쌀값 간 차액의 85%를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로, 농민들에게는 유일한 쌀값 안정 장치였다.

정부는 작물 간의 형평성을 고려, 쌀 중심의 직불금제도를 개선한다며 변동직불제를 폐지하는 한편, 쌀 농가들의 우려를 의식해 쌀 수급안정장치를 마련했다. 「양곡관리법」시행령 개정안과 고시(양곡수급안정대책 수립·시행 등에 관한 규정) 제정안을 마련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수요량을 초과하는 생산량이 생산량의 3% 이상이거나 단경기 또는 수확기 가격이 평년보다 5% 이상 하락한 경우 등 일부 요건을 충족하면 정부가 쌀을 매입해 시장에서 격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당시 농식품부가 배포한 보도자료(2020.7.9)를 보면, ‘공익직불제 도입으로 변동직불제가 폐지된 상황에서 농민들이 안심하고 벼농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쌀 수급관리제도 도입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며 ‘변동직불제 폐지에 따른 농업인의 불안을 해소하고 기상·작황 등에 따른 쌀 수급 불안에 대비하기 위한 체계적인 수급안정장치를 마련’한다고 적혀 있다.

장관 고발부터 논 갈아엎기까지

농민들은 말 그대로 안심하고 벼농사에 전념할 수 있게 됐을까. 2021년산 산지쌀값이 지난해 10월 5일 5만6,803원(20kg 기준)을 기록한 이후 두 달 내리 하락세를 거듭하면서 시장격리 요건을 충족했지만, 농식품부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 결과 쌀값은 끝없는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농민들이 농식품부 장관을 고발한 배경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의장 하원오) 등 농민단체들은 공동성명을 내고 서울 여의도 국회와 용산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여러 차례 기자회견을 열면서 정부에 쌀 시장격리를 촉구했다.

정부는 쌀값이 계속 떨어지자 2022년 2월부터 3차례에 걸쳐 2021년산 쌀 37만톤을 사들여 시장에서 격리시켰다. 하지만, 쌀값 하락세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농민들은 정부의 시장격리 조치가 시기상 늦었고, 최저가 입찰 방식으로 쌀을 사들여 가격이 폭락했다고 주장했다.

하락세를 거듭하던 쌀값은 지난 9월 사상 최대폭으로 떨어졌다. 지난 9월 25일 기준 20kg 산지쌀값이 4만393원으로 전년(5만3,816원)보다 24.9%나 폭락한 것이다.

수확을 앞둔 농민들은 논을 갈아엎기에 이르렀다. ‘밥 한 공기 쌀값 300원’을 요구하며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나락을 쏟아내고, 지역에서는 나락을 쌓았다. 쌀값은 폭락했는데, 코로나19와 기후변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영향으로 인건비를 비롯한 면세유·비료·농자재값 등 농사를 짓는데 드는 생산비는 폭등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쌀값 폭락 대책으로 초과생산량에 대한 쌀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현행 양곡관리법에서는 쌀값이 떨어지는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하더라도 쌀을 의무적으로 격리하지 않아도 되는데, 정부가 이점을 이용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면 과잉생산 구조가 고착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다. 여러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필요한 시기에 격리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지난 9월 공공비축미 45만톤과 시장격리곡 45만톤(구곡 10만톤 포함)을 더해 모두 90만톤의 쌀을 수확기에 사들이겠다는 쌀 수확기 수급안정 대책을 발표했다.

그 결과 산지쌀값이 한 차례 올라 20kg 기준 4만6,000원 수준의 보합세에 머물러 있다. 농민단체의 연대체인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상임대표 양옥희)이 지난 21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산 공공비축미 가격(추정)’은 벼 40kg 기준 6만4,678원으로 전년(7만4,300원)보다 1만원 떨어진 가격에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농민들은 ‘안심하고 벼농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던 2년 전 농정 당국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고 성토한다.

정부와 여야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두고 대립하는 가운데, 농민들은 쌀값폭락과 생산비 폭등 ‘이중고’ 속에 생존을 위한 투쟁의 불씨를 이어가고 있다.

바우처 폐지에 맞선 충남 여성농민들

올 한 해 지역에서도 농민들의 많은 투쟁이 있었지만, 여성농업인 행복바우처 지원사업 폐지를 막기 위한 충남지역 여성농민들의 고군분투가 특히 돋보였다.

충남도는 최근 여성농업인에 연 20만원을 지원하는 ‘여성농업인 행복바우처 지원사업’을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충남도가 관련 사업 내년도 예산을 편성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사업을 폐지하는 수순을 밟고 있는 가운데, 여성농민들은 ‘여성농업인 행복바우처 폐지 저지 충남대책위’를 꾸려 대응에 나섰다.

충남 여성농업인 행복바우처 지원사업은 지난 2017년 처음 시행됐다. 문화적 여건이 열악한 농어촌 지역 여성농어업인의 복지 증진과 문화생활 기회 확대를 위해 영농에 종사하는 만 20세 이상 65세 미만의 여성농어업인을 대상으로 도입됐다. 지원금액은 1인당 연간 15만원(자부담 3만원)이었다.

충남도는 여성농어업인들의 높은 만족도를 고려해 사업을 확대해 왔다. 지난 2019년 지원금액을 20만원으로 높이고, 2020년에는 대상연령을 만 75세 미만으로 확대했다. 지난해부터는 자부담도 없앴다. 실제로 충남도가 바우처 혜택을 받은 여성농업인 1,351명을 대상으로 자체 조사한 결과, 86.6%(1,170명)가 만족 이상을 꼽았다.

김태흠 충남도지사는 현금성 지원 등 중복 예산을 줄이고 농업을 산업으로써 구조 개선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워 2023년도 바우처 지원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대신 여성농업인 역량 강화를 위해 △농작업 편이장비 지원 △농업경영 전문교육 확대 △선진농업 해외연수 지원 등에 4년간 156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집회와 기자회견에 참여한 여성농민들은 바우처 지원사업을 두고 여성농민의 지위와 역할을 인정해주는 것으로 느껴져 만족도가 높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지난해 10월 한 보고서에서 ‘여성농업인의 위상은 조력자나 주변인에 머물러 있는 것이 지역사회의 현실’이라고 꼬집은 바 있다.

충남도가 관련 예산을 편성하지 않으면서 여성농업인 행복바우처 사업은 사실상 폐지 수순에 들어갔지만, 여성농민들의 목소리는 시·도의회로 전해졌다. 김명숙 충남도의원은 지난 16일 5분 발언을 통해 충남 여성농민들의 의견과 전문가들의 연구·검토를 통해 세운 5개년 중기 계획을 의견 수렴 과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폐지하려고 한다고 지적하며 폐지 계획 철회와 함께 2023년도 1회 추경에 관련 예산을 편성할 것을 촉구했다. 충남 보령시의회는 지난 19일 추보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여성농업인 행복바우처 지속 시행 촉구’ 건의문을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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