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농업결산] 이성희에 의한, 이성희를 위한, 이성희의 농협

  • 입력 2022.12.25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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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올해 하반기 농업계를 뒤흔든 뉴스 중 하나로 농협중앙회장 연임제 논란을 안 꼽을 수 없다. 현직부터 소급 적용하겠다는 연임제 법안을 국회는 과연 이대로 두고 볼 것인가. 지난 10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부 및 소관기관에 대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이 한 의원의 질의에 답하며 밝게 웃고 있다. 한승호 기자
올해 하반기 농업계를 뒤흔든 뉴스 중 하나로 농협중앙회장 연임제 논란을 안 꼽을 수 없다. 현직부터 소급 적용하겠다는 연임제 법안을 국회는 과연 이대로 두고 볼 것인가. 지난 10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부 및 소관기관에 대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이 한 의원의 질의에 답하며 밝게 웃고 있다. 한승호 기자

2022년의 농협을 설명하는 말은 ‘중앙회장 연임제’ 일곱 글자면 충분하다. 연임제를 도입하기 위해 중앙회 본사는 물론 전국 지역본부와 지역농협까지 총동원한 조직적 공작이 이뤄졌고, 결국 세간의 온갖 비난과 의혹을 뚫고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법안이 통과되기에 이르렀다.

생산비 급등과 쌀값 폭락, 농산물시장 개방 국면에서 농민들의 삶이 벼랑끝으로 내몰렸지만 농협의 관심사는 오로지 ‘회장 연임’이었고, 디지털 혁신과 가공공장 통합, 사회공헌 활동 등 1년 내내 자잘한 사업 성과들을 강조했지만 실체가 분명한 성과 역시 ‘회장 연임’ 뿐이었다. 집권 2년 동안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은 자신의 연임을 위해 온 힘을 쏟아붓고 있으며 범 농협 조직은 충실히 이 ‘경영 기조’를 따르고 있다.


중앙회장 연임제, 여전히 의혹 덩어리

농협중앙회장 연임을 허용하자는 「농업협동조합법」개정안을 처음 발의한 건 지난해 12월 27일 윤재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었다. 이후 지난 1월 12일 김승남 더불어민주당 의원, 2월 24일 김선교 국민의힘 의원, 4월 7일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이 똑같은 내용의 법안을 속속 발의했다.

특별한 사회적 이슈가 없었음에도 비슷한 시기에 같은 법안이 네 건이나 중복발의됐다는 건 의원들에 대한 이해당사자의 로비가 이뤄졌다는 뜻이다. 또한, 현직 중앙회장 개인의 이권(화폐적 가치로만 수십억원)이 걸린 만큼 현직은 배제하는 게 합당함에도, 네 법안 모두 연임제를 현직부터 소급적용하겠다는 ‘무리수’를 뒀다. 법 개정을 통해 엄청난 이득을 보게 되는 인물이자 이를 위한 강력한 로비 능력을 갖춘 인물. 로비의 주인공은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본지는 지난 4월 25일 이 법안들의 수상쩍음을 최초보도했고(절체절명 농업위기, 딴 데 보는 이성희 회장) 이후 몇몇 매체들이 동조하기도 했으나, 농협중앙회는 민첩하게 ‘언론 관리’에 나서기 시작했다. 언론의 지적 빈도가 줄어든 데다 법안의 내용 자체가 상식을 벗어났던 탓에 농민단체들 역시 당시엔 굳이 대응을 하지 않았다.

여론의 무관심 속에 잠복해 있던 농협중앙회장 연인 법안은 지난달 초 국회에서 기습적으로 공론화되며 농업계 최대 현안으로 부상했다. 농해수위 법안소위가 시급한 농업분야 법안들을 제쳐두고 이 연임 법안을 심사 안건으로 상정한 것이다. 농해수위 법안소위 위원장은 바로 연임 법안을 발의한 김승남 의원이다.

농민단체와 농협 노조 등이 부랴부랴 규탄에 나섰지만 법안은 ‘비정상적인’ 탄력을 받은 뒤였다. 농협중앙회장과 이권이 얽힌 인물·단체들이 열렬히 법안을 지지하고 나섰고, 그 부실한 논리와 증폭되는 비난의 목소리 속에서도 결국 법안소위는 지난 8일 법안을 통과시켰다. 몇몇 민주당 의원들의 거센 반대로 당내 내분까지 일어났음에도 기어이 통과가 됐으니, 여·야 의원들을 각 2명씩 포섭해 법안을 발의시킨 농협중앙회의 전략이 탁월했다 할 수 있다.

이 법안이 갖는 문제는 단지 개인의 탐욕이 엿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과거 연임제 시절 존재했던 농협중앙회장 비리에 대해 대책이 전무하며, 현직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중앙회장 선거판 상황도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자칫 농협의 역사를 크게 퇴보시킬 여지가 있는 법안이다. 게다가 이대로 법이 개정된다면 개혁의 대상인 농협중앙회가 거꾸로 농협법을 이끌어가는 모양새가 만들어지며, 맹렬한 법안 반대 여론이 너무 쉽게 배제된 만큼 국회 의정의 공정성 역시 신뢰를 잃을 수 있다.

법안은 법안소위라는 큰 산을 넘었지만, 아직 국회 농해수위 전체회의와 국회 법사위, 국회 본회의 의결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농민단체·노조·시민사회는 여전히 법안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연일 성명을 내고 국회를 압박하는 중이다.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의 ‘양심’에 희망을 걸어 보겠다는 입장이다.


쌀값이 너무 비싸다는 농협중앙회장

필사적으로 연임을 갈구하고 있는 이성희 회장은 과연 본인이 생각하는 만큼 농민조합원들에게 필요한 존재일까. ‘이성희 농협’이 그간 본연의 역할보다 회장 연임제에 역량을 쏟았음은 앞서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이와 별개로, 이 회장은 올해 이런저런 언행을 통해 자신이 농민조합원들과 심각하게 동떨어져 있음을 노출하기도 했다.

올해 농민들을 괴롭힌 세 가지 악재는 쌀값 폭락, 농자재값 폭등, 시장개방(CPTPP 가입 추진)이다. 먼저 시장개방 이슈를 보면, 농민들이 머리띠를 두르고 CPTPP 반대를 외치던 시기, 이 회장은 정부의 CPTPP 가입 추진을 아무 저항없이 받아들여버렸다. CPTPP 가입 자체를 기정사실화한 채 ‘가입 이후의 대책’을 정부에 당부한 정도가 이 회장이 한 역할의 전부였다. 시장개방 이슈 때마다 농민들과 머리띠를 함께 두르고 본사 곳곳에 정부 규탄 구호를 내거는 일본 농협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농자재값 폭등과 관련해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농식품부는 농자재 폭등을 전체 물가 상승과 결부시켜 대책의 방향을 ‘농가 경영안정’이 아닌 ‘소비자 물가안정’으로 설정했다. 농업 주무부처로서 자기 역할을 망각한 셈인데, 농민들의 협동조합인 농협마저 이 정책기조에 ‘충실히’ 동참했다. 지난 6월 이 회장이 직접 선포한 ‘국민과 함께하는 따뜻한 동행’은 절체절명의 농업 위기에서 농민들보다 소비자들을 위한 물가안정 사업을 우선적으로 내세우면서 농협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흐리게 만들었다.

쌀값 대응은 그 중에서도 백미라 할 만하다. 2021년산 쌀이 역대 최대 낙차로 폭락해 농민은 물론 전국 조합장들이 상경집회를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지만 농협중앙회장의 얼굴이나 목소리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농민에게나 농협에게나 초비상에 해당하는 사태임에도 이 회장은 굳게 침묵을 지켰다.

침묵의 의미는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비로소 드러났다. 이 회장은 쌀값 폭락과 농협 손실의 원인을 묻는 의원의 질의에 “지난해 수매를 시작할 때 RPC들을 만나 ‘그렇게 고가로 매입하면 어떡하나. 당신들 잘못하는 거다’라고 얘기했다. 그때 너무 고가로 매입했기 때문에 손실이 커졌다”라고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폭락 전 수매가조차 농민들에겐 부족한 수준이었지만, 이 회장은 이것이 너무 과한 수준이라 보고 있는 것이다. 중앙회장 선거 유권자가 조합장이 아닌 농민조합원이었다면, 연임은 이미 물 건너갔다고 볼 법한 발언이었다.


농협에도 맞아떨어지는 ‘과이불개(過而不改)’

중앙회장이 연임에 매진하는 동안 농민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덧붙여 농협 조직의 정비 역시 건강하게 이뤄지지 못했다. 현 시점에서 손대야 할 중요한 과업을 놓치는가 하면, 명백히 드러난 조직의 허물조차 깨끗하게 마무리된 일이 드물다.

올해는 농협중앙회가 신용·경제사업을 분리해 농협금융지주·농협경제지주를 발족한 지 10년이 되는 해였다. 신경분리 10년의 성과를 진지하게 평가해봐야 할 시점이었지만 아쉽게도 논의는 국정감사에서의 단편적 지적 등 산발적인 수준에서 머물렀다.

가장 심도 있는 토론을 진행한 건 개혁적 성향의 조합장 모임 ‘농협조합장 정명회’였다. 정명회는 세 차례의 기획포럼을 통해 중앙회 경제사업 부진 및 지역농협과의 사업경합, 신용수익 분배 미흡, 비민주적 지배구조 등 지난 10년간 지주회사 체제가 심화시킨 중요한 문제들을 지적하고 나름의 대안을 고민했다.

하지만 농협중앙회에 의미 있는 자기성찰이나 목표전환이 이뤄지진 않았다. 중앙회 스스로의 평가·반성은 고사하고, 그나마 의식 있는 조합장들이 모인 정명회의 회의실 대관 요청마저 거절할 정도로 반성이나 개혁에 방어적인 모습을 보였다.

허물을 고치지 않고 숨기려는 태도는 농협의 오랜 병폐다. 지난 4월 본지가 지역농협 하나로마트 수입농산물 판매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도했지만(정신줄 놓은 농협 … 하나로마트 수입농산물 판매 활개) 기사에서 실명 공개한 그 농협들에서조차 여전히 수입농산물이 활개를 치고 있다. 지역농협은 물론, 그들을 관리·통제할 역량이 충분한 농협중앙회도 논란을 얼렁뚱땅 넘어가겠다는 심산이다.

지역농협 임원들의 비리와 전횡, 성추행 등 사건사고들도 꼬리를 물었지만 중앙회는 종전처럼 계도에 소극적 모습으로 임했고 중앙회 감사가 이뤄진다 한들 ‘제 식구 봐주기’ 논란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사건을 축소·은폐하는 농협 사건사고 공시문서 역시 지적이 이뤄진 이후에도 전혀 개선이 없는 상태다.

상반기엔 지역농협의 수십억원대 횡령이 연쇄적으로 발생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상반기 농협의 크고 작은 횡령을 합치면 확인된 것만 일주일에 한 건 꼴로, 금융권 전체를 통틀어서도 단연 그 심각성이 돋보였다. 이에 대해선 국정감사에서 집중적인 지적이 이뤄졌고 농협중앙회도 단단히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다짐했으나, 심적·물적으로 불편을 겪은 고객들에게 아직 조치사항은 전달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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