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연결망’ 만들고자 분투하는 친환경농업 실천주체들

  • 입력 2022.12.04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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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달 28일 경북 상주시 서울농장에서 열린 현장 정책토론회 ‘친환경농업의 기후위기 대응’에 참석한 농민·연구자·활동가들.
지난달 28일 경북 상주시 서울농장에서 열린 현장 정책토론회 ‘친환경농업의 기후위기 대응’에 참석한 농민·연구자·활동가들.

땅 위에서의 친환경농업 실천을 위해 각지에서 노력하는 주체들이 서로 간의 연결망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경북 상주시 서울농장엔 친환경농업 실천 주체들이 모였다. 지난해 대산농촌재단 농업실용연구과제 중 하나인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지역 농민공동체 중심의 온실가스 감축 농업 및 조사연구’에 참여했던 농민·연구자 합작 농업실용연구팀이 주최한 현장 정책토론회 ‘친환경농업의 기후위기 대응’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저탄소 농정’, 농민들이 매긴 점수는?

농업실용연구팀에 참여했던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은 지난해 조사연구 결과 및 시사점을 발표했다. 최근 정부는 ‘농업농촌 자발적 온실가스 감축사업’의 일환으로 농업기술실용화재단에서 작성한 ‘저탄소 농업기술 목록’을 내밀고 있는데, 농업실용연구팀은 상주 봉강공동체 7개 농가 등 10개 친환경농가를 대상으로 각 방안의 감축효과 및 적용가능성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조사 결과 녹비작물 이용(20점 만점 기준 감축효과·적용가능성 모두 20점), 부산물 비료 사용(감축효과 16점, 적용가능성 17점), 농경지 보존 경운(감축효과 19점, 적용가능성 12점)처럼 상대적으로 효과와 실현 가능성 모두 높은 점수를 얻은 방안도 있었지만, 미활용 에너지(온배수) 이용(감축효과 15점, 적용가능성 4점), 다겹 보온커튼(감축효과 12점, 적용가능성 6점), 재생에너지 전력 자가생산(감축효과 17점, 적용가능성 9점)처럼 효과는 좋으나 시설비 부담 등의 이유로 농민으로선 적용이 어려운 방안이 적지 않았다.

효과 측면에서나 실천 가능성 모두 낮은 점수를 받은 방안들도 있었다. 농작물 재배 시의 LED 조명 사용(감축효과 6점, 적용가능성 4점)은 친환경농가로선 사용하지 않는 방안이며, 지열 히트펌프 설치(감축효과 9점, 적용가능성 5점), 목재펠릿 보일러 설치(감축효과 7점, 적용가능성 6점), 스마트팜 설치(감축효과 3점, 적용가능성 2점) 등은 설치비용은 많이 드는데 딱히 효과가 크지도 않다는 평을 받았으며, 땅을 기반으로 농사짓는 소농으로선 비현실적인 방안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 위원은 현장 농민들이 친환경농업 실천 확대를 위해 필요한 정책으로 △농민기본소득 등 저탄소농사를 위한 소득기반 제공 △친환경농업직불금 제도에 저탄소농법 조건을 구체적으로 포함 △벼농사 메탄 저감 방안 연구 및 대안 보급 등을 제안했다고 언급하며 “탄소 저감 관점에서 정책을 추진한다면 휴경 등 다양한 실천방안을 보장해야 하건만, 지금은 휴경하면 친환경농산물인증이 취소되는 점, 여전히 농업기술센터가 생산량을 늘릴 목적의 교육만 진행하는 점, 저탄소 인증 또는 친환경농업 관련 정보가 현장 농민에게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 점에 대한 지적도 제기됐다”고 밝혔다.

김 위원은 이상과 같은 현장 농민들의 입장을 반영한 ‘친환경농업 공동체의 온실가스 감축 방법론 매뉴얼’ 구성안을 발표했다. 각 지역의 현황 및 기후변화 체감 수준, 온실가스 배출량과 감축 잠재력 등을 기반으로, 해당 매뉴얼에 지역 친환경농민들이 실천할 수 있는 대안을 담자는 게 김 위원의 설명이다.

생태농업 실천, 인권으로 보장돼야

연이어 ‘인권으로 살펴보는 기후위기와 농업농촌’이란 주제로 발표한 진주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위원은 “유기농업은 일반농업보다 노동력이 더 많이 투여된다. 노동력이 부족한 상황에선 경작지 면적도 줄여야 하고, 자연히 유기농지 면적도 줄게 된다. 그럼에도 왜 정부는 대규모 농가 또는 스마트팜 분야에 대한 지원만 강화하고 유기농민 지원은 소홀한가. 왜 땅에서 농사짓는 농민을 위한 정보는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가. 이는 차별이라고 할 수 있다”며 “농민에겐 모든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 아무 설명도, 정보도 제공하지 않고 ‘공청회 참가하세요’라고 통보하는 건 절차적 권리 보장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진 연구위원은 제도적으로 생태농업 실천주체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해외사례를 언급했다. 멕시코의 「지속가능한 농업발전법」은 중앙·지방정부 차원에서 토양 보호 및 물의 효율적 관리, 자원 재활용 등의 노력을 기울이는 농민에게 우선적으로 재정을 지원하도록 규정한다. 에콰도르의 「먹거리주권기본법」 또한 생태농업을 증진시키기 위해 국가가 농민에게 교육훈련 및 재정을 제공하도록 규정하며, 생태농업에 참여하는 농민의 공공먹거리 조달체계 우선 참여권도 보장한다.

필리핀의 「토착민권리법」은 개발사업·토지수용 과정에서 토착민의 참여권(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사전에 동의를 구할 국가의 의무)을 보장해 기후변화 적응 과정에서 취약한 토착민과 농어민공동체의 권리를 명시한 제도이다.

진 연구위원은 이상의 사례를 들며 세계적으로 △생태농사 짓는 농민 △소농 △전통적 방식의 농사를 고수하는 농민 △문화유산을 관리하며 농사짓는 농민 등에 대해 ‘인권 보장’의 관점에서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농민·도시민 함께 ‘기후소송’ 나서야”

진 연구위원이 거론한 나라들과 비교해 볼 때, 한국 정부가 내미는 기술 중심주의적 ‘대안농정’은 현장 친환경농민의 요구와 동떨어진 상태다. 국내의 친환경농민들은 땅에서 잘 농사짓기 위한 정보도 찾기 어렵고, 공감대를 형성할 사람을 만나기도 어렵다. 그래서 농민들은 멀리 떨어진 공간의 ‘동지’들을 만나고자 곳곳을 누비며, 더 많은 동지들과의 연결망을 만들고자 분투한다.

인천 계양구 ‘분해정원’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화시켜 농사짓는 이아롬 씨는 여성 소농을 전문적으로 취재하는 프리랜서 기자이기도 하다. 그는 “땅을 파도파도 쓰레기만 나오던 땅에서 농사를 시작했는데, 30평 밭에서 마대자루 50포대가 꽉 찰 정도의 쓰레기를 주웠다”고 말하며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어떻게든 땅을 살리기 위한 농사를 짓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씨는 “최근 전국에서 농사짓는 20명의 농민을 만나 기후위기 관련 인터뷰를 했는데, 모두 ‘지난해보다 작물 수확량이 30% 가량 줄었다’고 답했다. 청년농민들은 기후위기에 잘 대응할 수 있을지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한 뒤 “더 절망스러운 점은 주변에 이런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없다는 점이다. 청년농민은 친환경농업 영역에서도 규모가 작고 대안적 농사를 짓기에 그 안에서도 이중삼중으로 더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다들 네트워크(연결망)가 없다는 이야기를 공통적으로 했다”고 증언했다. 따라서 기후위기 극복 대안을 고민하는 청년의 조직화가 절실하다는 게 이씨의 생각이었다.

대안을 고민하는 농민은 다른 곳의 ‘동지’를 만나 자신감을 얻는다. 황재순 상주시여성농민회 외서면지회장은 지난 6월 상주 여성농민들과 함께 전남 곡성군을 방문했다. 곡성군농민회(회장 김현지)의 무경운 논농사 실험 사례를 접하기 위해서였다. 황 지회장은 “현장에서 접해보니 무경운 농법은 생각보단 어렵지 않은 듯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며 “내년부터 작은 논에서라도 실험적으로 무경운 농법을 시도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이날 사회를 본 김정열 비아캄페시나 동남동아시아 국제조정위원은 “기후위기 상황에서 농민이 겪는 피해를 조사해야 하고, 기술 중심주의적인 ‘잘못된 해결책’ 대신 현장 농민의 고민과 맞닿은 정책을 세워야 하건만, 지금 정부는 그러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기후소송’을 통해 농민·도시민이 힘을 합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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