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위에서 대안농업 실천하는 농민들, 그들을 외면하는 농정

  • 입력 2022.02.13 18:00
  • 수정 2022.02.13 20:18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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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기후위기 속에서 신념을 갖고 대안농업 실천을 위해 노력하는 농민들이 있다. 그러나 농정당국은 농업분야의 ‘탄소감축 여부’에 과도하게 매몰돼, 정작 땅 위에서 대안농업을 실천하는 농민들을 외면한다. 현장 농민들이 생각하는 대안농업과 농정당국이 생각하는 대안농업의 간극은 얼마나 클까.
지난해 무경운 농법으로 쌀을 재배한 뒤 볏짚을 남겨 놓은 전남 곡성군 옥과면의 한 논에서 지난 8일 김현지 곡성군농민회장(오른쪽)과 김현인(가운데), 조해석(왼쪽)씨가 논과 밭에서의 무경운 농사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현인씨는 무경운 농법을 통해 지난해 쌀 생산량이 소폭 늘었다고 밝혔다. 한승호 기자
지난해 무경운 농법으로 쌀을 재배한 뒤 볏짚을 남겨 놓은 전남 곡성군 옥과면의 한 논에서 지난 8일 김현지 곡성군농민회장(오른쪽)과 김현인(가운데), 조해석(왼쪽)씨가 논과 밭에서의 무경운 농사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현인씨는 무경운 농법을 통해 지난해 쌀 생산량이 소폭 늘었다고 밝혔다. 한승호 기자

답답해서 우리가 연구한다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의 언니네텃밭 상주봉강공동체 농민 김정열 씨는 지난해 3월 대산농촌재단에 연구계획서를 냈다. 연구 주제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지역 농민공동체 중심의 온실가스 감축 농업 실험 및 조사연구’였다. 김씨의 연구 주제는 대산농촌재단이 주관하는 ‘농업실용연구과제’ 중 하나로 선정됐다.

농사 및 각종 국제 농민연대 활동으로 가뜩이나 바쁜 김씨가 연구까지 시작한 계기는 무엇일까. 김씨는 이렇게 말했다.

“생태농업이야말로 기후위기 상황에서 소농이 지구를 살릴 수 있는 농업이라 여기기에, 오랫동안 상주에서 지역농민들과 농생태학 농법을 중심으로 한 생태농업을 실천해 왔다. 우리나라 농정당국은 여전히 ‘녹색혁명’ 중심의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을 통한 증산 기조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생태농업이 일반농업에 비해 얼마나 탄소를 감축하거나 땅속에 저장하는지를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국내에선 이에 관한 연구가 전무했기에 인용할 만한 자료도 없어 답답했다.”

생태농업에 대한 농정당국의 전반적 무관심 속에서 ‘답답해서 우리가 연구한다’는 심정으로 김씨는 연구계획서를 제출한 것이다. 김씨는 “전태일 열사가 노동문제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대학생 친구’를 갈망했듯, 농민들은 대안농업 실천방안을 논의할 수 있는 ‘연구자 친구’를 갈망해 왔다”고 밝혔다. 다행히 서울에서 온 연구자들이 지난해 주기적으로 상주를 방문하며 김씨의 연구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연구자들은 외서면의 친환경농민들을 가가호호 방문해 각 농가들의 생산비 및 농자재 투입량을 조사했다. 일반농업에 비해 농자재를 덜 투입한 친환경농업이 얼마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지 그 수치를 입증하려는 목적이었다. 조사 결과, 대조군인 ‘국가평균 온실가스 배출량’ 자료에서 비료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1,000㎡당 199kgCO₂인 반면, 실험군인 상주 유기농가 7군데의 벼 재배 시 비료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1,000㎡당 110kgCO₂로 일반농업 대비 55.3% 수준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19일 서울 종로구 레드북스에서 진행된 연구과제 관련 후속 워크숍에서 연구자들은 “상주 유기농가의 벼 재배 시 투입된 유기질비료의 질소량은 9.9kgN으로 적정시비량에 부합한다”며 “유기농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관행농(일반농업)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은 재배 전(前) 단계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낮은 데 따른 것으로, 이는 비료의 사용과정 뿐 아니라 생산과정에서의 온실가스 배출량 또한 엄격히 관측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밝혔다.

비록 정밀한 결과 도출을 위한 농가 표본 추가확보 등의 숙제는 남아있지만, 농민-연구자가 합심해 ‘온실가스 감축 농업’을 위한 연구를 진행한 것은 그 의미가 크다. 그러나 김정열 씨는 여전히 아쉬움이 적지 않다.

“탄소중립과 관련해, 농정당국에선 ‘얼마나 탄소가 줄어드는가’에 대한 수치가 정확히 나오는 통계를 원하는 경향이 크다. 그러다 보니 이번 연구에서도 ‘농자재 투입량 감축여부’에 초점을 맞춰야 할 상황이었고, 농생태학적 농법이나 생물다양성 농법 등 공익적 기능이 크지만 당장 탄소감축량이 얼마나 되는지 통계를 산출하긴 어려운 농법에 대해선 연구하지 못해 아쉽다.”

‘탄소근본주의’에 갇힌 농정

홍천군여성농민회 회원들과 도시 소비자들이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 강원도 홍천군 남면의 토종씨앗 채종포에서 토종씨앗을 심고 있다. 한승호 기자
홍천군여성농민회 회원들과 도시 소비자들이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 강원도 홍천군 남면의 토종씨앗 채종포에서 토종씨앗을 심고 있다. 한승호 기자

최근 농정당국은 철저히 ‘모든 분야에서의 탄소감축’이란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통령직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에서 지난해 10월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도, 이를 기반으로 지난해 12월 나온 농림축산식품부의 <2050 농식품 탄소중립 추진전략(추진전략)>에서도 이런 기조가 엿보인다.

추진전략에선 탄소저감을 표방하며 △논물 관리 △화학비료 저감 △토양 탄소저장 강화 △저탄소 농축산기술 개발 및 보급·투자 △친환경농업 확대 등을 실천방안으로 내세운다. 토양 탄소저장의 주된 수단으로는 토양개량제의 일종인 ‘바이오차(Bio char)’가 거론되는데, 바이오차는 토양에 탄소를 고정시키는 탄화물질(사실상 숯)이다.

그러나 바이오차는 아직 국내에서 효용성이 구체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농식품부는 바이오차를 토양 탄소저장 수단으로 쓰자고 한 근거를 2006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 ‘가이드라인’의 2019년 개정판 자료에서 찾았다. IPCC의 근거자료는 대부분 서구권의 전문가들에 의해 만들어져 왔던 만큼, IPCC의 근거가 100% 우리나라에 통용된다고 장담할 순 없다.

농식품부부터가 추진전략에서 “(바이오차의) 기존 토양개량제(규산질·석회질 비료) 대비 효과, 가격경쟁력, 안정적 공급 가능성 등에 대한 선행연구가 필요하다”고 언급하는 상황이라, 현장 농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용하지 않은 채 추진전략을 짰다고 밖엔 볼 수 없다.

갑작스레 ‘논물 관리 방식 변화’를 이야기하며 현장 농민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상황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금창영 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논농사는 지구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농민들은, 대안으로서 경축순환농업을 이야기하므로 퇴비를 넣었고, 볏짚을 환원하는 것이 순환의 원리에 맞다고 하니 그렇게 했다. 논물을 가두는 게 홍수예방과 생물다양성 증진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니 그렇게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논물 때문에 메탄가스가 늘어난다고 하면 어찌해야 하나? 정부는 탄소근본주의에 치우쳐 농업분야의 다른 모든 공익적 기능을 못 보는 것은 아닌지, 농민들이 현장에서 어떻게 농사짓는지도 못 보는 것은 아닌지 답답하다.”

농민은 ‘땅’을 이야기하는데 농정당국은 ‘설비’를 이야기한다

농정당국의 탄소저감 관련 관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는 정책이 바로 ‘저탄소 농축산물 인증제(저탄소 인증제)’다.

저탄소 인증제는 농촌진흥청 산하 농업기술실용화재단이 관리하는 제도다. 친환경인증 농민 또는 우수농산물관리인증(GAP) 농민 중 “나는 농산물 생산과정에서 이만큼 탄소를 감축했다”는 걸 서류로 ‘증명’할 수 있는 농민을 대상으로 한 인증제다.

즉, 생산한 농산물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각 품목별 평균 온실가스 배출량보다 0.1kgCO₂라도 많으면 아무리 탄소감축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 농민이라도 인증을 못 받는다. 과정이 아무리 좋아도 결과가 기준에 미달되면 안 되는 셈이다. 저탄소 인증을 받은 농가는 1톤의 탄소감축을 이룰 시 1만원을 지급받는다.

저탄소 인증을 받을 수 있는 기술이 대부분 시설재배 농가를 위한 기술이라는 것도 한계점이다. 저탄소 인증기술 중 △다겹보온커튼 및 보온터널 자동개폐장치 △축열 물주머니 이용 보온장치 △수막재배 체계 △농업용 열 회수형 환기장치 △온풍난방기 배기열 회수장치 △목재펠릿 난방장치 △지열 히트펌프 체계 △폐열 재이용 난방체계 △일사량 감응 전자동 변온관리 체계 △순환식 수경재배(폐양액 재활용체계) 등이 이에 해당되는데, 이 기술들은 농민 입장에선 상당한 비용이 드는 기술이다.

예컨대 농식품부·농진청·실용화재단이 2019년 발간한 <저탄소 농업기술 편람>에 따르면, 수막시설 설치비용의 경우 비순환식 수막시설은 2,000㎡(605평)당 350만원, 순환식 수막시설은 2,000㎡당 1,000만원이 들어가는 것으로 나왔다. 농업용 열 회수형 환기장치는 설치에만 1,000만원이 들고, 감가상각비·수리비·이자 등 각종 비용을 포함하면 10년간 농민은 매년 환기장치 유지를 위해 178만7,082원의 비용을 들여야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온풍난방기 배기열 회수장치도 기계 설치에만 250만원의 비용이 든다.

이상과 같은 설비가 대부분 고비용인 걸 정부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정부의 대책은 보조금 지원 아니면 융자다. 순환식 수경재배 시설의 경우 100% 국고융자로 자금이 융통되며, 수막시설·목재펠릿 난방장치는 국고(보조금 20%, 융자 30%), 지방비 30%, 자부담 20%이며 융자금리는 3%(3년 거치 7년 분할상환), 폐열 재이용 난방·지열 히트펌프 체계는 국고(보조금 60%, 융자 10%), 지방비 20%, 자부담 10%다.

저탄소 인증제와 관련해 금창영 대표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기후위기 상황에서 과거의 보조금 중심 농정, 즉 막대한 예산을 낭비하면서 농자재업체들의 이익을 보태주고 정작 농민의 지속가능성엔 도움이 안 되는 정책은 중단해야 한다고 많은 농민들이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또 보조금 중심 농정을 추진한다. 과거엔 유기질비료 구입 시 보조금을 줬다면, 이젠 바이오차에, 시설재배에 필요한 저탄소 농자재에 보조금을 주려 한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 농정의 기본 틀은 과거와 달라지지 않았다. 이러한 탄소근본주의 하에선 농민이 원하는 대안농업의 실현은 어렵지 않을까.”

‘농지’에서의 대안농업 실천 노력

정작 이러한 상황에서 ‘농지’를 기반으로 하는 대안농업 실천노력은 농정당국으로부터 사실상 소외된 채, 철저히 농민들의 주체적 노력으로 이뤄지고 있다.

전남 곡성군에선 곡성군농민회(회장 김현지) 회원들의 노력으로 2020년부터 ‘무경운 벼농사’ 현장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경운을 통한 벼농사가 토양의 건강성도 훼손하고 미생물도 해치는 등의 악영향이 크다는 판단하에, 김현인 씨를 비롯한 농민회원들은 겨울풀을 자라게 놔둔 뒤 봄에 경운하지 않은 채 벼를 심었다. 곡성 농민들은 전국 최초로 농민회 산하의 ‘탄소정의농사위원회’ 결성을 준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과거 전남농업기술원에서 무경운 농법에 대해 연구하다가 퇴직한 양승구 박사도 결합해, 무경운 농법을 통한 생산량 확보 관련 연구를 함께 했다. 김현인 씨는 “일반적으로 경운 논에서 300평당 480~500kg의 벼가 생산되는데, 지난해 우리는 300평의 무경운 논에서 현미 525kg을 생산해 냈다”고 지난해 연구성과를 밝혔다.

벼 이외의 작물에 대한 무경운 농법 실험도 진행 중이다. 곡성 농민 조해석 씨는 “고추농사 과정의 무경운 농법 실험 차 미강(쌀겨)으로 고추밭을 덮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래도 지난해 기존 대비 4분의 3 가량 잡초 발생량을 줄였다. 나머지 잡초 4분의 1은 나처럼 300평 가량의 고추농사를 짓는 농민 입장에선 관리가 가능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김현지 곡성군농민회장 또한 “800평 토란밭 중 3분의 1 정도만 무경운으로 재배하다가 지난해부터 전체 밭을 무경운화했다. 점차 억센 풀이 줄어듦에 따라 예전보다 풀 관리에 어려움을 덜 겪는다”고 말했다.

‘소농들의 연결망’을 고대하며

저탄소 농업기술 인증 대상 기술 중에도 무경운 농법이 있다. 그러나 앞서 거론한 시설재배 관련 설비에 막대한 보조금이 지원되는 것과 달리, 노지를 기반으로 하는 무경운 농법에 대해선 별도의 지원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참다못한 곡성 농민들은 무경운 벼농사 확산을 위해 이앙기까지 자체 개발하고자 한다. 김현인 씨가 내민 설계도에 따르면, 이앙기 타공절개침의 끝부분(모를 심기 위한 구멍을 내는 부분)을 원뿔형으로 만들어 모 심을 공간에만 구멍을 내는 것으로 돼 있다. 특허 출원을 낸 상태며, 이 이앙기의 개발을 위해선 약 6,000만원이 필요하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이처럼 농지를 살리려 노력 중인 현장 농민들을 위한 정책이 절실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제주도 농민 출신인 김자경 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는 “현장에서 대안농업을 실천하는 농민들과, 탄소중립을 언급하며 저탄소 농업기술 확대를 추진하는 농정당국 간의 간극이 너무나 크다”며 “현 저탄소 농업기술 인증제는 지나치게 시설재배 농가 위주의 기술로 구성돼 있는 데다, 기존 친환경인증제와 마찬가지로 농민이 ‘탄소감축 여부’를 처음부터 끝까지 증명해야 하는 구조다”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와 함께 “무경운 농법 등 노지 기반 대안농업 기술은 대농이 아닌 소농이 실현 가능한 기술”이라며 “무경운 농법 실험 과정에서의 생산량 축소, 소득 감소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최근 국가·지자체에서 추진 중인 로컬푸드·푸드플랜 정책과 대안농업 기술 확산정책을 연계시켜, 대안적인 노력을 하는 농민의 판로와 생계가 위협받지 않는 구조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창영 대표는 대안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쿠바에서처럼 공무원들이 현장을 돌아다니며 농민들과 함께 유기농법을 연구하는 것과 같은 현장밀착형 농정을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단은 곡성에서, 상주에서, 그 밖의 여러 지역에서 대안농업 실현을 위해 주체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농민들이, 서로 격려하고 힘을 주고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연결망’이라도 만드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곡성 김현인 씨는 강원도 홍천군의 한 농민으로부터 무경운 농법 기술을 전수받고자 왕복 800km를 운전했던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머나먼 곳, ‘재야의 고수’에게 대안농업을 배우기 위해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하는 농민들. 그들은 지금도 ‘소농들의 연결망 형성’을 갈구하며 새벽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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