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인증제 개선, 농민 ‘인권’과 직결된다

  • 입력 2022.11.27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2022 환경농업 정책토론회-과정 중심 인증제도는 가능한가?’가 열렸다. 이날 참가자들은 친환경인증제 개선은 친환경농민의 인권문제와 직결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2022 환경농업 정책토론회-과정 중심 인증제도는 가능한가?’가 열렸다. 이날 참가자들은 친환경인증제 개선은 친환경농민의 인권문제와 직결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잔류농약 검출 여부만 따지는 ‘결과 중심’ 친환경농산물 인증제(친환경인증제)를 ‘과정 중심’ 인증제로 바꾸자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현장 농민들은 과정 중심 친환경인증제 확립이 농민의 ‘인권’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사)환경농업단체연합회(회장 조완석, 환농연) 주관으로 ‘2022 환경농업 정책토론회 – 과정 중심 인증제도는 가능한가?’가 열렸다.

현행 친환경인증제 하에서 비의도적 농약 혼입 등의 이유로 친환경인증을 취소당하는 ‘선의의 피해자’가 속출하는 문제는 많이 지적됐으나, 인증을 취소당하지 않은 친환경농민들의 ‘아무리 열심히 친환경농사 지어도 내 의도와 상관없이 잔류농약이 검출되면 어쩌나’라는 불안감, 이로 인해 ‘잔류농약만 검출되지 않으면 상관없지 않나’라고 인식하며 유박 등 외부투입재를 많이 넣는 농사방식을 선택하거나, 심지어는 친환경농사 자체의 포기를 선택하는 문제는 생각보다 많이 논의되지 않았다. 비의도적 이유로 인한 인증취소로 평생 친환경농사를 지어온 농민이 ‘자존감 훼손’을 겪는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이상의 모든 문제가 바로 농민의 ‘인권’ 문제와 직결된다는 게 이날 참가자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토론회 발제를 맡은 유병덕 이시도르지속가능연구소 소장은 한국 친환경인증제가 가진 특징으로서 “한국은 인증받은 생산자를 예비 위반자로 의심하며 징벌의 두려움을 일으켜 통제한다. 비의도적 부적합사항이 나타났을 때도 징벌한다”며 “다른 나라는 생산·관리체계 내의 위험성을 평가해 생산자의 예방적 행동을 요구하는데, 한국은 비의도적 부적합사항이 나타난 생산자도 인증받을 자격이 없는 자로 본다”고 지적했다.

시험분석, 즉 잔류농약 검출 중심 심사방법의 폐해로서, 유 소장은 △양심적으로 농사짓는 농민의 친환경농업 실천기회 박탈 △불가항력적 원인으로 잔류농약 검출 시 당사자에게 불명예 선사, 나아가 친환경농업 포기의 동기로 작용 △동료 생산자 및 소속된 생산자단체 사기 저하 △문서 중심 인증제로의 변질 등을 지적했다.

유 소장은 “문서 중심 인증제 하에서 인증심사원은 유기적 생산과정을 확인·평가하기보다 상부기관의 감사에 적발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며 시험분석성적서 등 문서 수집을 우선시하며 심사한다”며 “이런 상황에선 친환경농민도 인증심사원의 경향에 편승해 친환경적 생산과정 실천에 소홀할 수 있다. 예컨대 양질의 퇴비를 확보하는 대신 때로는 토양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유박 사용에 만족한다. 농약이 검출되지 않는다는 결과에 만족하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정영기 한국친환경농업협회 교육국장은 “친환경농가의 잔류농약 검사비는 1회당 30만원인데, 지난해 친환경인증을 받은 5만6,030농가가 한 번씩 잔류농약 검사를 받을 시 총 168억원의 비용이 든다. 그러나 각 소비처에서 수시로 잔류농약 관련 분석서를 요구하는 만큼, 잔류농약 검사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어떤 농가는 1년간 최대 7회의 잔류농약 검사를 의뢰해야 했다”며 잔류농약 검출 여부 확인을 위해 과도한 비용이 투입되는 상황을 비판했다.

이런 식으로 농사짓고 살라는 건 ‘폭력’

토론회에선 실제로 비의도적으로 혼입된 잔류농약으로 인해 인증취소 또는 정지 처분을 받았던 농민들의 증언도 이어졌다. 하도 이런 식으로 인증취소 피해를 당하는 농민이 많다 보니, 일부 피해 농민들은 도시 소비자들과 연대해 최근 ‘친환경인증제도를혁신하는사람들’이라는 조직까지 결성했다.

경북 상주시에 귀농해 토마토 농사를 짓는 김하동 친환경인증제도를혁신하는사람들 대표는 “올해 인증 갱신을 위해 심사받던 중 내가 농사짓는 하우스의 토마토에서 잔류농약이 검출됐다. 검출량이 0.01mg/kg 이하면 ‘불검출’로 간주되는데 내 토마토에선 0.014mg/kg이 나왔다. 0.004mg/kg만큼 더 나와 인증부적합 통보를 받았다”며 “정부에서 인정한, 목록에 공식적으로 포함된 유박 등을 사용해 23년간 농사지었을 뿐인데 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모르겠다. 처음 인증취소 통보를 받았을 때 든 생각은 ‘내가 뭘 잘못했지?’였다. 내가 농사지은 이래의 전체 삶을 부정당한 느낌이었다”고 말한 뒤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실 친환경인증 받은 이래 불안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농사를 짓는 것 자체가 참 힘들고 고민도 많은 일인데, 이런 불안감까지 안고 농사지으며 살아야 한다는 건 ‘폭력’이다.”

“한편으로 그동안 나처럼 억울하게 인증취소 또는 정지 처분을 받은 농민들은 서로 뭉치지 못했다. 왜냐고? 쪽팔려서. 이유가 어찌 되든 인증 취소당한 게 자랑이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에 나를 비롯해 모두가 서로 뭉치지 못했다. 은연중에 ‘쟤(다른 인증취소 농민)는 농약 쳤을지도 몰라’라고 의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대로는 그 무엇도 바뀌지 않겠다 싶어서, 친환경인증제 개선을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내고자 모이기로 했다.”

충남 홍성군에서 농사짓는 조대성 홍성유기농영농조합 대표 또한 2018년 친환경 상추 인증취소를 당한 사례를 토로했다. 과거 일반 딸기농사를 지어왔던 시설하우스를 빌려 친환경 상추농사를 시작한 조 대표는, 본인이 출하한 상추에서 보스칼리드·플루오피람 등의 잔류농약 성분이 미량 검출됐다는 통보를 지역 학교급식지원센터로부터 받았다. 조 대표는 그 당시와 이후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내 농산물에서 농약성분이 검출됐다는 데 큰 충격을 받았다. 포기하는 심정으로 인증취소를 받아들였다. 오래된 일이라 그때의 당혹감과 분노는 잘 떠오르지 않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 이의신청이라도 하고 잔류농약 검사를 다시 신청해서 인증을 되살리도록 노력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당시엔 어떤 ‘순결한 마음’에 검은 잉크가 떨어진 듯하다는 생각에,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 (인증포기를) 쉽게 받아들인 듯하다.”

조 대표 주변에도 인증취소를 당한 농민들이 있었다. 소나무재선충 방제 과정에서 방제약 물질이 혼입된 사례, 일반농사를 짓는 윗논에서 농약성분이 섞인 물이 흘러온 사례, 지역 국도를 관리하는 종합건설사무소에서 길가에 제초제를 살포하는 과정에서 제초제 성분이 혼입된 사례 등등, 농민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농약 혼입 사례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다.

농지 위해요소 관리, 국가의 책임이다

김지영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 상임위원은 본인이 거주하는 경기도 고양시의 한 마을 이야기를 했다.

“이 마을엔 친환경농민들이 있다. 마을엔 농약을 사용하는 농지도 있고,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골프장이 있다. 골프장에 뿌리는 농약은 바람에 날려 온 사방으로 날려 흩어지고, 고가도로의 자동차 바퀴에서 떨어진 타르도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 소각장에선 유해화학물질 검출 가능성이 높은 연기가 나온다.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친환경농민들은 열심히 채소를 가꾼다. 유기농업을 시도하고 노력하는 선한 의지를 꺾어버리는 주변 환경을 어떻게 해야 할까? 지방정부는 이런 부분에 문제의식이 있을까?”

김 상임위원은 이어 “최근 낙동강 일대에서 생산된 쌀로부터 마이크로시스틴 등의 독성물질이 검출된 상황에 대해, 정부는 농지를 친환경적으로 관리하고자 어떤 노력을 했나? 위해요소 관리는 국가의 책임이지, 농민에게만 책임을 물을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