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며, 일하며, 놀며 상생 추구하는 괴산 - 용산 주민들

  • 입력 2022.11.06 18:00
  • 수정 2022.11.06 23:2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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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만남은 과거부터 농민과 도시민 간에 진행된 도농교류의 핵심 활동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이래 도시민-농민 교류활동은 과거보다 줄어들었고, 만난다 해도 1년 1~2회 정도의 일시적이고 단발적인 만남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신뢰를 기반으로 한 ‘상시적 만남’은 21세기형 도농상생의 핵심 동력이다.

괴산-용산 주민들이 만나다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용산동2가에 위치한 다사리협동조합 마을식당에서 남기문 대표가 협동조합의 활동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위쪽). 지난달 31일 충북 괴산군 불정면에 위치한 ‘용산-괴산 상생농장’에서 박형백 웅골협동조합 이사장이 도농교류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용산동2가에 위치한 다사리협동조합 마을식당에서 남기문 대표가 협동조합의 활동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위쪽). 지난달 31일 충북 괴산군 불정면에 위치한 ‘용산-괴산 상생농장’에서 박형백 웅골협동조합 이사장이 도농교류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충북 괴산군 웅골협동조합(이사장 박형백)과 서울 용산구 다사리협동조합(대표 남기문) 간 만남엔 특징이 있다. 양측 모두 부담 없이, 소소하게, 계속 만난다는 점이다.

괴산-용산 주민들의 첫 만남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사리협동조합은 용산 해방촌 일대에서 전통 장류 공급사업 및 건강한 먹거리를 통한 어린이 돌봄활동을 벌이는 협동조합으로, 전통 장류에 사용할 콩·고춧가루의 구매처를 찾던 중 웅골협동조합과 연결됐다.

웅골협동조합은 괴산군 불정면 웅동마을 주민 11명이 함께 만든 협동조합으로 직접 생산한 콩과 메주, 된장을 판매해 왔다. 이들의 만남을 통해 괴산 콩으로 만든 전통 장이 해방촌 주민들에게 전해진 셈이다.

양측 다 협동조합을 만든 지 얼마 안 된 ‘초짜배기’였지만, 박형백 웅골협동조합 이사장과 남기문 다사리협동조합 대표는 그래서 더 잘 통했다. 본격적으로 뭔가 도모해 보고자 한 것은 2019년 서울시 지역상생교류사업단(단장 김원일)이 진행한 ‘상생공동체 사업’에 뛰어들면서부터다.

상생공동체 사업은 서울시 자치구 공동체와 지역공동체를 ‘짝꿍’으로 붙여 공동체 특성에 맞게 교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웅골·다사리 협동조합은 2019년 2기 사업 때 선정됐으나, 2020년 이래 계속된 코로나19 창궐로 방문객 수가 제한되면서 주민 간 대대적 교류활동이 어려워졌다.

박 이사장은 “돈이 있을 땐 코로나19 때문에 못 만나고, 올해는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만날 수 있게 되니 돈이 없고 (서울시 정책의 변화로) 서울시 도농상생 사업이 계속될지 미지수인 상황이 됐다”면서도 “그와 별개로 웅골·다사리 협동조합은 계속해서 만난다. 올해 봄부턴 매월 초마다 평균 10명 이상 용산 주민들이 방문해 농작업을 하고 괴산 주민들과 만난다”고 밝혔다. 특히 남 대표를 비롯한 ‘4인방’은 매월 한 번도 빠짐없이 괴산을 방문해 농사도 짓고 술도 같이 마신다는 게 박 이사장의 설명이다.

함께 농사지으니 ‘무’가 ‘고구마’로 변신

다사리협동조합에서 데려온 용산 주민들은 불정면에 마련된 약 500평 면적의 ‘지역상생농장’을 매월 방문해 괴산군민들과 함께 콩·배추·고구마 등을 재배했다. 지역상생농장은 서울시 지역상생교류사업단 상생공동체 사업 참여 과정에서 마련됐다. 웅골협동조합은 모종 구하기, 퇴비 뿌리기, 비닐 덮기 등 바탕 작업을 도왔고, 나머지 심고 수확하는 작업은 온전히 용산 주민들의 몫이었다.

처음엔 고구마 모종을 심는 간격도 제대로 못 맞추고, 코로나19로 인해 파종 시기 및 물 주는 시기도 놓쳐 어떤 고구마는 무 크기에 맞먹게 웃자라고, 또 어떤 고구마는 아예 자라지도 못하는 등 우여곡절도 있었다. “이젠 고구마를 심으면 무가 아닌 고구마가 나온다”는 게 남 대표의 설명이다. 다사리협동조합은 지역상생농장에서 수확한 600포기의 배추를 용산 희망나눔센터 및 영등포구 카페봄봄(노동자들의 모임공간을 제공하는 마을공동체) 등에 김장용 배추로 공급하기도 했다.

웅골협동조합이 도시민의 농사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한편, 다사리협동조합은 농사지을 도시민 ‘조직화’ 노력을 기울였다. 남 대표는 말했다.

“한 명이라도 더 데려가려고 술자리에서마다 ‘잔소리’를 해댔다. ‘나이 먹고 뭐할래. 농촌에서 취미와 정서가 같은 사람들 만나서 같이 놀고, 가서 농민들과 술 한 잔 하면 좋지 않냐’고 그랬고, 주변의 녹색당원들과는 만날 때마다 ‘녹색당이면 녹색 활동을 해야지’라며 꼬셨다. 처음엔 50~60대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올해 여름부턴 20~30대 청년들의 참여도 늘어났다. 괴산을 오가며 농사일에 재미 붙인 한 녹색당원이 함께 당 활동하는 청년들을 만날 때마다 꼬셨다더라.”

용산 주민들의 계속되는 방문은 괴산 주민들로서도 반가운 일이었다. 남 대표는 “동네 어르신들도 우리에게 관심을 많이 보이더라. 아침에 지역상생농장을 지나며 ‘이래서 밭 모양 나오겄어?’라던 어르신들이, 오후에 다시 지나가며 ‘이제 좀 (밭) 모양 나오네’라 할 때면 보람찼다”고 한 뒤 “방문 초창기엔 이질감도 있었고 ‘이분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긴장하며 왔지만, 4년 넘게 왔다 갔다 하니 이젠 반갑게 인사 나눌 동네 주민도 늘어났고, 마을회관에 아무 때나 들어가 쉴 정도로 스스럼없는 관계가 됐다”고 밝혔다.

소소하게, 계속 만나는 것부터

괴산·용산 주민들이 생각하는 도농교류의 원칙은 간단했다. 처음부터 일 크게 벌이지 않는 것.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소소하게, 계속 만나는 것.

박 이사장은 “자연스럽게 교류가 이어지는 건 서로 ‘도농교류를 위해 무엇을 해야만 한다’는 식으로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 않고, 그저 계속 만나고, 일하고, 밥 먹는 시간이 쌓였기에 가능했다”며 “타 지역 사례를 보면 도농교류 사업 과정에서 엄청난 결과를 내겠다며 황급히 달려드는 순간 오히려 쇠퇴하더라. 서로 오랜 기간에 걸쳐 신뢰를 쌓고, 소소하게 관계를 이어나가는 게 오히려 도농교류가 이어지게 만드는 원동력인 듯하다”고 말했다.

괴산-용산 주민들은 내년엔 도시민을 대상으로 한 농업 관련 교육을 통해 현재의 농업 현실, 귀농·귀촌자들의 생활 이야기 등을 공유하고자 한다. 이에 대한 논의도 할 겸, 더 깊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괴산-용산 주민들은 오는 19일 괴산에서 마을잔치를 벌이며 같이 밥먹는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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