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한 필지마다 적자, 솔직히 미래 안 보인다”

[르포] 충남 예산 쌀 재배 농민 이봉구씨

  • 입력 2022.10.30 18:00
  • 수정 2022.10.30 20:08
  • 기자명 장수지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지난 24일 충남 예산군 봉산면의 한 건조장에서 이봉구(50)씨가 지게차를 이용해 조금 전 수확한 나락을 건조기 투입구에 쏟아붓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24일 충남 예산군 봉산면의 한 건조장에서 이봉구(50)씨가 지게차를 이용해 조금 전 수확한 나락을 건조기 투입구에 쏟아붓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24일 오전, 충남 예산군 봉산면 일원에서 농민 이봉구(50)씨를 만났다. 새벽부터 논밭에 나와 밥 챙겨 먹을 시간조차 없다는 가을걷이철, 바쁜 와중에 짬을 내 만난 이씨 또한 지게차로 수확한 벼가 담긴 톤백을 옮기고 건조기에 벼를 쏟아붓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씨는 인근 논에서 수확해 건조장 앞으로 가져온 벼를 옮기기까지 지게차와 트럭에 몇 번이나 타고 내리기를 반복했고, 건조기 투입구에 맞춰 지게차로 톤백을 이동시킨 뒤에는 쏟아지는 벼를 이리저리 힘줘 조정하기도 했다. 쉽지 않아 보이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연이어 트럭에 실려 오는 톤백을 지게차로 옮기기를 반복하다 잠시 한숨을 돌릴 찰나 이씨를 통해 최근 농촌 현장의 상황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5년 전 본격적으로 농사일을 시작한 이씨는 현재 1만6,000평의 논에서 쌀농사를 짓고 있다. 그 정도 규모면 많이 남기진 못하더라도 먹고 살 만큼은 되겠다고 계산해 영농계획을 세웠고 그에 따라 2년 전 농협에서 대출을 받아 농지를 일부 구입하는 한편 임대 농지 면적도 대폭 늘린 결과다. 이씨는 재배면적을 얼마만큼 늘리고 언제 어떤 기계를 장만해야겠다는 나름의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는데, 최근 쌀값 폭락과 생산비 인상 등의 연이은 악재로 사실상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고 탄식했다.

이씨는 “지금도 매일 밤 농협 농자재값 상환에 대출 이자 등을 계산하고 따지느라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상황이 복잡하고 심란하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평년보다 수확량이 15%에서 많게는 30%가량 줄어든 것으로 파악되는데, 수확량도 떨어지고 시장격리 물량 발표 이후 미약하게나마 반등했던 쌀값마저 다시 하락하고 있어 그냥 논 한 필지마다 적자를 면치 못하는 실정이라고 보면 된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이씨에 따르면 농약값, 비료값, 기름값은 물론 인건비에 작업비 모두 지난해 대비 평균적으로 30~40% 오른 까닭에 쌀값이 평년 수준이나마 유지를 해야 본전인 실정이다. 게다가 최근 두 달 동안 크게 오른 대출금리 또한 농민들의 숨통을 옥죄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대다수 쌀 농가가 올해 적자를 면하기 힘든 이유기도 하다.

이씨는 “수확 무렵 이래저래 돈 나갈 일밖에 없는데, 두 달 전 4.7%던 농지구매 담보대출 이자까지 엊그제 6.9%로 2.2% 포인트 인상됐다. 본격적으로 농사일에 뛰어들고 나서 오르는 물가와 달리 쌀값만은 제자리라 수익에 맞춰 2인 가족이 생활비로 100만원 남짓을 사용해왔는데, 올해는 허리띠를 더 졸라야 하는 상황이다”라며 “정부가 물가 안정이라는 명목으로 20년 넘게 쌀값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시키는 동안 농민들은 쌀값과 다르게 나날이 오르는 물가에 시달리며 적자를 겪어왔다. 농민들이 풍족하게 살겠다는 것도 아니고 아플 때 고민 없이 병원가는 삶이라도 영위하겠다는 건데, 농촌 현장의 농민에겐 그것마저 허락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농사짓기로 한 자신의 선택이 최근 후회된다고 밝힌 이씨는 재고미를 잔뜩 떠안고 있는 농협의 상황을 모르는 게 아니지만 농협에서 선지급금을 높게 책정하면 정미소나 민간 RPC 등에서도 이를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이는데 농협이 오히려 주변을 눈치보며 단가를 낮추느라 애를 쓰는 상황이 답답하다고 전했다. 또 농민과 농촌 현장의 상황을 전혀 모른 채 시장물가 잡기에만 혈안이 된 정부를 향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이씨는 타작물 재배와 최근의 가루쌀 확대 사업을 바라보는 현장 농민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자신 또한 타작물 재배로 적잖은 타격을 입은 농민 중 하나라고 밝힌 이씨는 쌀값 안정 명목을 내세워 벼 재배면적 줄이기에 혈안이 된 정부 정책에 따라 몇 년간 논에 콩을 심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씨는 농림축산식품부의 타작물 재배지원사업이 지난해 종료돼 발생한 피해가 상당해 결국 올해부턴 콩을 심었던 논에 다시 벼를 심었다.

이씨는 “정권이 바뀌어도 농업정책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하나도 없다는 걸 타작물 재배지원사업에 참여했던 농민들은 아마 더 잘 알 거다. 문재인정부 때 기껏 기계 사고 논을 밭으로 만들어 열심히 콩 심었더니 사업을 3년만에 접은 전적이 있다”며 “지금 윤석열정부 농식품부에서 열심히 밀고 있는 가루쌀도 마찬가지인 게 장관 바뀌거나 정권 바뀌면서 사업이 또 몇 년 만에 중단되면 가루쌀 심은 농민들만 피해 보는 거다. 농민들은 그간 이미 숱한 피해를 본 까닭에 정부 정책을 믿을 수도 없고 그에 따를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지게차를 몰고 다시 건조기 쪽으로 향하던 이씨는 원래 상경집회나 투쟁활동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지난 8월 29일 상경집회와 세종시 투쟁 등에 적극 참여해왔다고 밝히며 “파고들수록 불합리한 부분이 너무 많은 걸 알게 됐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1억8,000만원 하는 콤바인은 농사일을 30년 이상 지속해야만 살 수 있다. 근본적으로 농민들이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없는 구조인 거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현재, 농사를 시작할 당시 세웠던 계획이 전부 물거품이 돼 버렸고 어떻게 해야 하나 그저 막막한 심정뿐이다. 주변에서도 모두 숨 쉬어지니 어쩔 수 없이 산다고들 한다. 정권 입맛에 맞춰 그때마다 농업정책 만들지 말고 농사짓는 농민이 안정적으로 농사지을 수 있게, 쌀값 바라보며 애간장 태우고 스트레스 받지 않게만 해주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