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쌀농사 분투기

  • 입력 2022.10.30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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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최대치로 떨어진 쌀값 때문에 직불금까지 보태야 농지 주인에게 임차료라도 줄 수 있다.” 지난 25일 전북 정읍시 소성면 들녘에서 막바지 가을걷이에 나선 박형용(45)씨는 쌀값을 둘러싼 최근의 농촌 상황을 위와 같이 말했다. 한승호 기자
“최대치로 떨어진 쌀값 때문에 직불금까지 보태야 농지 주인에게 임차료라도 줄 수 있다.” 지난 25일 전북 정읍시 소성면 들녘에서 막바지 가을걷이에 나선 박형용(45)씨는 쌀값을 둘러싼 최근의 농촌 상황을 위와 같이 말했다. 한승호 기자

 

45년 만의 최대치 쌀값 폭락.

2022년 농민들의 상황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다.

지난해 수확기 이전부터 본격화된 쌀값 하락세는 정부의 미온적이고 책임감 없는 태도와 함께 결국 올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농민들의 요구를 정부가 묵살하고 결과적으로는 효과도 못 낸 ‘물가안정’만을 우선 쫓은 결과다.

농민들의 쌀값 투쟁은 지난해 말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작황 조사를 통해 쌀 초과 생산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시장격리 골든타임을 지키지 않은 농식품부 앞에 나락을 적재했고 즉각적인 시장격리를 촉구하며 청와대 앞을 찾았다. 아울러 농민들은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당시 장관의 파면을 요구하는 한편 김 장관을 직무유기로 고발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지역에서도 농민들의 숱한 투쟁이 전개됐으며 전국의 농협 조합장들까지 머리에 띠를 두른 채 청와대 앞에서 시장격리 촉구 팻말을 들고 규탄의 목소리를 더했다.

지난해 12월 말 정부가 2021년산 쌀 27만톤을 시장에서 격리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되레 농민들의 분노에 불을 붙이는 도화선이 됐다. 20만톤을 우선 매입한 뒤 7만톤을 상황에 따라 추가 매입하겠다는 것도 모자라 ‘최저가 입찰방식’이라는 유례없는 역공매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전국의 농민들이 각 시·군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며 역공매 최저가 입찰방식에 대한 반발을 쏟아냈고, 정치권도 이에 동참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여당에서도 쌀 시장격리 방식에 대한 유감을 표한 것이다. 정부의 말도 안 되는 시장격리 조치에 쌀값이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이후 농민들은 국회 앞에 톤백을 쌓고 양곡관리법 전면 개정을 촉구하기 시작했다.

농민들의 쌀값 투쟁은 지난 2월 이후 근본대책을 촉구하는 양곡관리법 전면 개정 촉구 투쟁으로 확대됐다. 농민들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찾아 양곡관리법 개정과 CPTPP 가입 추진 중단 등을 담은 5대 농정 요구안을 전달했다.

대통령이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기고 부처 장관을 임명하며 내각을 꾸리는 동안에도 쌀값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3차 시장격리 조치가 7월 19일 시행됐음에도 쌀값은 계속해서 내리막을 걸었다. 조생종 햅쌀 수확을 앞둔 농민들의 걱정이 더욱 커진 시점도 이때부터였다.

머리띠를 맨 농민들이 다시 아스팔트로 향했다. 추수를 앞둔 논 갈아엎기 투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됐고 농민들은 도청과 시·군청 앞에 나락을 적재하며 성난 농심을 쏟아냈다.

지난 9월 25일 정부가 회심의 신·구곡 45만톤 시장격리를 발표했지만 당시 살짝 반등한 쌀값은 평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채 일부 하락하고 있다. 이에 농민들은 수확을 멈추고 오늘도 ‘생산비가 보장되는 밥 한 공기 쌀값 300원’을 쟁취하기 위해 릴레이 상경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농민들은 지난해 말부터 올 한 해 동안 쌀값 회복을 위한 양곡관리법 개정 등의 근본대책 수립을 내내 촉구했다. 하지만 농식품부는 여전히 ‘시장격리 역대 최대 물량’만을 치적으로 내세워 쌀값이 안정될 거란 근본 없는 기대감만 내비치고 있으며, 국회마저 시장격리 의무화를 내건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정쟁의 아이템으로 변질시켜 버렸다.

불확실하고 부실한 양곡관리법과 말뿐인 자동시장격리제는 사실상 올해 쌀 농가를 빚더미로 내몬 주범으로 꼽힌다. 최저가 경쟁입찰이라는 유례없는 역공매 방식의 시장격리는 농민들의 상황에 불을 끼얹었고, 국내 여건은 아랑곳 않은 채 매년 들여오는 수입쌀 또한 시장 상황을 어지럽히는 데 몫을 단단히 했다. 생색내기용 정부 정책에도 쌀값은 여전히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농민들의 쌀농사 분투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 속, 수확 현장의 농민들을 만나 허심탄회한 속내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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