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마음은 농민이 안다” … 수해복구에 팔 걷은 충남 농민들

[ 르포 ] 충남 부여군 은산면 수해복구 현장

  • 입력 2022.08.26 14: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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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적지 않은 비가 오락가락했던 지난 23일 충남 부여군 은산면 장벌리에서 전농 충남도연맹 소속 농민들이 14일 시간당 100mm가 넘는 폭우로 수해를 입은 마을을 찾아 토사를 치우는 등 수해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적지 않은 비가 오락가락했던 지난 23일 충남 부여군 은산면 장벌리에서 전농 충남도연맹 소속 농민들이 14일 시간당 100mm가 넘는 폭우로 수해를 입은 마을을 찾아 토사를 치우는 등 수해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23일 오전 8시 반,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사무소에 앞에 1톤 트럭이 잔뜩 모여들었다. ‘농민 죽이는 CPTPP 가입 중단하라’, ‘밥 한 공기 300원, 쌀값 보장하라’ 등의 선전문구가 빼곡히 적힌 전국농민회총연맹 회원들의 트럭이었다. 이날 한자리에 모인 전농 충남도연맹 소속 농민들은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 않고 한 손에 삽을 챙겨든 채 수해복구에 나섰다.

전농 충남도연맹은 당초 이날로 예정됐던 충남농민전진대회 일정을 취소하고 수해복구단을 꾸려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입은 부여군 은산면 장벌리를 찾았다. 산사태 현장과 토사로 뒤덮인 논·밭을 다니며 복구 작업에 매진한 시·군 농민회 회원들은 온종일 값진 땀방울을 흘리며 피해 농민들의 마음을 보듬었다.

김순봉 이장에 따르면 은산면 장벌리는 오늘날 여느 농촌과 마찬가지로 주민 대부분이 70~80대의 고령농민이다. 강한 비에 인근 도로 공사 현장과 밤산 등에서 토사가 흘러들어 논·밭 그리고 주택을 덮쳐 심각한 피해를 입었지만, 고령의 농민들은 애써 키운 농작물을 일으켜 세울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그저 안타깝게 바라만 보는 실정이었다.

김순봉 이장은 “피해가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논에 심긴 벼는 말할 것도 없고 골짜기마다 흘러내린 토사에 콩밭과 고추밭, 특화작물인 맥문동과 도라지 등 모든 작물이 피해를 입었다”라며 “전체 농경지의 80% 이상이 피해를 입었고, 시설하우스와 저온저장고 등의 피해도 심각하다. 주민 모두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인데 이렇게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밝혔다.

이날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전농 충남도연맹은 간단하게 발대식을 진행했다. 이진구 의장은 “오늘 수해복구에 만전을 기해 달라. 현장을 오니 농민과 주민들의 피해가 실감된다”며 “이런 저런 형식 챙길 것 없이 안전하게 복구에만 집중해달라”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유재석 부여군농민회장 역시 “충남 전 지역이 호우로 어려운 시기인데, 복구에 동참해주셔서 감사하다. 다치지 않게 오늘 하루 작업 잘 마치길 바란다”고 말했다.

복구작업은 3팀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김희봉 회장을 비롯한 당진시농민회 소속 농민 6명은 인근 산에서 쏟아진 토사로 뒤덮인 밭을 복구하는 현장을 도맡았다. 밭주인 조혜정(71)씨는 “여기서 수확한 고추를 말리고 빻아 시장에 고춧가루를 팔러 다니는데, 고추밭이 전부 망가져 10번 중 3번밖에 수확을 못하게 됐다. 군인들이 와서 흙은 많이 치워줬는데, 그냥 두면 금방 썩기 시작하는 고추도 아예 뽑아 내버려야 하고 힘들여 고정해 둔 지지대며 묶어둔 끈도 사실 전부 치워야 한다”면서 “어떻게 하나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이렇게 아저씨들이 와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전했다.

당진 농민들은 밭주인인 조혜정 할머니에게 “어르신, 이 지주대는 나중에 또 써야 하니까 여기에 모아둘게요. 아, 그리고 지주대에 고추 고정시키느라 쓴 이 끈은 따로 분리해서 여기 빈 포대에 담아두겠습니다”라고 살갑게 말을 붙이며 척척 할 일을 해나갔다.

배형택 전농 충남도연맹 정책위원장과 논산시농민회 소속 농민 4명은 인근 둑이 무너지는 바람에 논과 맥문동 재배지 등이 유실된 박영수(74)씨를 도왔다. 논을 재정비하고 흙과 이물질에 뒤덮여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우는 논산 농민들을 보며 박영수씨는 “농사짓는 분들이라고 들었는데 확실히 다르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도 안 했는데 알아서 척척이다”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한편 나머지 농민들은 장벌리 내에서도 산사태 피해가 가장 심한 안골마을을 찾았다. 흙더미로 뒤덮인 공용시설과 민가 등의 복구작업에 매진하는 농민들은 흐르는 땀방울에 옷이 모두 흠뻑 젖어 옷을 짜내야 할 만큼 정성을 다했다.

“이렇게 흘리는 땀은 하나도 아깝지가 않다”며 뿌듯함을 드러낸 농민들은 “지역에 비 피해가 큰 와중에 전진대회를 진행하는 것보다 훨씬 의미있고 보람차다. 이런 활동은 정말 농민회 아니고선 못한다”며 강한 자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중간중간 적지 않은 비가 내렸지만 전농 충남도연맹 농민 40여명은 오후까지 장벌리 수해 현장 복구에 온 열정을 다했다. 

논산시농민회 소속 농민들이 수해로 물에 잠겼던 장벌리 논에서 자동차 타이어를 비롯한 이물질을 찾아 논밖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논산시농민회 소속 농민들이 수해로 물에 잠겼던 장벌리 논에서 자동차 타이어를 비롯한 이물질을 찾아 논밖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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