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모르는 유권자, 유권자 모르는 후보

전국동시조합장선거 시행 8년

여전히 ‘깜깜이 선거’ 비판 높아

부정선거·불평등선거 여지도 커

  • 입력 2022.08.07 18:00
  • 수정 2022.08.07 21:12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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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유권자는 후보를 알지 못하고 후보는 유권자를 알지 못한다. 그 흔한 소견발표는 고사하고 공개적인 발언기회 자체가 제한된다. 초등학교 학급 반장 선거보다도 허술한 이 선거제, 놀랍게도 농촌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농협 조합장 선거제도다.

「공직선거법」은 선거 입후보자에 대한 유권자의 알 권리를 폭넓게 충족시킨다. 후보들에겐 지류·현수막을 이용한 다양한 홍보수단과 언론광고, 공개석상 연설이 허용돼 있다. 가능한 방송·언론 출연 경로만 해도 10여 가지에 달하며 일정 횟수의 방송토론회가 의무화돼있기까지 하다.

하지만 조합장 선거의 근거법령인「공공단체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위탁선거법)」은 후보들의 선거운동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다. 선거 공보와 벽보까진 만들 수 있지만 선거공약서나 현수막은 만들 수 없다. 연설·토론·방송출연이 모두 막혀있으며 전화나 문자메시지 인사도 딱 선거기간 동안에만 허용된다. 선거운동의 주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공직선거법과 달리 ‘후보 본인’으로 한정된다.

후보 혼자서 어깨띠를 매고 명함을 돌리고, 전화·문자메시지 인사를 돌리는 게 조합장 선거운동의 전부다. 그 전화·문자메시지조차 유권자 명단이나 가상 전화번호가 제공되지 않아 아는 사람한테만 돌릴 수 있다. 농협 홈페이지나 이메일을 통한 온라인 홍보가 가능하지만 고령화된 농촌에선 무용지물. 조합원들은 공보물 한 장을 보고서 조합장을 뽑아야 한다.
 

2019년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 당시 선거운동에 나선 한 지역농협 조합장 후보가 농민들의 손을 잡고 소중한 한 표를 호소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2019년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 당시 선거운동에 나선 한 지역농협 조합장 후보가 농민들의 손을 잡고 소중한 한 표를 호소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조합장 선거운동이 이렇게 제한적인 이유는 선거 과열과 부정선거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로 인한 유권자 알 권리 침해는 선거 과열보다도 훨씬 심각한 문제다. 그렇다고 본래의 목적인 ‘선거 과열 차단’이 효과를 보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농협 부정선거 의혹과 논란은 과거 위탁선거법 적용 전과 달라진 바가 없기 때문이다.

현직 조합장 A씨는 “작은 조합들은 덜하겠지만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조합이라면 후보와 유권자가 서로를 모른다. 유권자가 후보를 판단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공개토론인데, 그걸 못 하니 오히려 후보들이 유권자를 음성적으로 만나 돈 쓰는 선거, 밥 사주는 선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불법 선거운동이 없다고 가정해도 공정한 선거판은 아니다. 정보의 단절은 변화에 대한 불안을 키우고, 이 국면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건 기존의 인물, 즉 현직 조합장이다. 더욱이 현직 조합장은 시혜성 사업, 경조화환 등 조합 예산을 사용한 상시적 유권자 관리가 가능하다. 다른 후보들은 알 수 없는 조합원 전체 명단(연락처) 역시 손에 쥐고 있다. ‘비위 조합장 재선’, ‘조합장 종신집권’ 등의 양태가 발생하는 배경이다.

조합장 선거에 낙선한 경험이 있는 B씨는 “그야말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심지어 재출마를 포기한 조합장이 후계자(출마자 중 친인척)에게 조합원 명단을 넘겨주는 것도 봤다”고 주장했다.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벌써 3회째를 맞지만 선거제도는 중대한 하자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유권자는 후보를 알 수 없고, 현직 조합장이 다른 후보들의 머리 위에 앉아 있다. 자연히 금품과 부정은 난무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 이상한 선거제가 농촌의 8년을 지배했고 이제 4년을 더 지배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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