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 선거제도 … 조합원이라도 현명하자

금품선거·깜깜이선거 … ‘정책’ 안 보이는 조합장 선거

소신 있는 투표, 조합 향한 관심으로 피해 최소화 필요

  • 입력 2022.08.07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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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최근 대구 성서농협 이사 선거에서 금품수수가 적발돼 이사·대의원 등 68명이 무더기 입건됐다. 이사 후보 15명 중 13명이 합계 8,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했고 대의원 55명 중 52명이 각각 수십에서 수백만원을 수령했다. 단지 몇몇의 일탈이 아니라 거의 전원이 동조했다는 점에서 농협의 이지러진 선거 풍토를 확인할 수 있다.

성서농협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모든 농협이 그런 건 아니지만 전국 어느 지역에서든 “돈 안 쓰곤 당선 못한다”는 말을 찾아 듣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사·대의원보다 이권이 더 큰 조합장 선거야 말할 것도 없다. ‘4락5당(4억 쓰면 떨어지고 5억 쓰면 붙는다)’이란 조롱 섞인 말은 이제 격언처럼 굳어졌으며 끝내 탄로난 금품선거 사건만 해도 인터넷에 넘쳐나고 있다.

선거에 거액의 돈을 쏟아붓는다는 것은 당선 후 어떤 식으로든 이를 회수하겠다는 뜻이다. 당장의 유혹에 흔들려 잘못된 선택을 했다간 조합장의 탐욕에 의해 농협의 톱니바퀴가 망가지고, 결국 조합원들 자신의 밥그릇을 뺏기는 결과를 낳는다. 금품에 휘둘리지 않고 소신 있는 투표를 행사하는 것이야말로 조합원들의 제1덕목이라 할 수 있다.
 

2019년 3월 13일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일제히 치러진 가운데 충남 당진시 고대농협 경제사업장에 마련된 고대면투표소에서 농민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길게 줄 서 있다. 한승호 기자
2019년 3월 13일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일제히 치러진 가운데 충남 당진시 고대농협 경제사업장에 마련된 고대면투표소에서 농민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길게 줄 서 있다. 한승호 기자

다만, 금품의 유혹을 이겨내는 것과 ‘좋은 후보’를 가려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후보들의 선거운동 수단이 막혀 있는 이상 조합원은 후보들의 면면을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렵다.

이용희 전국농민회총연맹 협동조합개혁위원장은 “지금의 선거제도에서 공명선거·정책선거를 얘기하기란 참 어렵다. 가는 곳마다 ‘설령 금품을 받더라도 내용(후보 소견)을 보고 찍으시라’고 당부하긴 하는데, 실제론 내용을 검토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얘기해 놓고도 답답하다”며 안타까워했다.

현 상황에서 그나마 조합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조합의 일에 관심을 늘리는 것이다. 조합 사업이 농민 중심으로 올바르게 돌아가고 있는지 현직 조합장을 상시 감시한다면, 적어도 역량 미달의 조합장이 기계적으로 재선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선거제도가 현직 조합장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돼 있는 만큼 이는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는 또한 조합 운영에 대한 공론을 형성하고, ‘잠재적 조합장 후보들’과의 접점을 넓히는 길이 될 수도 있다.

조합장 선거 문제의 핵심적이고 독보적인 과제는 두말 할 것 없이 선거제도, 즉 법률의 개정이다. 위탁선거법이 조장한 깜깜이 선거와 불공정 요소들, 농협법이 갖고 있는 ‘비상임 조합장 연임 무제한’ 등의 독소조항. 모두가 농협의 건전성을 침해하는 요인들이며 농민 조합원들은 법률의 피해자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조합원들의 의지가 중요한 이유는, 조합원이 법률을 적용받는 객체이기 이전에 조합을 굴려가는 주체며, 조합의 품격은 조합원의 품격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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