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평가된 국산 소고기 육우, 소비자의 ‘블루오션’

‘저질·젖소고기’는 오해, 한우 버금가는 고품질 국산 소고기

육우 소비로 ‘가성비’ 누리고 우유·소고기 자급기반 굳히고

  • 입력 2022.06.10 10:08
  • 수정 2022.06.10 10:26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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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육우의 개념을 정의해놓은 공식 규정은 의외로 법령이 아니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소·돼지 식육의 표시방법 및 부위 구분기준(원산지표시 요령)」 고시다. 고시에 따르면 육우고기란 국내산 소고기 중 ‘(한우 이외의)육우종, 교잡종, 젖소수소 및 미경산 젖소암소에서 생산된 고기와 6개월 이상 국내에서 사육된 수입생우에서 생산된 고기’다. 현실적으로 이 가운데 국내에서 비육되는 건 젖소수소 외엔 미미하므로, 육우고기는 곧 ‘국내산 젖소수소 고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낙농가에서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선 암소를 임신·출산시켜야 한다. 태어나는 암송아지는 다시 번식·착유우로 육성되지만 수송아지는 전문 비육농가가 매입해 육우로 사육한다. 먹는 사료와 맞는 주사, 도축과정과 유통방식 등 모든 환경·조건이 한우와 똑같으며 차이가 있다면 한우보다 10개월가량 일찍 출하한다는 것이다(20~24개월령). 성장속도가 빨라 20개월령이면 한우 30개월령과 비슷한 생체중에 도달하는데, 다만 나이가 어린 만큼 고기의 마블링 등급은 2~3등급이 주를 이룬다. 육우도 30개월 이상 비육하면 한우에 준하는 마블링을 축적할 수 있지만 사료효율이 낮아 거의 시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긴 설명이 필요할 정도로 육우는 대중에게 제대로 알려져있지 않다. 육우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지만 질이 떨어지는 고기, 어딘가 하자가 있는 소, 혹은 육질이 가장 떨어지는 젖소암소(착유 도태우)와 동일하게 인식하기도 한다. 농축산물 가운데 이만큼 존재감이 없고 오해를 많이 받는 품목도 드물다.

2017년 육우자조금관리위원회 설문조사 결과 육우에 대해 들어봤다는 응답자가 76%, 육우의 개념을 알고 있는 응답자가 70%로 기대보다 높게 나왔지만 표본이 적어(604명) 낙관할 수 없다. 그보다 불과 2년 전 대한영양사협회 학술지에 게재된 조사연구에선 육우에 대해 들어봤다는 응답자가 54.6%, 개념을 알고 있는 응답자는 37.4%에 불과했다. 이 조사연구의 표본은 심지어 ‘식품영양 관련 전공 대학생’ 2,454명이었다.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 호텔에서 육우자조금관리위원회 주최로 열린 ‘2022 육우데이 기념행사’에서 육우업계 참석자들이 ‘The 좋은 우리육우, The 행복한 우리육우’라는 미래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 호텔에서 육우자조금관리위원회 주최로 열린 ‘2022 육우데이 기념행사’에서 육우업계 참석자들이 ‘The 좋은 우리육우, The 행복한 우리육우’라는 미래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당연히 적극적인 마케팅이 필요하겠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다. 육우는 낙농업의 파생산업이기 때문에 사육 한도가 정해져 있다. 우유의 적정 생산을 위해선 젖소 마릿수가 40만마리 수준에서 관리돼야 하며 이와 균형을 맞추고 있는 육우 마릿수가 17만마리다. 한우 마릿수 334만마리 대비 5% 규모. 공격적으로 시장을 점유하기엔 물량이 부족하고, 홍보로 돌파해보려 해도 자조금 규모가 너무 영세하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손을 놓을 수 있는 산업도 아니다. 우유 생산을 위해 매년 끊임없이 15만마리 안팎의 젖소 송아지가 태어나고 그중 절반은 수송아지다. 육우산업이 불안정하면 두 가지 현상을 우려할 수 있다. 낙농가나 육우농가가 수송아지 사육으로 인한 손실을 떠안음으로써 우유·소고기 생산기반이 흔들리게 된다는 게 하나, 일부 비양심적 농가에서 수송아지 살처분 행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게 다른 하나다. 단지 이론이 아니라 육우 가격이 떨어질 때마다 논란이 부각되는 얘기들이다.

다행스러운 건, 육우가 매력이 없는 품목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블링을 중시하는 국내 등급체계 때문에 2~3등급은 저품질 고기로 오해하기 쉽지만, 저등급 고기는 지방이 적고 담백해 불고기·국거리·장조림용으로 적합하고 취향에 따라선 구이용으로도 훌륭하다. 특히 육우는 도축월령이 어리기 때문에 같은 등급의 다른 소고기에 비해 육질이 연하다는 장점이 있다.

저렴한 가격 또한 매력이다. 같은 등급의 한우고기보다도 저렴할뿐더러, 수입산과 비교하면 대체로 미국산보다 조금 높고 호주산과 비슷한 가격을 형성한다. 신뢰도 측면에선 오히려 수입산보다 비교우위를 점한다. 광우병 같은 인수공통감염병의 우려가 없는 건 물론이거니와, 확실하고 철저한 관리도 강점이다. 우리 축산업은 사료의 해외의존을 제외하면 사육·도축·유통 등 모든 전후방산업이 어느 선진국 못지않게 체계화돼 있고, 우리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지척에서 모든 과정을 관리하고 있다. 소비자가 고기에 부착된 이력번호만 조회하면 소의 생년월일과 농장주·농장위치, 백신 접종이력과 도축이력까지 투명하게 열람할 수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직접 농장이나 도축장을 찾아가볼 수도 있다. 즉, 육우는 우리 국민이 안전한 국산 소고기를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선택지가 된다.

농가 입장에서 육우는 한우에 비해 송아지 가격이 5분의1에 불과하고 사육기간도 짧지만, 생산비 절감분 이상으로 시장에서의 평가가 낮아 고충이 크다. 2021년 통계(통계청)상 자가노동비를 제외한 마리당 농가 순익이 한우 29만원, 육우 –23만원일 정도로 그 불균형은 심각하다. 소비자의 육우 소비는 개인 입장에서 합리적 선택이 될 뿐만 아니라, 저평가된 육우산업을 지탱함으로써 우유 생산기반과 소고기 자급기반을 동시에 안정시키는 ‘가치 소비’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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