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의 첫 현장점검, ‘물가관리’여야 하나

제분기업·대두유 생산기업서 ‘애로사항 청취’

농촌 현장은 농자재·인건비 폭등·인력난 겹쳐

“농번기 맞은 농촌, 일손이라도 돕는 게 본분”

  • 입력 2022.05.28 04:26
  • 수정 2022.05.29 21:20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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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윤석열정부 초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첫 현장점검 주제는 ‘물가’였다. 밀가루와 식용유 제조업체를 돌아본 정황근 장관은 현재 수급상황과 가격문제에 대해 소비자들에게 안심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폭등하는 농자재값과 인력수급의 어려움, 인건비 폭등을 감내하는 농촌현장보다 물가부터 챙기는 농식품부 장관의 행보에 ‘농정보다 물가관리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이 지난 23일 대한제분 인천공장과 사조대림 인천공장 등 밀가루·식용유 생산현장을 각각 방문했다. 밀가루·대두유 공급상황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이어 식품·외식업계 간담회를 한 후 선학동 음식문화거리를 방문해 치킨, 핫도그, 분식집 등 현장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이날 행사는 정 장관 취임 후 첫 현장점검이었기에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정 장관은 먼저 대한제분 인천공장에 방문했다. 하지만 밀가루 완제품을 차량에 싣는 외부 작업장에서 업체관계자와 잠시 얘기를 나누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고, 사조대림 인천공장에서는 가정용 식용유 생산 공정을 둘러본 뒤 식품·외식업계 간담회장으로 향했다. 간담회는 정 장관의 모두 발언만 공개되고 이후 비공개 회의로 전환됐다.

농식품부 보도자료에는 정 장관이 ‘현장 경기 상황과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그간의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외식업체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와 격려’를 하며 ‘원자재 가격 상승이 외식업체에 미치는 영향을 세심하게 살폈다’고 설명했다. 실제 간담회에 참석한 관계자들에 따르면 ‘특별히 논의된 사항은 없었다’는 전언이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 23일 대한제분 인천공장을 찾아 밀가루 수급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 23일 대한제분 인천공장을 찾아 밀가루 수급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농업계 시선은 싸늘하다. 농식품부 장관의 정책 1순위까지 ‘물가관리’라면, 농산물 수급정책이 물가정책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물가인상의 원흉을 농산물이라고 지목하는 여론의 오해 속에 물가안정은 곧 농산물 가격 억제 정책이자 수입농산물 확대 정책으로 이어져, 결국 농민들은 생산비도 건지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북 상주에서 농사를 짓는 전성도 씨는 농식품부 장관의 수입농산물 가공업체 현장방문 소식에 ‘본분을 망각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전성도 씨는 “농촌은 현재 일할 사람을 못 구해 전쟁 중이다. 게다가 인건비가 무섭게 올라 코로나 이전에 1인당 6~7만원 하던 일당이 13~15만원을 부른다. 두 배나 넘게 오른 인건비만 부담이 큰 게 아니라 기름값 농자재값 모조리 올랐다”면서 “그런데 쌀값은 되레 떨어지고 있지 않나. 국제곡물가격은 오르는데 국내 쌀값은 왜 거꾸로 가야 하는지 너무 답답하다. 상황이 이런데 농식품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농촌에 가서 일손을 돕거나 하다못해 돕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게 맞지, 때가 어느 땐데 수입농산물 가공업체부터 방문해 물가를 점검하느냐”고 역정을 냈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오른쪽)이 지난 23일 사조대림 인천공장을 찾아 식용유 수급 현황을 듣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오른쪽)이 지난 23일 사조대림 인천공장을 찾아 식용유 수급 현황을 듣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한편 이날 제분업체 현장점검에서 정 장관은 공급이 불안해지는 밀가루 대안으로 ‘쌀가루’를 제시했다. 정 장관은 “1년에 밀가루를 220만톤 소비하고 0.8%를 국내산 밀로 자급하고 있다. 10%만 대체해도 22만톤 수입을 안 해도 된다”면서 “농촌진흥청장 시절 물에 불리지 않아도 쌀가루를 만들 수 있는 품종을 개발했다. 밀가루보다 쌀가루 품질이 훨씬 좋다”고 강조했다.

지난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이 베트남 방문 이후 쌀소비 확대 차원에서 ‘쌀종이’ 개발 아이디어를 낸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때 보수언론들은 ‘대통령의 농업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농식품부 내에서도 화제가 된다고 보도한 바 있다. 10여년이 지난 현재, 국내산 쌀로 쌀종이를 만들어 시판하는 곳은 없다. 쌀이라는 동일 곡물에도 대체실효성이 없다는 뜻이다. 하물며 밀로 만든 빵·국수·과자를 곡물 종류가 아예 다른 쌀로 대신한다는 것에 전문가와 업계는 매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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