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농, '농지 마련·자연재해·대출 상환' 쉬운 게 없다

  • 입력 2022.05.15 18:00
  • 수정 2022.05.15 19:37
  • 기자명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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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태형 기자]

지난 11일 세종시 전동면에 위치한 친환경 밭에서 김민석(28)씨가 고추 모종을 심고 있다. 김씨는 농촌에 정착한 청년농민에 대한 사후관리 방안 마련이 꼭 필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1일 세종시 전동면에 위치한 친환경 밭에서 김민석(28)씨가 고추 모종을 심고 있다. 김씨는 농촌에 정착한 청년농민에 대한 사후관리 방안 마련이 꼭 필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한승호 기자

청년농, 농지 우선지원? 진입장벽 여전히 높아

김준식(39)씨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서 논콩을 재배하는 청년농민이다. 처음엔 화훼 농사를 짓는 어머니와 함께 농사를 지으려 건국대학교에서 원예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부모님을 돕다 2017년 후계농업인에 선정되면서 본격적인 농업에 뛰어들었다. 작목을 고민하던 그는 파주지역에서 많이 재배하는 ‘논콩’에 승부를 걸기로 했다. 지역 주산 작물을 재배하면 빨리 성장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먼저 농지를 구해야 했다. 한국농어촌공사 농지은행을 통해 나온 농지를 2017년 12월에 빌렸다. 당시 강한 한파와 폭설로 육안으로는 땅이 어떤 상태인지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농지은행에서 나온 매물이라 믿고 계약한 것이다. 눈이 다 녹았을 무렵 농지를 보러 갔더니 폐자갈이 깔려있는 등 농지형성이 전혀 안 돼 있었다. 굴삭기 기사는 이 땅은 개간해도 농사짓기 힘든 땅이니 흙을 쌓아 땅을 돋우는 작업인 성토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땅 주인은 성토를 하면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땅을 포기해야 했다. 뼈아픈 경험이었다.

김씨는 청년창업농 영농정착지원사업 모집 현수막을 보고 곧장 지원했다. 사업에 선발된 그는 본인 명의의 농지 등 영농기반을 마련한 후 농업경영체를 등록해야 했다. 김씨는 정착자금으로 땅을 임대할 생각으로 농지은행을 통해 알아봤지만, 매물이 거의 없었다. 그는 2018년 4월 아버지에게 땅 1,800평을 증여받아 5월에 농업경영체를 등록했다. 독립적인 영농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초창기 연 매출은 600만원에도 못미쳤다.

소득증대를 위해서는 농지 면적을 늘려야 했다. 다시 농지은행을 통해 매물을 찾아 나섰다. 마음에 드는 밭을 골라 실제로 가봤더니, 고물상으로 쓰고 있거나 농기계도 못 들어가는 맹지가 많았다. 그는 “농어촌공사가 지목이 논이거나 밭, 과수원이면 무조건 받다 보니 이런 문제가 생긴다”며 “어느 정도 한 번은 걸러서 청년들에게 배정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적합한 땅이 나와도 갈수록 농지 확보가 더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김씨는 “영농정착지원금 지급이 종료될 무렵에서야 농지은행에서 필요한 농지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2020년과 2021년 두 해에 걸쳐 6,000여평만 빌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청년창업농은 농지은행에서 1순위로 농지를 빌릴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2030세대, 후계농업경영인, 귀농인, 일반 농업인 순으로 차례가 온다.

그는 “청년창업농은 1순위로 농지를 빌릴 수 있지만, 농지은행에서는 2ha(1ha=3,025평)까지만 빌려주고 더 필요하면 2030세대나 후계농업경영인 등 다음 순위로 임대를 받으라고 한다”며 “신규 청년창업농이 매년 들어오는 상황에서 사실상 후순위에서는 농지 마련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농지 확장을 못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콩농사로 살아남으려면 3만평은 지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비료값, 농약값, 인건비, 전기료 등 경영비는 계속 오르는데 농산물 산지가격은 그대로다. 지난해 순수익은 4,000만원이다. 대출금을 상환하고 생활비를 쓰기에도 빠듯하다. 그는 “사실상 전업농으로 성장할 길이 막힌 것”이라며 “농지는 구하기 어려운데, 대출 상환은 시작됐으니 다른 일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은 그나마 아버지로부터 땅을 증여받아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했다. 그는 “기반 없이 시작한 청년농민들은 대출을 갚지 못해 일반 대출로 메꾸다 파산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정말 안 좋은 소식만 안 들리면 좋겠다”고 했다.

이상기후와 코로나19로 이중고 … 대출은 ‘돌려막기’

전남 장성군 진원면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는 김재원(27)씨는 장성군에서 ‘복숭아 전문가’로 불린다. 청년 농수산 인재 육성을 위해 설립된 3년제 한국농수산대학 과수학과를 졸업한 그는 2학년 때 국내 복숭아 마이스터 농장에서 2개월, 일본의 복숭아 주산지인 야마나시현에 위치한 농업법인에서 10개월간 실습을 하면서 영농기술을 익혔다. 마을 이웃들은 복숭아나무 가지치기 등 영농기술을 배우려고 김씨를 찾는다.

김씨가 처음부터 농업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교대 진학과 선교 활동 관련 일을 사이에 두고 진로를 고민했다. 10여년 전 귀농해 복숭아 농사를 짓던 부모님은 농업을 권유했다. 그는 농업은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마을이 함께 잘 사는 농촌이 되도록 만들어 보는 게 어떻겠냐는 부모님의 제안이 마음을 움직였다. 학교 도서관에서 빌리고 직접 산 농업·농촌 관련 책 10여권을 몽땅 읽었다. 농업에 관한 비전이 보였다. 곧장 한국농수산대학 진학을 준비했다.

그는 2018년에 대학을 졸업하면서 직접 농사를 짓기 위해 장성으로 왔다. 과수원이 필요했지만, 혹여나 잘못된 땅을 구할까 걱정됐다. 마을 이웃에게 사정해 1년여간 1,500평 규모 과수원에서 복숭아농사를 지었다. 농사를 짓겠다고 농촌에 온 청년이 기특했던 이웃은 임대료도 거의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해 여름 첫 매출은 3,500만원을 기록했다. 총수익에서 경영비를 빼니 3,000만원이 남았다. 김씨는 “국내 복숭아나무 수령이 13년 정돈데, 임대 당시 8년 정도 됐다”면서 “향후 5년 정도 매년 수확량이 10~15%씩 늘어날 것을 가정해 매년 매출이 500만원씩 증가할 것으로 경영 분석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8년 후기 청년창업농 영농정착사업 대상자로 선정됐다. 창업자금 3억원을 빌려 그 땅을 구매했다. 2019년에는 80평 규모의 체험장과 작업장도 지었다.

농사는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해 무려 7개의 태풍이 몰아친 것이다. 이는 1951년 기록 집계 이래 최다 개수였다. 과수원과 체험장, 작업장은 물론 장성군 일대가 모두 침수됐다. 매출이 1,000만원도 안 나왔다. 더 큰 문제는 2020년 기상관측 이래 최장 장마가 왔다. 6월 말부터 52일간 쏟아진 집중호우로 한창 수확해야 할 복숭아들이 나무에서 다 떨어지고 상처났다. 상품 가치가 있는 것은 10% 내외였다. 장성군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2021년에는 한파가 닥쳤다. 영하 19도까지 내려간 것이다. 예보를 듣고 이틀 전부터 대비를 했지만, 이미 비에 잠겨 뿌리가 많이 죽은 상태였던 나무는 갑작스런 추위에 ‘수세(나무가 자라나는 힘)’가 떨어져 더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 코로나19로 체험장도 운영을 중단해야 했다.

한 해 농사만 망쳐도 생계에 큰 위협이 되는데, 3년 연속 어려움이 닥치니 김씨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농사 결과와 무관하게 농약값, 기름값, 자재비 등 경영비는 매년 500~600만원씩 꾸준히 들어갔다. 부모님은 김씨를 농촌에 끌어들인 것을 미안해했다. 그나마 지난 여름에는 별 탈 없이 수확을 마쳤다.

문제는 정책자금으로 빌린 3억원에 대한 3년 거치기간이 끝나면서 상환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는 올해부터 7년간 매년 원금과 이자 4,700여만원을 상환해야 한다. 2020년부터는 창업자금 지원이 5년 거치, 10년 분할상환으로 조정됐다. 하지만 2018년, 2019년에 선발된 1기와 2기의 경우 소급적용이 되지 않았다.

이상기후에 더해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거치기간 동안 마땅한 수익이 없었던 차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당장 대출금을 상환해야 하는 실정인 것이다. 그는 “이미 경영비 들이는 것도 빠듯한 상황”이라며 “사실 대출을 갚기 위해 다른 대출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농식품부, 사후 대책 전무 … 지원 끝나면 ‘나 몰라라’

세종시 전동면에서 만난 김민석(28)씨는 임대와 매매를 합쳐 노지 4,000평에서 친환경 고추를 재배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1,000평 규모의 하우스를 지어 올해부터 파프리카, 가지, 오이고추, 홍고추, 토마토 농사도 짓고 있다. 하우스 작물들은 이달 말 로컬푸드 출하를 앞두고 있다.

공무원인 부모님은 자식도 공무원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몸쓰는 일을 좋아했던 김씨는 농사에 흥미가 갔다. 부모님도 결국 김씨의 뜻을 존중했다. 세종시가 고향인 그는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충남 천안에서 나왔다. 아버지 몸이 편찮아져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가 친환경을 고집하는 이유도 아버지 영향이 크다. 그는 친환경이 수익 측면에서도 비전이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에서는 친환경 농사를 만류했다. ‘돈은 안 되고 힘만 든다’라는 이유에서다. 오기가 생겼다. 정책자금 2억6,000만원을 빌려 땅을 샀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그는 “지난 4년간 수익이 전무했다”고 말했다. 특히 2020년에는 장마로 인한 병해충 발생으로 수확을 하나도 못했다. 그해 들어온 돈은 보상금 700만원이 전부였다. 작년부터는 정착지원금마저 끊기면서 대출을 받아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오는 31일까지 대출을 상환하라는 고지서에는 4,350여만원이 찍혀있었다. 수익이 없으니 갚을 방법이 달리 없다. 그는 더 이율이 높은 다른 대출을 받아 정착자금 원금과 이자를 메꿀 예정이다.

김씨는 사후관리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한 번 지원해주고 끝낼 것이 아니라 농사가 잘 되는 것 같으면 확 치고 나갈 수 있게 더 지원해주고, 허덕이는 사람이 있으면 구제해주는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원이 끝난 청년농민들을 대상으로 대출은 잘 갚고 있는지, 정착에는 어려움이 없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준식씨도 “정착지원금 지급이 끝나면서 아예 관리가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원이 끝나도 의무영농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실제 농사를 짓고 있는지, 말 그대로 농업경영체만 두고 있는지 1년에 한 번이라도 조사를 해보고 정말 힘든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든 구제책을 마련해달라”라고 당부했다.

실태조사 해보니 … “지원금 지급·대출 상환 기간 연장해야”

정부의 청년창업농 지원정책에 대한 만족도는 전 분야에서 높지 않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농촌진흥청이 2020년도 영농정착사업에 선정된 청년창업농 329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월 시행한 ‘영농정착 실태조사’에서 나온 결과다. 특히, ‘농지 취득·임대 관련 소개 및 알선’ 항목은 5점 만점에 2.42점으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경영자금 마련과 농지를 구하는데 실제 많은 청년창업농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년창업농들이 창농초기 가장 어려움을 겪는 요인은 경영자금(26.3%)과 농지(22.2%)였다. 경영자금 마련을 위한 대책과 농지 문제 해결이 시급한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착단계별로는 ‘정착이후 발전’ 정책에 대한 만족도(2.93점)가 가장 낮았다. 정책이 청년농 유입에만 집중돼 있다 보니 나타난 결과로 보인다.

당시 조사를 진행한 농촌진흥청 코로나19대응 영농기술지원반은 “영농 진입 후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시기를 고려해 영농정착지원금 지원기간을 기존 3년에서 5년으로 늘이고, 대출상환기간을 10년 거치 20년 상환으로 연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속가능한 영농 생활을 위해 농지은행 외 지자체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한 농지 매매·임대차 현황 관리 및 실수요자 매칭 연결 등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농진청이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한 ‘청년농업인 지원정책의 개선방안’ 연구 논문을 보면 경영자금의 확보를 위한 지원정책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연구팀은 조언한다. 연구팀은 “현재 정책자금이 지원되고 있으나, 지원기간이 종료되면 청년농업인의 부채로 전환된다. 이를 해소하고 농촌지역에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높은 소득수준이 요구되지만, 청년농업인이 농장에 재투자하는 것은 실제로 어려운 수준”이라는 점을 짚었다.

농식품부 “종합적인 상황 고려해 개선 추진할 것”

청년농민들은 대출 상환으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농식품부는 이들 개인별 상환 여부를 직접 챙기지는 않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식품부가 개인별 상환 여부를 직접 보지는 않고 지방자치단체와 농협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출 상환유예나 5년 거치 10년 상환 소급적용에 관해서는 “정해진 예산 내에서 사업을 하다 보니 어려운 점이 있다”며 “상환조건 개선에 관해선 금융부담을 줄이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출에 관한 것이다 보니 은행의 입장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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