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동안 한우 키우면서 가장 힘든 시기 ··· 전쟁 영향 커”

  • 입력 2022.05.01 18:00
  • 수정 2022.05.01 21:05
  • 기자명 김한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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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한결 기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국제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사료나 비료값이 급등해 농민들이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경남 고성군 고성읍의 축사에서 한 여성농민이 배합사료를 주고 있다. 한승호 기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국제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사료나 비료값이 급등해 농민들이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경남 고성군 고성읍의 축사에서 한 여성농민이 배합사료를 주고 있다. 한승호 기자

코로나19, 기후위기에 따른 자연재해, 요소수 대란 등으로 지난해부터 국제곡물가격이 오르면서 원료·원자재값도 상승세를 타고 꾸준히 올라가고 있었다. 여기에 지난 2월 발생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상황을 더 악화시켰고, 그 피해는 농민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

지난 3월 시카고선물거래소 선물가격에 따르면 평년 대비 밀 137.7%, 옥수수 102.1%, 보리 72%가 상승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원장 김홍상, 농경연)은 전쟁 후 주요 곡물 수출국의 수출 제한 조치로 인해 흑해 지역 수출 비중이 높은 곡물 가격이 급등했다고 분석했다.

잭 니카스(Jack Nicas) 브라질 뉴욕타임스 국장은 “브라질은 러시아 비료의 주요 수입국이다. 제재가 러시아를 강타하자 브라질 농민들이 비료를 얻는 것에서 가장 먼저 차질이 생겼다”며 “비료가 부족한 브라질뿐 아니라 세계 식량 공급의 중심지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여러 나라에서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전쟁은 세계가 어떻게 먹고 살지에 관해 혼란에 빠뜨렸다”고 말했다.

이어서 뉴욕타임스는 “밀, 옥수수, 보리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갇혀 있고, 세계 비료의 상당 부분이 러시아와 벨라루스에 묶여 있다. 그 결과 세계 식량 및 비료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밀 21%, 보리 33%, 일부 비료는 40%까지 상승했다고 보도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빵·국수 등의 가공식품과 가축이 먹는 사료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사료용 밀과 식용 옥수수의 경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도 상당 부분 수입하고 있다. 농경연에 따르면 한국이 최근 3년동안 수입한 사료용 밀은 125만톤이며 이 중 우크라이나에서 61만톤(48.9%), 러시아에서 18만톤(14.3%)을 수입했다.

흑해 지역에서 나는 사료용 밀과 가공용 옥수수 이외 곡물은 원산지 대체가 가능하지만, 국제곡물 시장에서 밀·옥수수의 공급 감소는 다른 곡물의 가격도 같이 상승시키는 요인이 된다. 이에 따라 농경연은 배합사료의 경우 5.3~10.6%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사료업계 관계자는 “사료에는 주 원료인 옥수수, 소맥, 대두박과 같은 수입산 곡물이 80% 전후로 들어간다”라며 “국제곡물가격이 많이 올라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비료와 달리 사료의 경우 정부 보조가 없어 농민들의 부담이 더 커질 전망이다.

농장주 정광국(61)씨는 “15년동안 한우를 키우면서 역대 최고로 힘든 시기다. 조사료는 30% 정도 올랐고 배합사료의 경우 비율을 조절해서 15~20%만 올랐다. 전쟁의 영향이 엄청 크다. 우리나라는 우크라이나에서 사료용 옥수수 수입을 많이 하고 있진 않은데, 옥수수 수출을 많이 하는 우크라이나가 수출을 못하게 되니 중국이나 미국처럼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하던 나라들이 공급을 못 받게 됐고, 그것이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사료값만 오르고 소비는 안되는데 한우사육두수는 늘고 수입 소고기도 들어온다. 여러 방면에서 피해가 크다. 기름값이 오르면서 물류비용도 올라 수입(건)초가 안 들어온다. 수입초가 막히자 국내산 조사료가 최근에 또 엄청 올랐다. 앞으로 지금보다 더 오를 거라고 하더라”며 씁쓸해했다.

한편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비료 수출국이다. 한국의 경우 무기질비료의 70%를 차지하는 염화칼륨, 인광석, 요소 등 자연광물은 수입으로만 조달되고 있다.

지난달 농경연이 발간한 ‘e-세계농업’에 따르면 요소와 NPK 수출 세계 1위, 칼리와 인산염 수출은 각각 3위와 4위를 차지하는 러시아가 지난달 말 자국의 비료 생산 업체들에게 수출 중단을 권했다.

비료의 주원료가 되는 염화칼륨, 인산암모늄 등 국제원자재는 수급불안에 직면해 있다. 지난달 14일 기준 요소 등 주요 국제원자재 가격이 올 1분기 대비 최고 29.8% 상승했다. 요소는 톤당 887달러로 1분기(697달러) 대비 27.3% 올랐다. 중국의 요소 수출 제한 조치와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금융제재, 유럽 가스가격 급등, 흑해 주요항의 원자재 수출입 중단 등이 원인이다. 

한국비료협회 관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 쪽의 공급이 부족해 전체적으로 수급을 불안정하게 하고 있다. 자원보유국에서 수출을 안 하니 수급이 힘들어져 가격 급등세의 타격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료협회는 전 세계 곡물의 50% 정도가 무기질비료에 의해 생산되고 있는데, 우리나라 식량자급률(45.8%)로 이에 대비하기가 충분치 않다고 밝혔다.

원가상승에 따른 사료값·비료값 부담은 농민들의 몫이다. 이은만 농축산연합회장은 “최근 몇 년 사이 비료값이 120%나 올랐다. 농협에서 취급하는 비료는 80% 보조해준다고 하니 애초에 우려했던 것보단 걱정은 덜었다”면서도 “나머지 비료는 가격이 오른 만큼 부담이 클 것이다. 쌀에 비료 쓰는 시기가 오면 피부로 느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또한 사료에 관해서도 “한우나 양계 쪽 농가들 고민이 크다. 이번에 사료값이 계속 오르다 보니까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포기할 지경까지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축산농가들 사이에선 앞으로 2년 정도까지만 운영할 수 있을 거란 얘기가 오고 가더라”며 “대한민국 농축산업이 어느 곳 하나 호황인 데가 없다”고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다.

고광덕 제주도 품목생산자연합회 사무처장은 “요소수 사태 이후 최근 비료값이 많이 인상됐다. 전년도 실적 기준으로 보조금이 지급되다 보니까 봄 농사짓는 분들은 지원 배정량이 끝나서 보조금 지급이 벌써 완료됐다. 가을에 쓸 비료는 보조금 없이 인상된 가격으로 구매해야 한다. 일부 유기질비료 경우에는 보조금 지원 등이 명확히 정리도 안된 상황이라 농가들이 많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대책을 촉구했다.

한 농민은 “얼마 전 봄 무청에 비료를 뿌리는데 50만원이면 될 걸 75만원 주고 샀다. 농산물 가격도 안 나오는데 이번 기회를 핑계로 기업들이 비료값을 올리려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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