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양각색 … 신자유주의 치부 드러낸 세계 농민들

  • 입력 2022.04.24 18:00
  • 수정 2022.04.24 19:55
  • 기자명 한우준·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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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열린 ‘CPTPP 대응을 위한 농민들의 국제연대’ 토론회에서 각국의 농민단체 활동가들이 온라인 화상 회의 시스템인 줌(ZOOM)을 이용해 각국의 상황을 공유하고 있다.
지난 18일 열린 ‘CPTPP 대응을 위한 농민들의 국제연대’ 토론회에서 각국의 농민단체 활동가들이 온라인 화상 회의 시스템인 줌(ZOOM)을 이용해 각국의 상황을 공유하고 있다.

국제농민연대체 비아캄페시나 동남동아시아와 비아코리아는 1996년 브라질 카라자스 농민 학살 사건을 기억하고 전 세계 농민·노동자 등의 공동체 연대를 위한 4월 17일 ‘국제 농민투쟁의날’을 맞아 지난 18일 ‘CPTPP 대응을 위한 농민들의 국제연대’ 토론회를 개최했다.

본지와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이 함께한 이날 국제토론회는 동시통역을 통해 생중계됐으며, 각국을 대표해 테리 보엠 캐나다 전국농민연합(NFU) 전 회장과 오카자키 슈시 일본가족농운동전국연합회(노민렌) 국제부장, 카밀라 몬테시노스 칠레전국농촌및원주민여성연합(ANAMURI) 활동가, 이근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등이 참여했다.

송원규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이 좌장을 맡은 이날 토론회에서는 국내 농업계가 당면한 최대 현안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대한 각국의 대응과 연대 방안 등을 공유한 뒤 앞으로의 투쟁 방향을 논의하는 데 주력했다.

정리 한우준·장수지 기자, 사진 한승호 기자

사례발표 - 캐나다 (테리 보엠 전국농민연합 전 회장)

CPTPP, 종자에 대한 농민 권리 박탈시켜

캐나다는 CPTPP에 늦게 합류했고 TPP 탈퇴 전 당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협상 참여를 위한 조건으로 UPOV91에 부합할 것을 요구했다. 캐나다에선 그간 곡물 생산자 관리법이라는 UPOV78을 적용했지만, CPTPP 가입을 위해 UPOV91로 바꿔야 했고 관련된 흐름 속에 이를 반대하는 싸움이 많이 펼쳐졌다.

UPOV91은 소수의 기업이 전 세계 종자 시장을 장악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UPOV91 이전의 정부는 자국의 종자를 보호할 수 있지만 UPOV91 이후부턴 지적재산권 문제로 기업에 많은 비용을 지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에 UPOV91은 종자를 보존하고 팔고 교환하며 재사용할 수 있는 농민의 권리를 다 없애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전국농민연합에서는 이를 당연히 반대했다. 하지만 당시 캐나다 정부에서는 UPOV91 규칙을 철저히 받아들이고자 했다. 정부에서는 농민에게 더 많이 지원해주겠다는 말만 했다. 농민들을 현혹하고 설득하기 바빴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생산자인 농민의 권리가 철저히 무시되는 것도 모자라 고유한 권리를 잃게 되는 상황이다. 큰 문제다. 이러한 협정들로 인해 다국적기업은 시장을 장악하고 이러한 다국적기업과 손잡은 새로운 기업들은 종자를 구매하고 다국적기업에 로열티를 주도록 하는 법적 메카니즘을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것을 관행화시켜서 계속 지켜지도록 로비도 하고 있다. 이게 바로 UPOV91과 CPTPP의 결과다. 이 경우 종자와 관련된 모든 시스템에 개인적인 과세가 부과되며, 이는 본질적으로 농장에 부담을 준다.

이밖에도 자유무역협정과 관련한 여러 문제가 있다. 종자의 지적재산권은 단지 한 방면에서 바라본 문제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과거 정부는 지역먹거리에 우선권을 주고 지역 농민을 크게 장려할 수 있지만 CPTPP 이후에는 지역농산물에 우선순위를 줄 수 없고 외부에서 그 농산물을 들여와야 한다. 이처럼 CPTPP와 관련된 대부분의 협정은 기업에 더 많은 것들을 주고 개개인의 대중들은 시스템 속에서 움직임을 제한시켜 버리게 된다.

이러한 협정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이 과정에서 정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어떤 규제가 실행돼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전국농민연합은 이러한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

 

사례발표 - 일본 (오카자키 슈시 일본가족농운동전국연합회 국제부장)

“일 집권당, 피해 없을 거라며 허황된 대책 내놔”

2017년 1월 트럼프가 TPP에서 빠지겠다고 발표했고, 굉장히 미국에 충성스러웠던 일본 아베정부가 이어서 협상을 주도했다. CPTPP에선 투자자 국가에 대한 제소, 장기 지적재산권 등과 관련된 22개의 독소조항이 유예의 형태로 남아있게 된다. 이 내용은 미국이 참여하게 되면 다시 살아날 것들이다. 협상 과정에서 많은 국가가 독소조항의 삭제를 요구했지만, 의장국인 일본정부는 이를 철저하게 묵살했다.

농업 관련해선 원래 TPP의 내용과 거의 유사하다. 미국의 탈퇴에도 불구하고 일본 농업에는 같은 피해를 주게 될 것으로 보인다. GM작물 생산을 장려하는 내용이 담기며, 또 SPS(위생 및 검역조치)를 약화시키고 여기에 광우병에 대한 규정 완화도 포함되므로 식품 안전성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지난 2010년 일본 농무성은 일본 농업시장이 완전 개방될 경우 식량자급률은 39%에서 14%로 떨어지고, 쌀 생산량은 90%가 감소, 밀과 설탕은 아예 생산하지 않게 된다는 내용의 ‘일본농업 사망시나리오’를 발표했다. 이것은 곧 현실이 될 수도 있다.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칠레,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과 추가협상이 추진되고 있다.

일본 정부의 대응은 굉장히 기만적이다. ‘피해예방조치’를 취할 것이기에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EU·미국과의 FTA 그리고 CPTPP 이 3대 협상이 농업생산을 약 3,700억엔 정도 감소시킬 것이며 이것은 전체 생산액의 4%가 안 되는 굉장히 작은 규모라 이야기한다. 하지만 스즈키 도쿄대 교수는 단지 CPTPP로만 약 1조2,600억엔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평가했고 이는 전체 농업생산량의 14%에 해당한다. 우유와 과일을 제외하고는 지난 2017년부터 2020년까지 거의 모든 품목에서 생산량이 감소했는데 3대 협상이 주원인이다. 일본 정부 역시 이미 협약발표 뒤 1~2년 새 피해가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발표한 피해예방조치 중 의미있는 것은 가격 안정에 대한 조치 하나뿐이고, 나머지는 가족농을 몰아내는 규모화에 관련된 내용, 또 다른 하나는 일본이 5조엔을 수출하는 세계 3대 농산물 수출국이 되겠다는 허황된 내용이다.

일본인들은 보통 시위를 하지 않지만, 이에 대한 야당과 국민의 공동투쟁은 현재 전례 없는 수준으로 벌어지고 있다. 평화헌법 개정에 반대했던 과거만큼이나 광범위하다. 일본인들은 한-미 FTA 반대투쟁과 그 때의 한국을 본받아 일본민중포럼을 출범했다. 이 안에는 농업, 어업, 협동조합, 시민사회, 의료, 여성, 대학생, 변호사 집단이 함께하고 있으며 일본의 가장 큰 시민사회단체로 발전한 상황이다.

 

사례발표 - 칠레 (카밀라 몬테시노스 전국농촌및원주민여성연합 활동가)

칠레, 식량 수출국에서 수입 의존국으로

모든 신자유주의 정책이 가장 광범위하게 적용됐던 가장 첫 번째 나라가 칠레다. 신자유주의의 시험 무대였던 셈이다.

칠레는 시장이 열리며 모든 분야에 이러한 개방적 경제를 갖게 됐다. 과거에는 수출에 집중했다면 신자유주의 정책이 정착된 이후부턴 식량주권이 약화돼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나라로 전락했다.

칠레는 현재 60개 국가와 40개의 FTA가 체결된 상태다. 특히 TPP와 CPTPP는 칠레의 농업에 더욱 큰 피해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농업의 많은 부분이 개방돼 있기에 칠레 정부는 TPP와 추가적인 CPTPP가 더이상 해를 가하지 않을 거라 얘기했지만, 농업 현장은 전혀 다른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CPTPP와 관련된 아주 주요한 문제 중 하나는 UPOV91 발효로 인한 지적재산권의 침해다. 소농들의 문화 자체를 망가뜨릴 뿐만 아니라 많은 분야에 해를 끼칠 게 분명하다. 지금보다 지적재산권 문제가 더욱 심해질 것이고, 국가 기관들 또한 많은 제한을 받게 되며, 국가의 주권이 상실되는 심각한 상황까지 야기될 수 있다. 이에 2012년 칠레에서 진행했던 투쟁에는 UPOV91 적용을 반대하는 것이 주요했다.

또 자체적으로 진행한 통계·연구를 통해 지금의 칠레 농어업이 현재 얼마나 많은 식량을 수출하는지와 상관없이 CPTPP가 체결될 경우 앞으로 계속 적자를 낼 거란 결과도 나왔다. 이는 칠레를 계속해서 가난으로 몰아넣게 될 것이다.

전국농촌및원주민여성연합(ANAMURI)은 2014년부터 약 8년간 광범위한 투쟁을 진행 중이다. 사회 각층의 사람들에게 당시 TPP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또 자유무역협정이 어떻게 맺어지고 이를 통해 농민뿐만 아니라 국민의 삶이 어떻게 피폐되는지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정부와 계속 협상해 TPP의 비준을 막아냈다. TPP와 CPTPP는 서명 이후 의회에 비준이 돼야 하는데 ANAMURI가 그걸 막아낸 거다. 현재 칠레 정부에서도 CPTPP 비준은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

칠레 농민들의 가장 큰 승리는 CPTPP의 흐름을 막아낸 것이고 최소한 자유무역협정의 의미가 무엇인지 국민에게 알리며 대중의 인식을 고쳤다는 것이다. 앞으로 더 나아가 싸울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 것이다. 계속 싸울 힘과 동력이 있다는 게 가장 큰 성과다. 앞으로 다른 나라와의 모든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고 계속 싸워나갈 것이다.

 

사례발표 - 한국 (이근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한국, CPTPP 아니어도 이미 영농 지속 어려워”

최근 한국정부가 CPTPP 가입을 결정했다. 결정 이전에도 한국은 이미 많은 나라와 FTA를 맺고 있었다. 현재 한국은 CPTPP, 즉 메가FTA가 추진되지 않더라도 이미 생산비가 폭등하고 있다. 작년부터 시작해 올해까지 인건비, 농약, 비료, 각종 농자재의 가격이 최하 25% 이상 급증했다. 이미 이 상태에서도 농민이 농사를 지속하기에 어려운 게 현실이다. 농업에 대해 어떤 새로운 질서나 방법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지속 영농이 어려운 상황이다. 거기에 CPTPP까지 추진하고 있다니 더 걱정이다.

아직 완벽하게 내용을 알 순 없지만, 농산물은 96.1%, 수산물은 100% 개방한다고 이미 발표됐고 피해 규모도 매년 4,400억 정도가 예상된다. 가입신청을 한 국가들, 예로 중국 등이 가입할 경우 2조원까지도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되고 있다. 또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이나 다른 나라의 오염된 농축산물이 들어올 수 있게 되는 등 검역주권까지 포기하는 일이 생길 것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과 함께 운동본부를 지속 확대해서 반대투쟁을 진행할 계획이다. 지역별로는 대책위 구성을 마쳤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이미 지난 13일 농어민 1만5,000여명이 모인 집회를 통해 투쟁이 진행됐다.

앞서 일본이 다른 나라와 협정을 맺을 때 호주에 양보했던 쌀 8,400톤처럼 우리도 모든 농산물이 개방될 것으로 보고 있고 기가입된 나라들이 이를 요구할 것으로 본다. 일본이 대만에 요구했던 후쿠시마산 농수산물 수입요청도 잘 알고 있으며 혹시나 방사능 오염물이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한다. 어민들은 물고기를 잡거나 양식 할때 면세유 등에 보조금이 있는데 이것도 100% 끊긴다는 우려가 있다. 또 한국의 축산물 가격은 높은 편이라 호주의 축산물이 들어왔을 때 축산농가 또한 막대한 피해를 볼 것이다.

폭등하는 농자재 값 때문에 이미 어려운데 외국산 농산물이 100% 가깝게 수입이 들어온다고 하면 한국농업은 더 이상 버텨내기 어렵다. 우리는 가입 중단요청을 계속할 것이고, 실제로 가입의 실행이 안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대응하고 있다.

세계의 농민들이 상황을 공유하고 함께 대응했으면 좋겠다. 이미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농업과 어업을 좀 더 공공적 성격에서 계획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많이 생산해서 싸게 공급하는 게 아니라 적정량을 생산해 실제로 그 나라의 농어업이 유지될 수 있게끔 하는 방안을 함께 고민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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