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양파 수급정책에 농민은 없다

자동발동 약속 어긴 쌀 시장격리, 정부정책 부재 증명
양파 수급대책 ‘무능 혹은 뻔뻔’ … 폭락 부채질 우려

  • 입력 2022.03.06 18:00
  • 수정 2022.03.06 20:05
  • 기자명 권순창·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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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한우준 기자]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2021년산 쌀 시장격리 역공매방식 최저가 입찰 대규모 유찰사태에 따른 전국농민대회’에서 농민들이 국회 앞 도로 안전지대에 톤백 200여개를 쌓은 뒤 역공매 최저가 입찰 등을 규탄하는 현수막을 매달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2021년산 쌀 시장격리 역공매방식 최저가 입찰 대규모 유찰사태에 따른 전국농민대회’에서 농민들이 국회 앞 도로 안전지대에 톤백 200여개를 쌓은 뒤 역공매 최저가 입찰 등을 규탄하는 현수막을 매달고 있다. 한승호 기자

쌀과 양파는 각각 한 해 농사의 끝과 시작을 상징하는 우리나라의 주요 농산물이다. 하지만 2021년산 쌀과 2022년산 양파가 모두 수급불안에 처했음에도 정부의 수급정책은 일관되게 농민을 등지고 있다. 정부의 농업홀대 기조, 특히 농림축산식품부(장관 김현수, 농식품부)의 정체성 상실 문제가 여실히 드러난다.

쌀 시장격리는 6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농업계 최대 이슈다. 2020년 개정된 「양곡관리법」은 △쌀 초과생산량이 신곡수요량의 3% 이상인 경우 △수확기 가격이 평년가격보다 5% 이상 하락한 경우 시장격리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쌀 초과생산량이 신곡수요량의 8%를 넘었음에도 정부는 시장격리를 차일피일 미뤄왔다.

시장격리를 ‘할 수 있다’는 규정 자체는 임의발동을 의미하지만, 당초 입법 과정에선 자동발동이 숱하게 암시된 바 있다. 변동직불제 폐지의 대안으로 고안된 ‘자동시장격리제’가 이 제도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국회 개정안의 입법취지에도 ‘변동직불제 폐지에 따른 농가 불안 해소’가 명기돼 있으며 농식품부 스스로도 당시에 ‘자동’이라는 말을 강조한 바 있다. 이제와서 자동발동을 부정하고 임의발동을 주장하는 건 기만적 소지가 다분하다.

더욱이 정부는 지난해 말 뒤늦은 시장격리를 결정하면서 수매방법으로 역공매(최저가 입찰)를 택했다. 쌀값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시점에 시장격리를 하면서 추가로 떨어뜨릴 장치를 고안한 셈이다. 실제로 10월 초 정곡 20kg 5만6,803원이었던 산지쌀값은 지금까지 14회의 통계청 순별 조사에서 한 번의 반등 없이 계속 하락, 최근 5만원선까지 떨어졌으며 이번 정부 역공매 평균입찰가격은 정곡 20kg로 환산 시 4만6,216원(유찰률 27.4%)이다.

5만원의 산지쌀값은 평년에 비해 낮은 수준은 아니지만, 그동안의 쌀값 자체가 왜곡돼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불안정한 가격이다. 농민들이 요구하는 ‘밥 한공기 300원’에 해당하는 가격은 정곡 20kg 6만원이다. 정상적인 시장격리로 5만4,000원대의 가격만 유지됐어도 농민들은 ha당 100만원 이상의 소득지지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농민들의 불안감이 큰 문제다. 정부는 ‘변동직불제의 대안’이라는 제도취지를 자의적으로 부정하고 물가관리 용도로만 시장격리제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변동직불제 시절의 ‘목표가격’이라는 최소한의 기준도 없이 농민들의 운명을 정부의 주관에 내맡겨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올해 이미 여실히 드러났듯, 정부의 주관은 농민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

양파 농가들은 좀더 절박하다. 전체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감소할 전망이지만 2021년산 재고량이 크게 늘었고 조생양파 재배면적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조생양파 수확기에 맞물려 kg당 400원대의 대폭락이 현실화된 상황이다. 정부는 저장양파 2만톤 출하연기와 제주 조생양파 44ha 출하정지로 대응하고 있다.

당장 폭락이 닥쳤음에도 출하연기 위주의 소극적 대응에 농민들이 발을 구르고 있다. 수치에 함몰된 소극적 대책이 그동안 예외없이 폭락을 심화시켜온 데다 올해는 코로나19 소비감소 변수까지 가속화되고 있다. 농민들은 저장양파 2만톤 폐기, 조생양파 200ha 이상 단계적 폐지 등 선제적인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특히 정부의 출하연기 대책은 감모율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 저장양파를 5월까지 보관했다간 환경에 따라 절반 이상의 감모가 발생할 수 있으며 제주 조생양파 역시 출하적기를 놓치면 외피가 흑화되고 뿌리가 끊어지는 성질이 있다.

감모가 심해진다면 수급상황은 예상보다 개선될 수 있지만, 보상의 적정성이 문제다. 저장양파에 최대 kg당 200원, 조생양파에 평당 9,000원대(폐기 기준) 보상이 거론되고 있는데, 그 자체로도 논란이지만 감모율을 따지면 더더욱 현실성이 없는 액수다. 정부가 감모율을 산입하지 않았다면 무책임한 대책이며 감모를 내심 기대했다면 농가에 대한 부당한 책임 전가로 볼 수 있다.

정부는 양파 의무자조금 출범을 계기로 농민들과 협의를 강화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여전히 일방적인 수급대책이 진행되는 모습이다. 당장 조생양파가 피해를 면치 못할 전망이며 중·만생양파까지 장기 폭락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팜에어·한경의 빅데이터·AI 예측에 따르면 올해 7월 양파 도매가격은 kg당 270원이다

 

 

전 축종으로 번지는 축산농가 대정부투쟁

 

문재인정부 말년 농정이 ‘파국’으로 평가받고 있는 까닭엔 축산업계와의 불통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단일 축종 가운데서는 낙농가와의 대결이 가장 큰 소음을 냈으며 파열음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8월 유업계가 이미 확정 원유가격 인상안을 사실상 거부했고, 정부가 이를 받아들여 ‘낙농산업 개편’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생산자들의 의견이 철저하게 무시된 탓이다.

이 과정에서 농식품부가 정부안의 핵심 내용을 안건으로 하는 낙농진흥회 이사회 개최를 지속적으로 강행한 것은 낙농가들이 가장 분개했던 부분이었다. 특히 이 가운데 지난해 12월 2일과 22일에 열린 두 번의 이사회는 쟁점 사안에 대한 이해관계자 합의를 토대로 낙농산업의 발전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구성했다는 ‘낙농산업발전위원회(지난해 9월~12월)’가 채 종료되기도 전에 소집된 것이었다.

낙농가들은 정부 스스로 세운 절차상 의견 개진이 마무리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정부안만을 내건 이사회를 지속 소집하는 것에 대해 “언론을 통해 (불참할 수 밖에 없는) 생산자 반대 프레임을 씌우고 정부를 절대적인 선(善)인 것처럼 포장할 것이 뻔하다”라고 예상했고, 실제로도 정부와 낙농진흥회는 이를 대표 사례 삼아 낙농진흥회 의사 결정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결국 정관 강제철회를 통해 개편이 강행되자 낙농가들은 김현수 농식품부 장관을 직무남용죄로 검찰에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방역 책임을 농가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도 양돈·가금 농가를 중심으로 빗발치고 있다. 방역 강화를 명목으로「가축전염병예방법」,「축산법」등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축산농가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개정된 내용 역시 국가보다는 농가의 책임 위주로 구성돼 있으며 이를 따르지 않았을 시 집행되는 처벌 역시 무거워 대정부 투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축산관련단체협의회는 지난달 25일 성명에서 “농정독재자 김현수의 축산말살 광증(狂症) 치료가 어렵다면 우리는 이미 농성투쟁 중인 낙농인들을 비롯한 250만 농민과 연대해 ‘장관 파면 촉구, 축산말살책 폐기 생존권 투쟁’ 극약처방을 할 것을 천명한다”라며 “축산농가를 농정의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선택지는 투쟁 단 하나”라고 강조했다.

 

지난 16일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농정독재 철폐, 낙농기반 사수 낙농인 결의대회’에서 이승호 한국낙농육우협회 회장이 삭발을 감행하고 있다. 한국낙농육우협회 제공
지난 16일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농정독재 철폐, 낙농기반 사수 낙농인 결의대회’에서 이승호 한국낙농육우협회 회장이 삭발을 감행하고 있다. 한국낙농육우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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