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미국선녀벌레라도 집어삼킬 의지

  • 입력 2022.01.16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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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요즘 농민·먹거리 시민사회가 한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국가 책임 농정’이란 표현을 조상들이 들으면 어리둥절할 게 분명하다. 고대사회에서 농정(農政)은 왕을 비롯한 국가가 책임지는 게 너무나 당연한 분야였던 만큼, “농정이 국가의 책임영역이 아니기라도 했냐”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질 게 분명하다. 우리는 그 질문을 받고 우물쭈물할 게 분명하다.

역사에 어느 정도 관심 있는 사람들은 중국 당 태종 이세민이 농지에서 메뚜기가 창궐하는 걸 막고자 “이놈아! 백성들의 곡식을 갉아먹지 말고 내 심장이나 갉아먹어라!”라며 메뚜기를 집어삼켜 정말로 메뚜기 창궐이 멈췄다는 야사, 최근 한 드라마의 주인공이기도 한 조선 태종 이방원이 가뭄 극복을 위해 제물이 되길 자처해 불 피운 장작더미에 오르니 비가 내렸다는 야사를 기억할 테다(그러고 보니 둘 다 태종이다).

물론 농업이 국가경제의 근본이던 시대였기에 가능한 일화들이다. ‘스마트’한 기계를 만들고, 전기차를 만드는 게 국가경제의 근본이라는 21세기엔 호랑이 흡연하던 시절 이야기마냥 취급될 테다.

그러나 저 때나 지금이나 농업으로 백성의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건 똑같다. 그럼에도 언젠가부터 국가는 너무나도 당연한 국가 책임사업이었던 농업을 시장에서 알아서 하라고 떠넘겨버렸다. 거의 모든 농산물 가격이 시장영역 내에서 연쇄 폭락해 농민들의 생존권이 위험해져도 국가에선 이렇다 할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반면 농산물 가격이 조금만 오르면 ‘물가안정’을 핑계로 외국으로부터 먹거리를 수입해 오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농산물 수급안정을 위한 농림축산식품부의 계약재배 관련 예산은 2018년 2,793억원에서 2020년 2,303억원으로, 비축지원 예산은 2018년 5,643억원에서 2020년 5,261억원으로 줄었다. 국가는 쌀값 폭락 방지를 위한 쌀 시장격리를 촉구하는 농민들의 목소리도 무시하다가, 농민들이 혹한 속에서 사생결단의 각오로 싸우는 모습을 보이자 그때서야 생색내듯 시장격리 입장을 밝혔다.

세계는 코로나19, 기후위기라는 양대 위기 속에서 농업을 국가의 근본사업으로서 재확립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북녘에선 올해 사실상의 국가 핵심과제를 ‘농촌문제 해결’로 내세웠다. 북측 조선노동당은 ‘농업부문에 대한 국가적 투자’를 계통적으로 늘리기로 결정했다.

우리나라 농민들은 새 대통령이 될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국가 책임 농정 실현’, ‘공공농업 실현’을 주장하고 있다. 농민들이 새롭게 만들어내려는「농민기본법」의 핵심내용도 ‘국가 책임 농정’이다. 5,000년 우리 역사에서 상식과도 같았던 국가 책임 농정. 이 상식의 복원을 약속하기 위해 메뚜기, 아니, 미국선녀벌레라도 집어삼킬 의지가 있는 대통령 후보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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