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발등의 불인데 … 산단은 수십만평씩 농지를 삼킨다

  • 입력 2021.12.19 18:00
  • 수정 2021.12.19 18:24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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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전국산업폐기물매립장대응대책위원회 발족식 및 주민 피해 증언대회’에서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가 기업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산업폐기물매립장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9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전국산업폐기물매립장대응대책위원회 발족식 및 주민 피해 증언대회’에서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가 기업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산업폐기물매립장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산단 찬양’ 지속하는 충북·충남, 올해 새로 지정한 계획만 ‘350만평’

2010년대 이후 공장을 짓기 위해 갈려 나가는 녹지의 면적은 매년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농지는 기후위기 시대 식량 생산의 기반이자, 현장에서 생산을 담당할 농촌 마을공동체의 주요한 토대라는 점에서 절대 가볍게 볼 수 없는 가치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공장만 지으면 돈 벌기 좋은 땅’이라는 자본주의적 논리 앞에 무차별적으로 파괴되고 있다.

통상 임야 다음으로 지가가 저렴해 건설사가 분양 차익을 남기기에 매우 용이할 뿐만 아니라, 일정 면적 단위로 경지정리가 잘 된 농지는 토목공사에 들여야 할 품, 즉 비용도 적다. 최근 난개발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태양광발전소가 주로 개발이 쉬운 농지를 중심으로 확산이 시작된 흐름과도 일맥상통한다.

첨단 제조업 육성을 핵심 도정 삼아 “산업단지를 매년 100만평 이상 조성해 나가겠다”고 공언(지난달 17일 이시종 도지사 온라인 브리핑)한 충청북도의 한 지역 사례만 살펴봐도 광범위한 농지전용 실태를 인식하는 데 무리가 없다. 민선 5~7기 도정을 돌아보며 “지금까지 103조원, 7,606개사를 유치하고 27만명의 고용을 창출하는 등 (산업단지는) 충북 경제성장의 핵심적인 원동력이 됐다”고 자부하고 있는 충북도는 토지수용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며 ‘산업단지 규제완화 특별법’ 제정까지 청와대에 건의했을 정도로 제조업 유치에 적극적이다.

지난 2010년대 초 준공된 충북권 기업도시 ‘서충주신도시’를 집중해 들여다보면, 그 주변에서만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질 예정인 농지(논·밭·과수원·목장)가 100만평 규모에 육박한다. 약 120만㎡ 규모의 내부 산업용지를 포함한 신도시 조성에만 91만㎡(약 27만5,000평)의 농지가 쓰인 데 이어, 도시 조성에 발맞춰 남서쪽 외곽에 준공된 ‘충주첨단산업단지’ 또한 84만㎡(약 25만4,000평)가 넘는 농지를 수용해가며 조성됐다.

이후 지난 2016년 서쪽 경계에 추가 준공된 ‘충주메가폴리스산업단지’는 농지 27만6,487㎡(약 8만4,000평)를, 올해 계획승인을 받아 내년부터 도시 북측에 조성될 ‘충주드림파크산업단지’는 농지 56만3,158㎡(약 17만평)를 삼켰다. 최근엔 기존 첨단산업단지 동편에 67만평 규모의 초대형 산업단지 ‘바이오헬스 산업단지’까지 추가로 추진되고 있다.

게다가 서충주신도시 바깥에도 이미 40만8,708㎡(약 12만4,000평)의 농지를 수용한 ‘동충주산업단지’와 북충주IC인근에 드림파크산업단지와 비슷한 규모로 조성되는 ‘북충주IC산업단지’까지 동시에 추진되는 등 충주에는 그야말로 우후죽순으로 산단이 생겨나고 있다.

충주뿐만이 아니다. 올해 초 국토교통부의 최종심의를 통과한 전국 지자체의 신규 산업단지 지정계획은 총 98개, 면적으로는 2,760만7,000㎡(약 835만평)였다. 지정계획 승인은 실시계획 수립으로 넘어가기 위해 마지막으로 거치는 단계로, ‘계획’의 마지막 지점이랄 수 있다. 이 지정계획들의 상당수가 경기, 충북, 충남에 집중돼 있는데, 이 시점에서 더욱 눈여겨봐야 할 것은 ‘증식’의 속도다.

당시만 해도 각각 11개, 15개의 계획을 승인받았던 충청북도와 충청남도는 그로부터 1년이 지난 현재까지 각 10개, 도합 20개의 산업단지 계획을 추가로 고시했다. 연초와 비교했을 때 지정계획 면적을 기준으로 충북도는 약 190만평, 충남도는 160만평이 증가했다. 1년 새 두 지자체에서만 350만평을 추가로 계획한 셈이다.

앞으로 산업단지가 우리 국토를 차지하는 면적이 얼마나 가파르게 증가할지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자, 선례를 생각했을 때 이 면적 가운데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30% 이상을 농지에서 획득하리란 것을 쉬이 예측해볼 수 있다.

‘쓰레기 돈벌이’ 산폐장, 산업단지 활용하니 손쉽네

자본들이 산단을 통해 수익을 낼 수 있는 창구는 분양 차익뿐만이 아니다. 산업단지 내 산업폐기물매립장 설치가 용이한 점을 이용해 대용량의 처리시설을 짓고, 산업단지나 지역과 전혀 상관없는 외부의 쓰레기까지 들여와 처리하며 수익을 내려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자칫하면 땅을 빼앗기는 것으로도 모자라 쓰레기로 인한 지속적 피해까지 감내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폐기물관리법’상 폐기물은 생활폐기물과 사업장폐기물로 나뉘는데, 환경부의 ‘2019년 전국 폐기물발생 및 처리현황’에 따르면 전체 폐기물의 11.7%를 차지하는 생활폐기물은 그 가운데 90.57%를 공공에서 처리한다. 반면 사업장폐기물 가운데 건설폐기물(공공처리비중 95.9%)을 제외한 나머지 폐기물은 대부분이 민간에서 처리하고 있다.

공공부문의 개입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틈을 타 사업장폐기물 처리업은 건설자본 이윤추구의 장으로 변질됐다. 공익법률센터 농본(대표 하승수 변호사)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충주메가폴리스산업단지 내에서 산업폐기물매립장을 운영하는 ㈜센트로는 2017~2020년 4년간 1,098억원의 매출과 659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해 이 기간 순이익률이 무려 60%에 달했다.

총 20억원의 자본금을 출자한 건설 자본들은 같은 기간 422억원의 배당금을 받았으니 20배 이상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전북 군산 군장산업단지에서 산업폐기물매립장을 운영하는 케이비아이구인산업은 지난해 23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는데, 미처분이익잉여금만 1,731억원에 달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제는 이 수익을 노려 처음부터 폐기물매립장을 고려해 산단을 추진하거나, 편법으로 처리용량을 늘리려는 시도까지 발생하고 있다. 연간 폐기물 발생량이 2만톤 이상, 조성면적이 50만㎡ 이상인 산업단지를 조성할 경우 ‘폐기물처리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한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촉진 및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을 십분 활용하는 것이다.

최초 계획보다 매립용량을 약 10배 증가시켜 현재 2차 주민투쟁 및 소송전까지 벌어지고 있는 전북 김제 지평선산업단지 내 매립장, 마찬가지로 4배 이상 용량을 늘린 충남 서산 오토밸리산업단지 내 처리장 등이 대표적인 예다.

쉬운 인·허가 관련 법 개정 없인 농촌 희생은 계속될 것

산업단지가 이토록 무분별하게 건설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산업단지 인·허가 절차 간소화를 위한 특례법(산단특례법)’과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토지보상법)’. 그리고 상술했듯 농업진흥지역을 너무나 쉽게 내주는 ‘농지법’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2008년 이명박정부는 청와대가 직접 진두지휘하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를 도구로 산단특례법 제정을 밀어붙였다. 통상 3년 이상 걸리던 산업단지 인·허가를 빠르면 6개월 이내에도 끝낼 수 있도록 각종 절차를 생략하거나 축소했고, 이 법으로 인해 지자체들은 동일한 역량과 시간을 들이고도 훨씬 많은 수의 산업단지 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 됐다.

개정 직후부터 이미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는데, 당시 국토해양부 자료에 따르면 개정 이전 10년간 지정된 산업단지 면적(142.8㎢)보다 개정 직후 3년간 지정된 산업단지 면적(150㎢)이 더 컸다.

‘공공성’과는 접점을 찾기 힘든 골프장이나 테마파크 단지 등을 공공시설로 인정해 개정 요구가 빗발치고 있는 토지보상법도 산업단지 남발에도 일조하고 있다. 산업단지는 대부분 민간기업 주도로 추진되고, 지자체나 공기업과 특수목적법인(SPC)을 구성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지자체의 지분은 많아야 20%에 그친다. 산업단지로 인해 발생되는 이득이 지자체의 호주머니로 돌아가 다시 주민들에게 환원될 여지가 매우 적다는 뜻이다.

반면 강제이주·환경오염 등 산업단지로 인한 극심한 주민 피해사례가 매년 쌓여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법은 산업단지가 공공성을 갖고 있다며 건설업자들에게 토지수용 권한을 내주는 상황이다.

이와 별도로 산업폐기물처리장의 경우엔 ‘폐기물관리법’에 국가 관리 책임 개념 등 공공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더는 기업자본과 도시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산업폐기물 처리사업에 농촌을 희생양 삼아선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하승수 농본 대표는 지난 9일 전국 각지의 주민대책위가 힘을 모아 설립한 ‘전국산업폐기물매립장대응대책위원회’의 발족식에서 “지방자치단체 및 그 출연기관 등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주체만이 산업폐기물매립장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또 ‘쓰레기는 발생지에서 처리한다’는 원칙을 바로 세울 필요가 있다며 “폐기물의 권역간 이동은 원칙적으로 제한해야 한다”라고도 주장했다. 하 대표는 “대책위 구성이 완료되면 대선 후보들에게 개정안을 제안하고, 법안이 실제 입법될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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