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떠난 농촌, 공장과 쓰레기가 채운다

  • 입력 2021.12.19 18:00
  • 수정 2021.12.19 18:33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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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전북 김제시 백산면 부거리 일원에 조성된 김제지평선일반산업단지 모습. 사진 아래쪽 부채꼴 모양의 공터가 산업폐기물매립장 건설 부지다. 현재 김제 주민들은 당초 계획보다 폐기물처리용량을 10배 이상 늘린 운영업체를 상대로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한승호 기자
전북 김제시 백산면 부거리 일원에 조성된 김제지평선일반산업단지 모습. 사진 아래쪽 부채꼴 모양의 공터가 산업폐기물매립장 건설 부지다. 현재 김제 주민들은 당초 계획보다 폐기물처리용량을 10배 이상 늘린 운영업체를 상대로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한승호 기자

탄소중립 실현이 선택 아닌 의무가 된 시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국민들이 실생활 영역에서 탄소 발생을 줄일 수 있도록 각종 권고를 만들고, 필요한 경우에는 규제를 강화하는 데 여념이 없다. 그런데 다른 한 손으로는 탄소중립 실현에 있어 보존이 마땅한 농지를 매년 수도 없이 파괴하고 있다.

최근 사회적 화두로 등극한 ‘농촌 태양광발전소 난립’과 더불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커다란 언행불일치가 하나 더 있으니, 지금 이 순간에도 건설기업들이 지방자치단체의 열렬한 환대를 등에 업고 농촌에 조성하고 있는 산업단지와 산업폐기물처리장이다. 상대적으로 인구와 자원 조달이 용이한 도농복합시는 말할 것도 없고, ‘생거진천’이나 ‘청정괴산’ 등의 구호를 외치는 농업특화지역의 농촌들마저 그 이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공장지대로 인해 농토 상실과 환경오염 피해에 직면하고 있다.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사례들 하나. 하나 모두 기막힌 내용뿐이다. 충북 진천군에 조성되는 ‘진천테크노폴리스산업단지’는 23만평(77만4,015㎡) 규모로 착공을 앞두고 있는데, 예정부지 내 약 10만평(32만2,336㎡)에 이르는 이곳 농지는 전부 농업진흥구역이었다. 부지 내 유일한 마을 ‘관지미’의 주민들이 이점을 강조하며 농림축산식품부를 설득해 한 차례 착공을 지연시켰으나, 농식품부는 결국 지난 11월 이 일대 농업진흥구역 일체를 지정 해제하며 지자체와 건설업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농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보전하기 위해 지정한다’는 농업진흥지역 제도의 취지는 이제 농촌에서조차 그 의미를 찾을 수 없을 지경이 됐다.

산업단지는 농지 강제수용을 통한 분양수익 창출뿐만 아니라 수십만 톤의 쓰레기를 들여 매립하고 돈을 받는 ‘쓰레기 장사’에도 유용하다. 농촌에 쓰레기를 버리는 대가 일체를 건설자본이 가져가는 데도 법적 문제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수익을 노리고 주변 환경을 무시한 채 산단·산폐장을 들이는 사례도 쌓이고 있다. 유기농업으로 유명한 충북 괴산군 사리면 일대에 계획된 ‘괴산메가폴리스산업단지’는 총 54만평(177만5,937㎡) 부지 가운데 약 37%인 20만평을 농지로 채울 계획인데, 예정부지 내 5곳을 포함해 대상지 반경 2km에 농촌 마을이 17개나 자리하고 있는 농업집중지역임에도 폐기물매립장 건설을 추진했다가 사리면 전체가 나서 투쟁하고 있다.

당초 계획보다 폐기물처리용량을 10배 이상 늘린 운영업체를 상대로 장기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김제지평선산단산폐장반대대책위원회의 박은식 사무국장은 “산단 내부에서 발생한 폐기물만 처리한다고 하면, 이미 산단이 들어온 마당에 누가 더 반대를 하겠나”라며 “외부 쓰레기들이 농촌에 가득 찰 게 분명한데도 정부, 특히 사태의 원인인 지방자치단체가 소극적으로 나서는 현실이 매우 답답하다”라고 토로했다.

피해 주민들은 산업단지와 폐기물처리장 사업을 ‘제2, 제3의 대장동’이라 부른다. 농촌에 강제로 공장을 지어 자본의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도시에서 흔히 벌어지는 재개발아파트 투기와 다를 바 없다고 본 것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관련 법안들의 개정 요구가 이미 이번 정권 출범 이전부터 제기됐지만,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기후위기가 본격적으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이후에도 자본의 농촌 지역 잠식에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그린뉴딜’, ‘대통령직속 탄소중립위원회’ 등의 간판에서 진정성을 찾지 못한 농민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외로운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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