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차에도 여전한 현장 괴리감 … PLS는 탁상행정 대표 사례?

  • 입력 2021.09.19 18:00
  • 수정 2021.09.19 20:07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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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농약허용물질목록관리제도(PLS)가 전면시행된 지 3년차에 접어들었지만 농민들은 여전히 PLS로 인한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 전남 나주시 세지면의 배밭에서 한 농민이 SS기로 농약을 살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약허용물질목록관리제도(PLS)가 전면시행된 지 3년차에 접어들었지만 농민들은 여전히 PLS로 인한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 전남 나주시 세지면의 배밭에서 한 농민이 SS기로 농약을 살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최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에서는 코로나19 등 농산물 비대면 거래 증가에 대응한 온라인 거래 농산물의 출하 전 잔류농약 검사(안전성 조사) 강화를 예고했다. 기존 오프라인 거래 농산물 검사와 별개로 온라인 거래 농산물의 출하 전 안전성 조사를 확대·실시하겠단 것이다.

현재 안전성 조사는 생산·유통·판매되는 모든 농산물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으나, 전수조사 개념이 아닌 데다 적지 않은 상당수 농민이 농산물을 직거래로 판매하기 때문에 사각지대가 존재했다.

물론 PLS 전면시행 이후 농약사나 지역농협 경제사업소 등에서 작물에 등록된 농약만 판매하고 농민 대부분 역시 등록 농약만 적정량 사용해 작물을 재배 중이기 때문에 온라인 거래 농산물 안전성 조사를 강화한다고 잔류농약 부적합 건수가 급격히 늘어나진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PLS 제도 자체가 가진 현장 괴리감과 해결 못한 과제 등은 강화되는 안전성 조사와 더불어 다시금 논란거리로 작용될 여지가 있다.

 

여전한 ‘등록 약제’ 부족

PLS 전면시행이 가시화된 시점부터 농민들의 가장 큰 걱정은 단 한 가지, 등록된 약제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등록 농약 부족 문제는 전면시행 3년차에 접어들었음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2019년 PLS가 모든 작물에 적용됐는데 막상 메밀에 쓸 등록 농약이 하나도 없다 보니 지역에 와서 시험도 하고 뭐 여러가지 하긴 했다. 근데 아직도 쓸만한 약은 등록된 게 없다. 메밀밭에 쓸 제초제는 등록된 게 정말 단 하나도 없다. 안 걸리길 바라면서 그냥 여느 제초제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농민들은 부족한 등록 농약의 실태에 대해 체념한 듯한 태도를 보일 정도다.

9월 15일 현재 안전사용기준이 확정된 메밀의 등록 농약은 단 두 품목이다. 흰가루병 방제를 위한 살균제(마이클로뷰타닐 수화제·펜티오피라드 유제)다. 현재 농촌진흥청 농약안전정보시스템에는 일년생 잡초 방제에 쓸 수 있는 제초제 잠정 안전사용기준이 총 15건 등록돼 있는데, 품목과 성분이 동일한 것을 제하면 메밀 재배 농민의 선택지에는 단 두 가지 농약만 남게 된다.

현재 메밀에 설정된 잠정 안전사용기준 113건이 시험·분석을 거쳐 전부 확정된다 하더라도, 품목만 놓고 따지면 사실상 활용할 농약은 15종에 불과하다. 회사와 상표명을 제외하고 같은 품목, 같은 주성분 함량, 같은 작용기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병해충 별로 등록 농약이 다양한 사과·배 등의 주요과수를 제외하고 비교적 소면적 재배되는 과수의 경우 병해충 발생시 활용할 수 있는 농약이 많지 않은 처지다. 자두의 경우 안전사용기준이 확정된 농약으로 △검은점무늬병 △세균구멍병 △잿빛곰팡이병 △잿빛무늬병 △주머니병 △탄저병 정도만 방제할 수 있다. 이상저온 등의 기후변화로 올해 발생이 급증한 주머니병의 경우 4개 품목만이 등록돼 있다. 내성 방지를 위한 교차 살포에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예측 불가능한 기상 여건으로 이전에 발생하지 않거나 발생이 적었던 병·해충의 출현이 잦아진다면 적은 등록 농약으로 대응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농촌진흥청 농약안전정보시스템 화면 갈무리. 9월 15일 현재 메밀에 등록된 농약은 흰가루병 방제용 살균제 단 두 종류에 불과하다.
농촌진흥청 농약안전정보시스템 화면 갈무리. 9월 15일 현재 메밀에 등록된 농약은 흰가루병 방제용 살균제 단 두 종류에 불과하다.

 

이제는 불가능한 ‘혼작·윤작’

논두렁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논두렁콩’. 벼만큼은 아니지만 농민들의 쏠쏠한 보조 수입원이다. 농민들에 따르면 논두렁콩은 농기계 등의 대출을 갚거나 논 임차료를 낼 만큼의 수익을 내진 못하지만 살림살이를 가꾸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주는 편이다.

하지만 2019년부터 농민들은 논두렁콩을 판매하기 어렵게 됐다. 물론 여전히 농촌 현장에선 논두렁 곳곳에 콩을 재배 중이지만, 판매 시엔 미등록 농약 오염으로 인한 안전성 조사 부적합 가능성을 일정 부분 감안해야 한다. 대다수 벼논을 광역살포기 또는 드론·무인헬기로 방제하는 최근의 여건상 논두렁에 심긴 콩의 잔류농약 결과 등록되지 않은 벼 농약이 검출될 확률이 적지 않아서다.

혼작과 윤작 시 등록되지 않은 농약이 검출되는 문제는 등록 농약 부족 다음가는 농민들의 골칫거리다. 연구 결과 등에 따르면 논벼에 농약을 항공방제할 경우 일반적으로 농약 일부는 작물에 부착되고 일부는 토양에 유실되며 나머지는 비산 후 인접한 농작물에 비의도적으로 접촉된다. 광역방제기 등을 활용할 경우 평균 10m 정도까지 약액이 뻗어 나가는데 바람 등의 영향을 받으면 그 범위는 더욱 늘어난다. 이미 농촌 현장에서는 농약을 살포하지 않았음에도 이웃 경작지에서 뿌린 농약에 작물이 오염돼 갈등을 겪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논 이모작의 경우 용수가 농약을 어느 정도 희석시켜 후작물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고 하지만 밭의 경우 농약이 토양에 잔류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윤작의 어려움도 존재한다.

 

제도와 동떨어진 현장 실정

밭작물뿐만 아니라 과수 또한 몇 가지 작목을 혼식하거나 한 과원의 구획을 나눠 재배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농작물재해보험 불합리성 문제가 부각된 떫은감은 대개 단감과 혼식 재배하는 경우가 많다. 단감과 떫은감의 경우 2015년부터 농약 등록을 그룹화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지만 같은 핵과류임에도 복숭아와 자두, 살구 등은 각각 등록된 농약만 사용해야 하므로 오염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작물별로 방제기를 구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혹시 모를 잔류 위험성에 대비해 농민들은 농약 통 세척 등에 이전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례로 충북 영동군의 한 농민은 사과와 복숭아, 자두를 재배 중인데, 두 대의 광역방제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농약 방제를 하고 나선 500L 또는 1,000L의 농약 통을 몇 번이고 물로 세척하는 수고를 치러야 한다. 해당 농민은 “통에 농약이 잔류할 수 있으므로 물을 받아 불려 놓은 뒤 세척해 다른 작목의 농약을 살포한다”고도 설명했다. 이어 다른 농민은 “작물이 다르더라도 병이나 해충별로 농약을 묶어 등록하면 한꺼번에 다양한 작물을 방제해도 문제의 소지가 덜할 텐데 오롯이 작물별로 농약을 등록하다 보니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 아니다”라고 밝혔다.

 

미궁의 비산 대책, 안개 속

무인헬기·드론, 광역방제기 등으로 인한 비산 오염은 아직도 PLS의 ‘뇌관’과 다름없다.

경기도농업기술원은 PLS가 전면적으로 시행된 지난 2019년 이후 2020년까지 벼 재배지 항공방제시 인근 농약비산에 의한 타작물 농약 잔류 영향 구명을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도 농업기술원이 발표한 시험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대파의 경우 비산거리 10m 이상에서 농약을 살포한 뒤 14일 이후부터 잔류농약성분은 0.01ppm 이하로 검출됐다. 하지만 들깻잎과 콩잎의 경우 비산거리 20m 이상에서 혹명나방 살충제(플루벤디아마이드)를 살포했음에도 21일 이후 검출량이 각각 5.239ppm과 0.026ppm으로 확인됐다. 고춧잎의 경우 살포 후 21일 플루벤디아마이드가 0.013ppm까지 검출됐으나, 열매의 경우 10m 이하 거리에서 살포 후 14일이 경과한 뒤 잔류농약 성분은 0.01ppm 이상으로 확인됐다.

비산으로 인한 오염 발생 가능성이 연구결과를 통해 확인됐음에도 2018년 제도 전면시행 전과 같이 지난해 농촌진흥청이 펴낸 무인항공기 안전사용 매뉴얼에는 △풍향·풍속을 고려해 살포할 것 △살포 방향 및 위치에 주의할 것 △저비산 노즐을 사용할 것 △분사량에 따라 적당한 노즐을 선택할 것 △노즐에 적정 압력을 사용할 것 △살포 고도와 속도 준수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야말로 비산 저감을 위한 안내 수준에 그치는 데다 대부분 무인헬기나 드론 등의 농약 살포가 업자 등에 의해 이뤄지는 만큼 실효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여전하다.

한편 2018년 8월 기준 농약 잔류허용기준은 472종 농약에 대한 8,353건뿐이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PLS 전면시행 전 두 차례의 행정예고를 통해 311종 농약에 대한 잔류허용기준 4,447건을 추가 설정한 바 있다. 지난 8월 9일 고시된 바에 따르면 현재 기준 517종 농약에 대해 1만4,281건의 잔류허용기준이 설정된 상태다. 올해까지만 적용되는 잠정 잔류허용기준은 약 5,000건 정도다.

앞으로 100여일 뒤부턴 잠정 잔류허용기준과 잠정 안전사용기준이 일몰된다. 강화되는 안전성 조사와 더불어 잠정 기준 일몰이 부적합률 상승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아직 확실히 예견하기 어렵다. 하지만 농민들은 여전히 PLS로 인한 고충을 겪고 있으며 그로 인한 피해마저 온전히 감내해야 하는 처지다. 행정이 제도 연착륙을 확신하는 사이 현장과의 거리감은 점차 더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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